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핸드폰을 손에 쥐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애처로웠는지 이 놈의 검지 손가락이 주인의 허락도 없이 덜컥결제 버튼을 눌러버리고야말았다.
지금 뭐 한 거야? 잘한 거 맞아?
잘한 거 맞는 거지? 진짜 맞지?
지금도 여전히 종합 부문 12위(네이버 오늘자 기준)에 올라있는 작년 6월에 출간된 책 '역행자'.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식을 줄 모르는 인기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 역시 그 책이 웬일로 궁금해졌다.
도서관센터를 매일 들락날락 거리며 겨우 예약에 성공했다. 예약을 해놓고도 하도 소식이 없어 잊혀가는 가을즈음에만남이 이루어졌다. 순식간에 후다닥 읽고 나서재독을 하는 도중 정체불명의 뜨거운 그분이 찾아왔는지 나도 모르게 그 책이 구세주라도 되는 양 책을 꽉 껴안으며 필사하게 되었다.
<역행자 필사했던 귀중한 흔적>
읽고 쓰고 나서도 여전히 순리자로 살면서 그나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니 딱히 글을 쓰는 것말고는 없었다.
'그래, 글쓰기라도 다시 꾸준히 제대로 한 번 해보자'
육아일기는 오래전에 마침표를 찍었고SNS에 간간히 짧은 글만 올리고있었다.
전보다 더 부지런을떨며 SNS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다시 그 글을 블로그로 드래그하면서 나름 열심히 할 일을 삶 속에 추가시켰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났다.
보름이 가고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쩝,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 '역시나 크게 달라지는 건 없는 건가'라는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SNS 팔로워가 급격히 늘어나 관심을 받는 기적은 당연히찾아오지 않았다.
혹시나해서 기대했던 이벤트당첨이나협찬은커녕 부업이라도 해야 하나여기저기 기웃거렸던 내 과거의삶이 노출되었는지 에먼 부업광고계정들 팔로우 수만 늘어 일일이 차단하느라 오히려 귀찮기만 했다.
그 뒤로도 애 엄마로서 애와 엄마의 잔잔한 일상만 끄적일 뿐 변화는 1도 없이 삶은무척이나단조로웠다.
SNS에 매일 글을 올리다가 며칠 못 올린다 한들 왜 글이 안 올라오냐고 궁금해하거나 걱정되어 연락오는 사람조차 거의 없을 정도로 인간관계 역시 단출했다.
글 안 쓴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개미새끼 한 마리도 찾아주는 이 없는 비주류 대한민국 지극히 평범한 아줌마 중 한 사람.
별다를 것 없는 삶 속에서 도대체 뭘 바란 거야? 무슨 글을 얼마나 쓴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15만 원이라는 돈을 써가며덜컥 결제 버튼을 클릭한 걸까?
(진짜역행자라도되면 어쩌려고)
애는 내년이면 10살이 된다.(작년 기준)
엄마는 제대로 무럭무럭 잘 크고 있는 애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애만 보면서 살았던 시기였다.
엄마로서의 삶은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빠져있었다. 애는 점점 성장하고 있는데 엄마는 아이 돌 전후 시절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삶이 이어졌다.
아이 세 살 막바지에 아무 대책 없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강행했다. 옥탑방에서의 착한 며느리 병은 시간이 흐르니 거의 완치되었으나 결혼 후 순탄치 않았던 과거의 삶을 핑계 삶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무기력증은 계속되었다. 하루하루 그냥저냥 별일 없이 지나가고 또 하루 큰 의미 없이 지나가는 삶이었다. 그 삶이 힘들고 어렵다기보다는 인생은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는 착각을 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니 그시간 동안엄마가 아닌 한 여자의 삶은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남은 건 엄마로서 아이의 어린 시절 매일 찍었던 사진을 엮어서 발행한 몇 권의 육아일기,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근근이 붙잡고 살았던 책장 속 육아서와 교육서, 사놓고도 읽지도 않고 손이 닿지 않았던 책들.
그게 전부였다.
오랜 시간을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고 방황하는 삶 속에서 역행자 책을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그와 더불어 글이라도 꾸준히 써보자는 마음을 먹었던 찰나, 아이 초등 입학 전부터 꽤 신뢰하고 있던 어느 유튜버의SNS에서 마주한 브런치작가프로젝트 모집글은잔잔했던 내 가슴에 작은 풍파를 일으켰다.
'아니 이 여자는 왜 이리 자꾸 뭔가를 계속 또 하는 거야?, 돈독이 올라도 너무 올랐네?' 하면서도
너무나도 부러운 이 여자가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벌인 건가?
나는 우물 안 저 깊은 곳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데 이 여자는 매일매일 새로운 영상을 올리고 뭔가 획기적인 일을 척척 계획하고 실천하는 역행자로 살고 있는 모습에 괜한 질투심이 타올랐다.
그래도 그 여자 덕분에 애 하나초등입학 시키는데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는 게 고마운 나머지 그 여자의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매일 아침 9시에 꼬박꼬박 조회수를 올려주었다.
실시간 라이브 방송도 물론 놓치지 않았다. 밤마다 전 날 본 영상을 귀로 들으며 하루 지난 영상을 복습하기 위해 오디오클립 조회수까지 올려주면서 잠이 들었다. 이만하면 열렬한 구독자인 내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역시 착각이었다.
그깟 조회수 올리는 거로는 한참 부족해!!
나한테 이 정도 정보 얻어갔으면 너도 뭔가 좀 해봐야 하지 않니?
그렇게 살지 말고 너 자신한테 투자 좀 해봐!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갈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 설마 아직도 모르는 거 아니지?
사실그 여자SNS에서 본브런치 작가 모집글은 딱 세줄로일목요연하게명시되어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은 엄마
일상을 꾸준히 기록하고 싶은 엄마
언젠가 책 한 권 내고 싶은 엄마
하지만 모집 홍보문구 뒤에 가려진 무언의잔소리들이 귓가에 맴돌기시작하면서부터 내 심장은 크게 요동쳤다.
홍보 글귀는3줄인데 왜 자꾸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문구가 겹쳐 보이면서 뼈 때리는 잔소리가 계속 들리는 걸까? 그 여자가 도대체 왜! 브런치 글쓰기는 또 뭐길래!
안 그래도 곧 치과에서 내 통장을 텅장으로 만들 예정이라 생활비도 빠듯한데.
꼬깃꼬깃 모셔 논 종잣돈이라도 풀어야 하는 건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혼자만의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5만 원이면 큰돈이지, 무슨 글을 쓰는 데 15만 원이나 결제를 해? 워워~안돼! 왜 그 돈을 쓰냐!
미쳤나? 아니면 돌았나? 그 돈이면 애 피아노 한 달 원비를 내고도 내 사랑 페리카나 양념치킨과 함께 맥주까지 넉넉하게 마실 수 있는 돈인데 그 돈을 감히 왜 거기다가 쓰냐?
며칠 째 밤늦은 시간까지 핸드폰을 손에 쥐고 오만 생각과 걱정때문에 잠을 설쳤더니 불안 증세가 가중되어스트레스성 두통 증세가 심하게 나타났다.
목덜미 뒤쪽부터 머리끝까지 파고드는 신경줄기세포들의 고통이 타이레놀 한 알과 함께사라지는 바람과 동시에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결제창 취소 버튼을 찾았다.
아뿔싸!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모집마지막 결제일 자정이 지났다.
이런 젠장!
자정이 지나고 모집이끝났는지 벌써 결제가 완료되고승인으로 넘어간 상태다.
네이버 톡톡에서 곧 네이버 폼을 발송한다 하고 이미 마감 날이 지나서 취소나 환불 절차는 고객센터를 통해야 한다.
아이코! 어쩐담? 귀찮은 건 딱 질색인데.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아래쪽에네이버 폼이전송되면 환급용 개인 계좌번호 적는란이 있을 테니 과제 제출 미션과 브런치 합격을 하면 5만 원 환급해 준다는 문구가 100포인트처럼 아주 크고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