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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Apr 30. 2022

결혼식장이 스시집이 되었다

- 대구 오마카세 맛집, '스시 타다시'를 다녀오다

남편을 처음 만난 건 2008년, 여름이었다.

우리는 방글라데시로 해외자원봉사를 가는 대학생 봉사단원에 뽑혔다. 전국에서 모인 20명의 청춘들.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단원이 결정됐고, 그날은 멤버들이 처음 만나 인사를 하는 어색하고도 어색한 자리였다.

부산에서는 나 혼자 뽑혔었고.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뽑혔나 싶네.) 나는 어떻게 해서든 동향의 사람들을 찾고 싶었다. 서울이 처음이었고. 낯선 서울말에 기가 엄청 눌려있는 상태였는데 멤버들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면 할수록 마음이 쪼그라들고 또 쪼그라들었다.

 

서울대 오빠가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고 들어갔는데

또 서울대 오빠가 나오고

연세대가 나오더니...성균관대...서강대...카이스트...북경대??????


이......거 뭐지? 나 어떻게 된 거지...


(지금 이 멤버들과 10년이 넘게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다. 첫 만남 당시에만 그랬다. 내 입장에서는 후덜덜했던 양반들...ㄷㄷㄷ)


그때 들리는 반가운 사.투.리. 바로 남편이었다.

삐쩍 마른 데다 까무잡잡했던 남편. 대구에서 뽑혀 올라왔다고 했다. 대구와 부산은 따지고 보면 완전히 다른 도시인데, 서울에서 만나니 대구도 그냥 동향이었다. 비슷한 억양에 얼마나 위로를 받았던가. 내 사투리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구나. 내 혼자가 아이구나. 아 다행이다.


안도감도 잠시...이 인간은 의대 본과 1학년이라고 한다...지역만 대구지...의대였네... 메딕 자격으로 뽑힌거였구나...그렇구나...하....나...와씨...

이쯤 되니까

아니 쥐뿔 아무것도 없는 내가 뽑힌 게 오히려 이상한데? 내가 더 대단한 거 아이가

(미친 근자감이 생겨났다고 한다)


하여간

두 살 어렸던 남편은 남자 대원들 중에 막내였고, 대학 졸업반이었던 나는 여자 대원들 중에 맏이 었다.

나는 정말 남편과 결혼까지 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한 적 없었다. (남편도 그랬겠지...)

보름 간의 자원봉사는 내 인생에 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고. 똘똘 뭉쳤던 우리 단원들은 그 누구보다도 서로의 인생을 응원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자원봉사가 끝나고 나서도 내내 연락을 주고받다가 그다음 해 가을에 사귀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 말고도 다른 커플이 탄생했는데 걔네들도 결혼을 했다. 20명 중에 4명이 결혼했으면 성공한 매칭 프로젝트 아입니까. ㅎㅎㅎ


스시집 후기 쓰려고 하다가 이게 무슨 일이고.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7년을 만났고, 2016년 4월에 식을 올렸다.

남편이 레지던트 4년차였고, 나는 기자 6년 차 때였다.

우리는 소위 '번갯불에 콩 볶아먹 듯' 결혼했다. 준비기간은 두 달.

청첩장을 돌릴 때마다 기자 선배들은 한 마디씩 건넸다.


"니 임신했나?"

-아니오

"아부지 퇴직하시나?"

-아니오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길게 끌어봤자 좋을 게 없는 것이 결혼 준비인 것 같다.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합의하고, 결혼식장을 알아보는데 내 마음에 쏙 든 곳이 수성못 근처 아일랜드 하우스라는 곳이었다.

층고가 높고 빛이 잘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맘때 결혼식장의 유행이 어두운 웨딩홀에 하얀 조명이었는데, 나는 싫었다. 채광이 잘되는 곳에서 따스하게 결혼하고 싶었다.

그곳이 마침 그랬고, 밥도 맛있었다.


결혼식이라는 게, 당일에는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날의 반짝이고 일렁이는 햇살은 또렷하다.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하게 행복했고 아름다웠다. 기뻤고, 남편의 얼굴이 멋졌고, 드레스를 입고 웃는 그날의 내가 예뻤다.


3년전인가..2년전인가.. 근처를 지나가다 결혼식장 건물에 "임대"가 적힌 현수막이 둘러져있는 것을 봤다.

순간 그때의 햇살이 사라지고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마음이 울적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기가 싫었다. 내가 왜 저걸 봤을까. 좀 아렸던 것 같다. 마음이.


그 마음이 싹 사라지게 된 건 남편 덕분이었다.

6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남편과 함께 식당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가려고 했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도 꽤 유명한 스시야도 예약이 어려웠다.

여기저기 검색을 하고 있는데 후보지에 있던 스시야를 꼭 가야 되겠다는 남편의 연락이 왔다.




다행히도 예약이 됐고,

지금부터 진짜 쓰고 싶었던 오마카세 후기가 시작된다.

아놔 서론이 너무 길었......... 죄송함다.


외부 전경. 우리가 결혼했던 곳이 3층이었는데 스시 타다시도 3층에 위치해있다.



고급스러운 입구. 분위기가 좋다. 맞이해주시는 분들의 인상도!



정갈한 테이블 세팅. 와사비가 안 찍혀 있는데, 맛이 강하지도 않고 엄청 부드러우면서도 특유의 향이 감돌아서 신랑이 정말 좋아했다. 어디 유명한 지역의 와사비랬는데..까먹었다;;



박찬호 셰프님. 두 시간 내내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시고 우리 부부 기념일이라고 배려도 많이 해주시고. 셰프님 덕분에 잊지 못할 결혼기념일을 보낸 것 같다.



 

트러플 오일이 들어간 차완무시. 뚜껑을 열자마자 트러플 향이 퍼져서 좋았다. 알맞은 온도로 기분 좋게 시작.



이틀 숙성시켰다는 광어 사시미. 찰기가 찰기가...뺨 때리면 챨싹 달라붙을 듯.



성게, 새우, 가리비 관자(맞나..기억이 가물가물 ㅠㅠ)와 제철 시금치. 밑에는 유자를 베이스로 한 새콤 달콤한 젤리 소스? 인 듯. 와사비 넣고 슥슥 비벼먹으니 세상 산뜻.


 

전복찜인데 이르케나 감칠맛나는 것은 오랜만에 먹는 듯. 아.... 입에서 감도는 전복의 향이.. 하나는 소금에 찍어먹고 하나는 와사비에 찍어먹으라고 하셨는데 와나 소금이고 와사비고 다 맛있음..글쓰는데 또 침나오네.. 내장에 밥 비벼서 먹는데 감탄!



전복 먹다가 안 되겠어서 에비스 생맥을 시킴.. 안 시킬 수가 없었.. 신랑은 오늘의 사케! 사케는 꽃향이 나는 산뜻한 것이 나왔다. 데일리로 적당한 사케인 듯. 근데 사케 사진은 왜 없지?? 와인잔에 나와서 이뻤는디.

(셰프님께서 결혼기념일이라고 사케랑 생맥주를 서비스로 주셨...ㅠㅠ 넘나리 감사했다.)



토란이 들어간 맑은 조갯국. 사진에선 잘 안나오는데 유자? 껍질이 두어 조각 들어가 있어 향긋했던 기억이 난다.



본격적인 스시가 시작됐다. 첫 점은 참돔. 쫜득쫜득 맛이 없을 수 없다. 사실 우리 부부는 업장을 여러 군데 다녀보긴 했지만, 전문적인 사람들도 아니고. 대부분 즐기면서 맛있게 먹는 편이다. 오마카세의 뜻대로 셰프님이 주시는 대로 무조건 감사함돠 잘 받아먹는다. 샤리의 양도 그렇고 풀어짐도 온도도 간도 정말 정말 알맞았다. 밸런스가 좋다고 해야 하나. 우리 부부는 그랬다!!




유자 제스트가 살짝 올라간 한치. 칼집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내셨던지.




아......우리 신랑의 베스트 단새우. 이거 진짜 눅진눅진 크리미. 하..ㅠㅠ 입에 넣고 씹으면 씹을수록 계속 감탄. 또 감탄.



금태예요. 금태. 여러분 금태 맛있는 거 아시쥬. 저거 한입에 못 넣고 두 번 베어 먹다가 육즙 질질 나왔다. 뭐하니 나 자신. 불향이 어휴.



줄무늬 전갱이. 전갱이 보자마자 다이빙하고 싶다던 신랑. 내가 잉? 했더니 다이빙해서 전갱이 떼를 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나는 다이빙해서 전갱이를 보면 회쳐서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우리는 반대구나.... 사이판 다시 같이 가서 다이빙하고 싶네 여보. 우리 다시 다이빙을 할 날이 올까? 오겠지...올거야. 비린 거 하나도 없었다. 등 푸른 생선 잘 못 먹는 신랑도 굿 했던.



이건 그냥 전갱이. 저 위에 올려진 게 실파와 아...뭐였지. 하여튼 절구에 빻아서 만든 절임양념?? 같은 건데 스시와 잘 어울려서 참 좋았다.



가리비관자.......아.. 이것도 진짜 너무 부드러웠다. 씹을 것도 없어요



챔치등살 간장에 숙성시킨 것. 챔치야 뭐. 우리 신랑 말로는 짜장면집에서 탕수육이라고. 어딜 가든 맛나는 것.



나왔습니다. 오늘 나의 베스트 청어. 아................ 진짜 고소하고 부드럽고 쥬이시하고. 입에 넣자마자 막 허덕허덕하는 그런 맛인데 이걸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네 ㅠㅠㅠㅠ 나의 앵콜스시.



주도로. 소금이 소금소금. 입에 넣자마자 사라지는 매직.



고등어 봉초밥인데 겉에 야부리?? 아 일본말 안 쓰고 싶다...ㅋㅋ 불로 지져가지고 김에다 싸주셨다. 맛있는 거에 맛있는 거 쁘라스 불향이라니. ㅠㅠ 셰프님이 신랑한테 저걸 하나 더 주셨다. 나도 탐냈는데 가위바위보에서 졌다...........결혼기념일이고 나발이고 맛있는 거 앞에서 뭐 얄짤 없네.



아 셰프님이 성게알을 펍니다. 크.



성게야. 넌 언제 먹어도 맛있구나.



네기도로가 내기도로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누군가가 쓴 표현인데 찰떡인 듯ㅋㅋ



아 끝나가는 거죠......장어 진짜 부드럽고 짭쪼롬 달큰한 것이 딱 좋았다.



우리 신랑의 앵콜스시. 두 개나 주셨다. 하나는 간장 숙성한 거. 하나는 그냥 거. 좋겠수. ㅎㅎ



부드럽고 쫀득하고 폭신하고 너 다해.



다 끝나가서 아쉬웠는데 갑자기 셰프님이 깜짝 이벤트를 준비해주셨다..ㅠㅠ 눈에서 진짜 눈물이 나왔...

촛불이 주는 무언가가 있는 듯. 셰프님이 하트 초 밑에 쿄쿠는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나란 여자 다 먹음. 남길 수가 없어요



일본에서 공수해오신 면이었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중면 정도의 찰기. 저 국물 감칠맛이 아주 그냥. 어후.



디저트로 나온 모나카와 차. 아쉬워서 어뜩하나...이렇게 두 시간의 런치 오마카세가 끝이 났다.



신랑은 대구에서 먹은 스시 중에 최고라고 했다.

분위기, 맛, 서비스까지 정말 만족하며 먹은 한 끼가 아니었을까.

다음에는 디너도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다시 재방문할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의 결혼식장은 정말 좋은 스시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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