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머리는 가졌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의 마인드는 장착하지 못한 나의 매직 히스토리.
내 첫 매직은 고등학교 2학년때였다. 그때는 판 매직이었다. 기다란 판을 대고 약간의 머리를 올린 뒤 약을 바르고 굳히는 식이다. 서른 개 남짓 판때기를 붙이고 나는 옥수수를 뜯었다. 옥수수 기억이 선명한 걸 보니 그때도 여름이었나 보다. 알갱이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생각했다. 목디스크에 걸리면 이런 기분일까.
고데기로 매직을 하는 시대가 열렸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판 매직을 해도 구불거리던 내 머리가 찰랑찰랑거렸다.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흩날리며 날렸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은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매끈했다. 엄마는 파리가 앉으면 미끄러지겠다고 했다. 그치. 트리플 악셀도 가능할걸. 낄낄.
그때부터 나는 일 년에 두 번 꼭 매직을 했다. 곱슬인들은 다 알 거다. 여름. 그것도 장마가 오기 전에 무조건 매직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하면 다음 턴은 자연스럽게 설 날 전이 된다. 습도와 친척어른들의 잔소리를 끝내줄 강력한 무기. 나는 무기장착을 위해 세 시간 반을 꼼짝없이 앉아있었다. 기꺼이.
매직의 여정은 쉽지 않다. 멀기도 멀고 험하기도 험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기장이면 일단 비싸진다. 추가금이 붙는다. 샴푸를 하고 약을 바르고 또 샴푸를 하고 말리고 매직기로 펴고 중화제를 바르고 또 샴푸를 하고 말려야 한다. 언젠가 미용사가 내 머리가 상했다며 클리닉을 권해 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샴푸를 다섯 번 정도 한 것 같다.
제일 견디기 힘든 건 매직 약 냄새다. 머리카락에 하는 모든 시술 중에 제일 독한 냄새가 매직약 같다. 그만큼 머릿결도 상한다. 빛 좋은 개살구랄까. 그 약을 바르고 있으면 눈도 좀 풀린다. 머리가 띵해진다. 두피도 피부라던데. 약을 쪽쪽 빨아먹은 두피는 3일쯤 뒤에 각질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매직 인생 2n년차. 요령도 생겼다. 미용실에 갈 때는 꼭 양말에 운동화를 신는다. 여름에 맨발로 갔다가 3시간 동안 발가락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에어컨 냉기를 쐬며 가만히 앉아있으면 절로 뜨아파가 된다. 언젠가부턴 가운 주머니에 넣을 립밤도 챙긴다. 사물함 옷장에 갈 시간 따윈 없다. 정기적으로 내 머리를 땡겨주시는 디자이너 슨생님에게 크리스마스 전날 작은 쿠키를 사다 주기도 했다. 내 돈 내고 내가 받는 서비스라지만 그러기엔 내 머리숱은 너무 많다. 약간 씨름부가 무한뷔페에 입장하기 전에 눈치 보는 거랄까.
이랬던 나도 매직을 못했던 기간이 있었다. 첫째와 둘째의 임신기간과 수유기간. 엄마는 강했던 그때, 나는 머리를 항상 질끈 묶었던 것 같다. 곱슬이 감당이 안되기도 했지만 갓난쟁이를 키우는데 내 머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입학하고 낮잠을 자게 되자 나는 바로 눌렀다. 예약 요청 사항. 매직에다가 밑에는 cs컬로 세팅까지 해주세요. 나 오늘 미용실 의자에서 죽을랍니다.
차분해진 내 머리카락이 좀 볼품없어 보이기 시작한 건 정확히 마흔이 넘어가서부터다. 늙으면 생머리가 안 어울린다고 하는데. 그 고전을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가 오고야 만 거다. 머리를 자르거나 볶아야 했다. 곱슬이었던 내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얼굴의 문제로 이슈가 옮겨갔다.
나는 볶는 걸 선택했다. 꽤 그럴싸한 명분도 생겼다. 요새는 히피펌처럼 볶아서 탈매직도 한다더라. 탈매직은 말 그대로 매직 탈피다. 곱슬을 그대로 길러서 꼬불한 내 머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거다.
탈매직을 처음 들었을 때 미용실에서 느꼈던 애환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대놓고 팔이 아프다던 그 언니. 뿌리 쪽에 자라난 내 곱슬머리를 보고 악 더럽다고 말하던 다른 언니. 끊어질 것 같은 내 허리. 비싼 돈. 착 달라붙은 앞머리. 몇 개월 뒤에 또 올라오는 곱슬머리. 스트레이트가 아니고 스트레스 아입니까.
나는 뽂았다. 그래 매직 없이도 살아보자. 손질만 잘하면 되겠지. 결과는 그렇다. 다 눈치챈 거 맞죠. 지금 7월 아입니까. 장마에 집중호우에 와 습도가 96프로를 찍어뿌네. 직이네. 실패했다.
둘째가 막 찍은 카메라 속에 나는 그냥 한 마리의 사자였다. 사자는 선택했다. 탈매직이 아니라 매직으로 내 곱슬을 관리하기로. 히피펌 한번 해봤으니 됐다 마. 이래 사는 것도 팔자려니. 지금 이 글도 미용실에 앉아서 쓴다. 10시 땡 오픈하자마자 입장했는데 2시가 넘어간다. 글 한 편이 뚝딱 나왔다. 좋은 거 맞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