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귀여운 동요를 하나 배워왔다. 달팽이의 하루라는 창작동요다. 비오는 날을 제일 좋아하는 달팽이가 빗방울이랑 친구가 돼서 풀잎 미끄럼틀도 타고 비오는 날을 재밌게 노는 얘기다.
근데 마음은 신나서 달려가는데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고.
해가 떠서 반짝이는데 아직도 한뼘도 못갔다는 조그만 달팽이의 하루. 노래를 듣는데 나는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 달팽이가 꼭 내 아이인 것만 같아서.
풀잎 미끄럼틀을 타는 달팽이를 생각하다 지난 월요일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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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어린이집 옆에는 제법 큰 공원이 있다. 벚나무며 느티나무가 잘 자라있고 놀이터도 큰 편이다. 뚜껑이 없는 미끄럼틀도 있는데 하나는 높이가 높고 다른 하나는 좀 낮다.
우리 애는 늘 높이가 낮은 미끄럼틀만 탔다. 높은 것을 탈때는 꼭 손을 잡아달라했다. 다섯살이나 먹은 녀석이. 나는 속으로만 타박했지 늘 아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겁이 많은 아이니까. 아이의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한켠으로는 내 애보다 훨씬 작은 아이도 씽씽 내려오는 저 미끄럼틀을 우리 애도 웃으며 내려와주길. 그렇게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월요일은 아이의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높이가 높은 미끄럼틀을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손을 잡아주려 다가갔는데. 아이가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내 손도 거부했다. 다른 아이에게 차례를 양보해주길 열 몇번 했다. 나는 이제 때가 된건가. 라고 생각했다. "우리 아들 용기 내봐!"
내 말에 아이는 망설이더니 처음으로 내 손을 잡지 않고 혼자서 미끄럼틀을 가뿐히 내려왔다. 다 내려와서는 에이. 별거아니네. 라는 표정으로 미끄럼틀의 시작점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다섯 살의 아이가 미끄럼틀을 탔다고 이렇게 좋아서 꽤나 긴 글을 쓴다. 그도 그럴것이 겁 많던 이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서 여러 방면으로 용기를 많이 내주고 있어 뿌듯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너에게 힘든 일인지 잘 알기에. 엄마는 이것이 당연하다 여기지 않도록 잘 기억하고 기록해놓고 싶다.
그날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질주하던 한 아이와 그 엄마가 떠오른다. 그 아이는 미끄럼틀 시작점에서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내려오지 않던 내 애를 앞질러 열 몇 번을 내리 미끄럼틀을 탔다.
나중에는 서서 미끄럼틀을 탔다. 아이 엄마는 "하지마!" 라는 말을 달고 다녔던 것 같다. 그 엄마의 외침이 어쩜 나랑 그리 반대일까. 나는 "좀 해봐!"를 달고 사는데.
그런데 좀 다른 것이 뭘까도 생각해봤다. 그 아이는 엄마가 하지마라고 하면 하지 않고 내려왔는데. 우리 아이는 해봐라고 해도 절대 안한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자기 마음이 내킬 때 비로소 한다.
그 부분에서 내가 늘 아이를 타박하고. 내몰아치고.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 같다. 예민하고 불안함이 높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가장 큰 덕목은 기다림이 아닐까.
아이를 닮은 달팽이처럼.
나도 달팽이같은 엄마가 되어주어야지.
오늘도 비가 올 거 같다며 장화를 신고 나간 아이.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달팽이 같은 아이.
아들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달팽이의 하루-
보슬보슬 비가 와요
하늘에서 비가 내려요
달팽이는 비오는 날
제일 좋아해
빗방울과 친구 되어
풀잎 미끄럼을 타 볼까
마음은 신나서 달려가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야호 마음은 바쁘지만
느릿느릿 달팽이
어느 새 비 그치고 해가 반짝
아직도 한 뼘을 못 갔구나
조그만 달팽이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