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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Sep 16. 2021

엄마, 한복 사주세요

 아홉 살 때였나. 추석을 앞두고 엄마에게 한복을 사달라고 한 적이 있다. 짠순이 엄마는 웬일로 그러겠다고 하셨다. 부산 진시장이었나. 실밥 냄새가 가득했던 옷집, 미싱 집, 원단 집을 꼬불꼬불하게 돌아 적당한 한복집에 가서 알록달록한 한복을 맞추고 엄청 신나 했던 기억이 난다. 미끌미끌했지만 살짝 까실한 한복이 맨 살에 닿이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좋았다. 거울 속에 내 모습이 공주님 같기도 했다. 거울 옆에 동생은 티셔츠에 바지 차림이었다. 엄마는 여동생에게는 한복을 사주지 않았다. '물려주면 되지'라는 생각에서였다. 나만 한복을 입어서 동생에게 좀 미안하긴 했지만 못된 언니는 동생에게 기어이 한복을 물려주지 않았다. 한복의 저고리가 7부가 되어도 기어이 입고 다녔던 나는, 순한 동생에게 결국 개량한복을 사게 했던 나는, 나름 한복 애호가였다.


 사실 한복을 좋아한 것에는 따로 이유가 있었다. 한복을 입고 나가면 받는 그 '시선'때문이었다. 나서는 것 좋아하고 주목받는 것 좋아하는 내게 한복만큼 날개를 달아주는 것도 없었다. 추석을 앞두고 엄마는 한복을 가방에 고이 접어 가려고 했지만 나는 부득부득 우겨 입고 간다고 했다. 바람이 쌀쌀해 한복 위에 외투를 걸쳐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폼이 안 난다는 이유에서다. 한복의 효과는 과연 좋았다.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가야 하는 할머니 집. 버스 안의 아줌마들은 너도 나도 나를 자신들의 무릎 위에 앉혀주겠다고 했다. 몇 살이냐. 왜 이렇게 예쁘냐. 머리를 어떻게 이렇게 곱게 땋았냐. 처음 보는 아줌마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고 나는 그런 아줌마들의 질문에 쫑알쫑알 대답하는 맛에 버스 안의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도 그런 나를 보며 창피해하지는 않고 좀 뿌듯해했던 것 같다. 내 속으로 낳은 내 새끼 자랑하고 싶은 엄마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상식이 아니던가.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의 나는 좀 예쁘장하게 생겨먹었었다. 엄마의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들도 처음 보는 아줌마들 가랑이 사이로 쏙쏙 들어갔다. 그 아줌마가 내리고 난 자리는 엄마의 자리가 될 것도 뻔했다.


 할머니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큰아빠, 작은 아빠, 사촌 오빠, 사촌 언니, 숙모, 삼촌 할 것 없이 또 칭찬이 쏟아졌다. 칭찬을 흠뻑 받은 나는 이 집에서 제일 무뚝뚝한 할아버지에게로 달려가서 알 수 없는 용기를 냈다. 

   "할아버지도 한복 입어!"

 나는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한복을 입은 내가 할아버지에게 절을 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할아버지도 한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셨고 나는 좀 시무룩해졌다. 한복을 차려입고 여기까지 왔던 모든 흥이 다 깨져버린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만 나에게 "예쁘다"는 소리를 안 해줘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날 할머니 집 마당 앞에는 처음 보는 널판이 있었다. 널뛰기에 정신이 팔린 나는 한복이 거추장스러웠고 옷을 갈아입어버렸다. 할아버지는 까맣게 잊고 사촌 오빠의 손을 잡고 널뛰기를 하고 있는데 대문 쪽 사랑방에서 느릿하게 걸어 나오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버렸다. 할아버지가 꽤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겨울 한복을 입고 안채로 들어가시는 거였다. 평소에 말도 잘하지 않으실 정도로 과묵하셨던 분인데. 숙모들도, 큰 엄마들도 할아버지가 한복을 입으신 모습은 처음 봤다고 수군거렸다. 


 다시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고 절을 드리면 될 것을. 어렸던 나는 그게 귀찮아 티셔츠에 바지만 달랑 입은 채로 절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 순간을 가장 후회한 것은 12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또 10년 정도가 훌쩍 지난 추석 즈음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이틀 전에 아이 어린이집에서 "추석맞이 행사를 하니 한복이 있는 아이들은 한복을 보내주세요"라는 공지사항을 받았다. 작년 설과 추석에도 한복을 보내달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냥 보냈고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없는 걸 새로 사면서까지야 굳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정작 어린이집에서 한복을 가져오지 않은 아이는 우리 애 하나뿐이었고, 다른 친구들이 한복을 입은 모습을 보자 우리 아이도 선생님에게 "나도 한복 입고 싶어요"라고 졸랐다고 했다. 선생님은 어린이집에 남는 한복이 있어 입혀주었다고 했고, 행사 사진을 어제 받았는데 나는 미묘한 감정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사진 속 우리 아이의 한복이 두꺼운 겨울 한복이었고, 그때 그 할아버지가 입었던 한복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끽해야 일 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 한 한복이라 우습게 보았다가 되려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으로 하루 종일 마음이 헛헛해지고야 말았다. 아마 그때 널판도 할아버지가 갖다 놓으신 거겠지. 열 명의 손자 손녀들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난 손녀의 말을 귀담아듣고 느릿하게 한복을 갈아입으신 것도 같은 마음이셨겠지. 내가 왜 그때 한복을 갈아입지 않았을까...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인간은 두 가지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화려해지거나, 초라해지거나.   


 아이는 나에게 "한복을 사주세요"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복을 입어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소방차가 그려진 티셔츠만 입혀줘도 거울 앞에 서서 웃어 보이는 아이인데. 알록달록하고 나풀거리는 비단옷이 얼마나 예뻐 보였을까. 다음 설에는 설빔으로 한복을 맞춰주어야겠다. 그리고 한복을 입어도, 입지 않아도 예쁘다고도 말해주어야지. 한복은 없지만, 올해 추석도 잘 보내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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