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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Mar 10. 2023

15만원으로 바뀐 운명의 시작

5만원은 되돌려 주시는 거 맞죠?

'띵동'

15만원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결제 직전까지 수백만 번 고민했다.

며칠 째 핸드폰을 손에 쥐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애처로웠는지 이 놈의 검지 손가락이 주인의 허락도 없이 덜컥 결제 버튼을 눌러버리고야 말았다.

지금 뭐 한 거야? 잘한 거 맞아?

잘한 거 맞는 거지? 진짜 맞지?





지금도 여전히 종합 부문 12위(네이버 오늘자 기준)에 올라있는 작년 6월에 출간된 책 '역행자'.

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식을 줄 모르는 인기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 역시 그 책이 웬일로 궁금해졌다.

도서관센터를 매일 들락날락 거리며 겨우 예약에 성공했다. 예약을 해놓고도 하도 소식이 없어 잊혀가는 가을즈음에 만남이 이루어졌다. 순식간에 후다닥 읽고 나서 재독을 하는 도중 정체불명의 뜨거운 그분이 찾아왔는지 나도 모르게 그 책이 구세주라도 되는 양 책을 꽉 껴안으며 필사하게 되었다.

<역행자 필사했던 귀중한 흔적>


읽고 쓰고 나서도 여전히 순리자로 살면서 그나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니 딱히 글을 쓰는  말고는 없었다.

'그래, 글쓰기라도 다시 꾸준히 제대로 한 번 해보자'

육아일기는 오래전에 마침표를 찍었고 SNS에 간간히 짧은 글만 올리고 있었다.

전보다 더 부지런을 떨며 SNS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다시 그 글을 블로그로 드래그하면서 나름 열심히 할 일을 삶 속에 추가시켰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났다.

보름이 가고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쩝,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 '역시나 크게 달라지는 건 없는 건가'라는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SNS 팔로워가 급격히 늘어나 관심을 받는 기적은 당연히 찾아오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기대했던 이벤트 당첨이나 협찬은커녕 부업이라도 해야 하나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내 과거의 삶이 노출되었는지 에먼 부업광고계정들 팔로우 수만 늘어 일일이 차단하느라 오히려 귀찮기만 했다.


그 뒤로도 애 엄마로서 애와 엄마의 잔잔한 일상만 끄적일 뿐 변화는 1도 없이 삶은 무척이나 단조로웠다.

SNS에 매일 글을 올리다가 며칠 못 올린다 한들 왜 글이 올라오냐고 궁금해하거나 걱정되어 연락 오는 사람조차 거의 없을 정도로 인간관계 역시 단출했다.


글 안 쓴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개미새끼 한 마리도 찾아주는 이 없는 비주류 대한민국 지극히 평범한 아줌마 중 한 사람.

별다를 것 없는 삶 속에서 도대체 뭘 바란 거야? 무슨 글을 얼마나 쓴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15만 원이라는 돈을 써가며 덜컥 결제 버튼을 클릭한 걸까?

(진짜 역행자라도 되면 어쩌려고)





애는 내년이면 10살이 된다.(작년 기준)

엄마는 제대로 무럭무럭 잘 크고 있는 애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애만 보면서 살았던 시기였다.


엄마로서의 삶은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빠져있었다. 애는 점점 성장하고 있는데 엄마는 아이 돌 전후 시절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삶이 이어졌다.


아이 세 살 막바지에 아무 대책 없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강행했다. 옥탑방에서의 착한 며느리 병은 시간이 흐르니 거의 완치되었으나 결혼 후 순탄치 않았던 과거의 삶을 핑계 삶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무기력증은 계속되었다. 하루하루 그냥저냥 별일 없이 지나가고 또 하루 큰 의미 없이 지나가는 삶이었다. 그 삶이 힘들고 어렵다기보다는 인생은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는 착각을 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니  시간 동안 엄마가 아닌 한 여자의 삶은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남은 건 엄마로서 아이의 어린 시절 매일 찍었던 사진을 엮어서 발행한 몇 권의 육아일기,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근근이 붙잡고 살았던 책장 속 육아서와 교육서, 사놓고도 읽지도 않고 손이 닿지 않았던 책들.

그게 전부였다.


오랜 시간을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고 방황하는 삶 속에서 역행자 책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와 더불어 글이라도 꾸준히 써보자는 마음을 먹었던 찰나, 아이 초등 입학 전부터 꽤 신뢰하고 있던 어느 유튜버의 SNS에서 마주한 브런치작가프로젝트 모집글은 잔잔했던 내 가슴에 작은 풍파를 일으켰다.




'아니 이 여자는 왜 이리 자꾸 뭔가를 계속 또 하는 거야?, 돈독이 올라도 너무 올랐네?' 하면서도

너무나도 부러운 이 여자가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벌인 건가?


나는 우물 안 저 깊은 곳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데 이 여자는 매일매일 새로운 영상을 올리고 뭔가 획기적인 일을 척척 계획하고 실천하는 역행자로 살고 있는 모습에 괜한 질투심이 타올랐다.

그래도 그 여자 덕분에 애 하나 초등입학 시키는데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는 게 고마운 나머지 그 여자의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매일 아침 9시에 꼬박꼬박 조회수를 올려주었다. 

실시간 라이브 방송도 물론 놓치지 않았다. 밤마다 전 날 본 영상을 귀로 들으며 하루 지난 영상을 복습하기 위해 오디오클립 조회수까지 올려주면서 잠이 들었다. 이만하면 열렬한 구독자인 내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착각이었다.



그깟 조회수 올리는 거로는 한참 부족해!!
나한테 이 정도 정보 얻어갔으면
너도 뭔가 좀 해봐야 하지 않니?
그렇게 살지 말고
너 자신한테 투자 좀 해봐!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갈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
설마 아직도 모르는 거 아니지?


 사실  여자 SNS에서 본 브런치 작가 모집 글은  딱 세 줄로  일목요연하게 명시되어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은 엄마

일상을 꾸준히 기록하고 싶은 엄마

언젠가 책 한 권 내고 싶은 엄마


하지만 모집 홍보문구 뒤에  가려진 무언의 잔소리들이 귓가에 맴돌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심장은 크게 요동쳤다.

홍보 글귀는 3줄인데 왜 자꾸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문구가 겹쳐 보이면서 뼈 때리는 잔소리가 계속 들리는 걸까? 그 여자가 도대체 왜! 브런치 글쓰기는 또 뭐길래!

안 그래도 곧 치과에서 내 통장을 텅장으로 만들 예정이라 생활비도 빠듯한데.

꼬깃꼬깃 모셔 논 종잣돈이라도 풀어야 하는 건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혼자만의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5만 원이면 큰돈이지, 무슨 글을 쓰는 데 15만 원이나 결제를 해? 워워~안돼! 왜 그 돈을 쓰냐!

미쳤나? 아니면 돌았나? 그 돈이면 애 피아노 한 달 원비를 내고도 내 사랑 페리카나 양념치킨과 함께 맥주까지 넉넉하게 마실 수 있는 돈인데 그 돈을 감히 왜 거기다가 쓰냐?


며칠 째 밤늦은 시간까지 핸드폰을 손에 쥐고 오만 생각과 걱정 때문에 잠을 설쳤더니 불안 증세가 가중되어 스트레스성 두통 증세가 심하게 나타났다.

목덜미 뒤쪽부터 머리끝까지 파고드는 신경줄기세포들의 고통이 타이레놀 한 알과 함께 사라지는 바람과 동시에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결제창 취소 버튼을 찾았다.


아뿔싸!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모집 마지막 결제일 자정이 지났다.

이런 젠장!

자정이 지나고 모집이 끝났는지 벌써 결제가 완료되고 승인으로 넘어간 상태다.

네이버 톡톡에서 곧 네이버 폼을 발송한다 하고 이미 마감 날이 지나서 취소나 환불 절차는 고객센터를 통해야 한다.


아이코! 어쩐담? 귀찮은 건 딱 질색인데.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아래쪽에 네이버 폼이 전송되면 환급용 개인 계좌번호 적는란이 있을 테니 과제 제출 미션과 브런치 합격을 하면 5만 원 환급해 준다는 문구가 100포인트처럼 아주 크고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모집이 끝나면 곧 오픈 채팅방에 멤버들을 전원 초대한다고 했다.




-뻔한 스토리가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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