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이 왔다. 어린이날 어버이날도 지나갔다. 묵은 때가 아니라 묵은 살들을 태워버릴 계절이 시작됐다. 여름을 앞두고 어찌할 수 없는 똥배를 좀 집어넣을 필요가 있다. 팔뚝살은 포기했다. 둘레가 커지는 뱃살이 더 두려운 나다. 청바지를 못 입게 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짱짱한 청바지를 입었는데 아랫배가 불룩해진다. 고무줄 바지가 아니라고요. 청바지인데! 그것도 빳빳한 청바지. 젠장.
나는 둘째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바로 앞에 있는 관리사무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헬스장 등록하려고요."
사무직원의 첫마디는 이랬다.
"예전에 등록하신 적 있으신가요?"
당연히 물어보는 질문인데 왜 뜨끔한 건지 모르겠다. 남편이 언젠가 그랬다.
상대방의 말에 기분이 나빠진다면, 상대 때문이 아니라 내가 왜 기분이 나빠지는 건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개가 짖는데 우리가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고. 나의 문제라고.
그렇다. 나는 나의 의지박약이 부끄러웠다. 나의 호언장담이 휴지조각이 됐고, 그것이 안타까웠다. 이번에는 달라. 헬스는 평생 할 거야. 올해는 꼭 근육을 키워야지. 러닝이 너무 좋아. 달리기는 진짜 매일 해야지. 등등의 찌꺼기들이 뇌 속을 둥둥 떠다니다가 가라앉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물을 내렸다. 물컹거리던 조각들이 순식간에 빨려내려 갔다. 헬스장 재등록에 서명을 하는 순간이었다.
귀에 줄 이어폰을 꽂으며 러닝머신 위를 걸었다. 주변의 공기는 축축하다. 곁눈질로 본 옆사람은 나보다 속도가 빠르다. 참 묘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가 뒤섞인 의지와 순간의 열정, 허황된 꿈, 긴 지루함, 해냈다는 기쁨들이 마구 섞여있는 장소는 흔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난 여기서 뭘 건져갈까.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매일 똑같은 시간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운동을 하는 게 최고인데. 알고 있는데도 잘 안 되는 걸 보면, 이게 제일 어려운 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