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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Mar 17. 2023

함께 쓰기로 약속한 사람들.

제게 동기가 생겼어요♡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띵동'

5만원이 입금되었습니다.




2022년 12월 30일. 

나이 먹는 게 달갑지 않아 썩 반갑지 않은 40대 중반 평범한 아줌마의 생일 오후 13시 14분,

입금 알람이 울렸다.

아직 젊다고 서러워 말라며 생일이니 이따가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면서 힘내고 앞으로 더 열심히 쓰라고 보내온 응원의 메시지로 보였다.

허나 생일이라고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입금할리는 없고

X 잡은 포수? 당최 모르겠다!

도대체 누구야?

.

.

.

.


어? 혹시?

.

아아~!!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아니면 이미 이 운명은 계획되어 있었던 건가?


예정에도 없던 큼지막한 레고 선물이라도 받은 우리 딸마냥 혼자 물개박수 치며 히죽대는 40대 아줌마, 

지금 당장 집 근처 갈비맛집이라도 달려가 달짝지근한 숯불갈비로 속을 달래줘야 좀 진정되려나? 갑자기 조증신이 강림하셨는지 웃음이 주체가 안된다.

(역시 생일날에는 갈비가 최고지! 사실은 내 생일이어도 우리 애가 좋아하니까, 엄마 말고 양념갈비를^^;;)

 

아무 의미 없이 넘어갈 생일까지 의미 있게 만들어준 그 여자의 치밀한 계획에 또 혀를 내둘렀다.

그래, 역시는 역시다! 이런 진정한 찐 역행자 같으니라고!

(나는 하필 그날이 생일이라서 생일 선물 받은 거라고 치자. 다른 브런치 합격자들에게는 연말 보너스라도 받은 것처럼 뭔가 이뤘다는 뿌듯함을 선물하는 동시에 잊지 말고 계속 쓰라는 메시지를 보낸 그 여자의 계획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 그 잡채.

설사 5만원 환급을 받지 못한 분들이라 할지라도 연말에 브런치 작가의 합격 기쁨을 만끽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어딘고!)







브런치 작가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아이 방학이 1월 5일로 예정된 덕분이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으면 시간적으로 글을 쓸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 여자의 말처럼 2022년 남은 두 달 뭔가 해 낼 수 있는 적기에 발 빠르게  아주 느리게 잘도 움직였다.

아침에 학교를 보내고 공원을 산책하고 돌아오자마자 커피 한 잔과 함께 습관적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15만원의 결제버튼 누른 검지 손가락을 원망하며 지난 한 달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내 안에 남아있던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다.

(없던 열정까지 끌어내기 위해서 설거지와 빨래는 매일 산처럼 쌓여갔다. 집안은 개판 5분 전 상황이 연출되었다. 다행히 집에 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학교 시절 아니 초등학교 3학년 때 지방에서 서울 큰엄마 집에 처음으로 놀러 왔을 때 여행 온 경험을 독후감으로 제출해 교내 글짓기에서 수상했던 경력까지 끄집어냈다. (제목은 '서울 여행'이었다)


아무튼 그 무섭다는 아줌마의 귀찮아 병과 싸우느라 매일매일 이불을 당차게 걷어찼다. 매주마다 그 여자의 오케이 사인을 받기 위해 마감시간 안에 수행평가를 뚝딱 해치우는 모범생 모드를 근 30년 만에 풀 장착했다.

포노사피엔스의 삶으로 급격히 떨어진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할 수 있다'는 굳은 의지까지 발휘하느라 극진히 애를 쓰고도 한참 부족했는지 잠까지 설쳐가며 글을 쓰게 되었다. 이게 뭐라고!

글 쓰는 데 모든 것을 쏟아 받친 후 비로소 입금된 5만 원이었으니 벌게진 광대가 승천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두 번의 뜨거운 합격을 맛본 후 소중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여자와 예정되어 있는 4번의 줌 수업을 듣기 위해

불타는 금요일 밤마다 치킨과 맥주를 뒤로하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수업에 집중했다.

무슨 수업을 듣는데 그렇게 유난을 떠냐며 식구들은 툴툴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거 공짜 강의 아니거든? 그러나, 남편한테는 15만원 결제한 건 비밀이었다.)


오로지 나 혼자만의 시간, 엄마가 아닌 여자로서 성장하고 싶은 마음만을 가득 채운 채 금요일 밤을 기다렸다.

결제 다음 날 단톡방에 초대되어 어색하게 온라인에서 인사를 주고받았던 엄마들, 아름다운 그녀 속속들이 줌에 입장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했고 함께 할 수 있어서 든든했다.

(혹시라도 나 혼자였다면 그 여자와 둘이서 얼마나 뻘쭘했을까?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잠시 했었다)


혼자는커녕 신청자가 무려 200명을 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오메~! 나처럼 15만원을 결제한 사람들이 200명이 넘는다고?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녀들 역시 뭘 원했길래 15만원을 써가면서 단톡방에 들어왔고 줌 수업에 입장했을까?

설마 나처럼 역행자를 꿈꾸지만 브런치도 제대로 모르면서 단순히 글만 쓰기 위해서만은 아닐 거라는 의심을 잔뜩 품은 채 드디어 줌에 입장했다.




창피하게도 아이 1학년 때 코로나로 줌 수업을 공식적으로 도와준 적 말고 나는 그때까지 내 아이디로 공식적인 줌 수업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 내 얼굴로 줌에 입 일이 생긴 게 처음이라 어색하고 긴장되었다.


만남이라 함은 자고로 온라인이 아니라 직접 얼굴을 맞대어 커피잔이라도 부딪쳐야 진리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서일까? 아마도 굳이 돈 써가면서 온라인으로 뭔가를 한다는 건 아직까지  내키지 않은 일이었나 보다.


사실을 털어놓자면 40대에 입성한 뒤로 확 늙어 보이고 깊어진 팔자 주름 도장이 박힌 비루한 얼굴을 공개하는 게 꺼림칙해서 일부러 줌 모임을 기피했던 게 더 솔직한 표현이겠다.

(입장 전 카메라 ON에서 본 내 얼굴을 차마 공개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관심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4주 내내 얼굴 비공개 모드, 당당하게 이름만 공개 후 암흑으로 입장해서 그 여자의 단정하고 참한 얼굴만 웜홀에 빠져들어 가는 것처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얼굴을 공개한 몇몇의 그녀들을 곁눈질로 틈틈이 살펴보긴 했지만)




4주간의 여정은 숨차게 달려온 만큼 금세 지나갔다.


첫 주에는 그 여자 말대로 없는 글감 찾느라 머리에 김이 펄펄 났고 왜 신청했나 후회도 밀려왔다.

두 번째 주에는 그야말로 쓰레기를 썼다는 신선한 충격에 잠시 글쓰기 지옥불을 경험하기도 했다.

세 번째 주부터는 같이 시작한 그녀들의 합격 소식에 조급함이 밀려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설거지하는 도중 그릇까지 깨뜨려가며 초심을 유지하도록 마음속으로 수백 번 평정심을 외쳤다.

그리고 대망의 네 번째 주 마지막 줌수업.

그 여자의 지난 고난 역경을 시작으로 이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온갖 버티기 노하우를 풀어주었다.

(그중의 핵심은 시간관리와 멘탈 관리, 플랫폼의 세상에서 우리가 글 쓰며 해야 할 일들)



온갖 것들을 다 털어주고도 "따라오려면 따라와 봐라! 너희들은 나를 뛰어넘지는 못할 것이다!"라는 강한 포부를 밝힌 그 여자가 다시 한번 역행자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고 심히 알흠다웠던 그녀들은 긴 여운에 휩싸여 쉽게 그 방에서 나가지 못했다.


공식 수업이 끝나고 자정이 가까워진 그 날밤.

우리는 마침내 그 여자 덕분에 슬초 '브런치 얘들아! 1기'라는 타이틀을 만들어냈다.

자동적으로 200명이 넘는 브런치동기들이 생겼고 반장과 부반장까지 선정되었다.


회사 입사 동기는 흔적조차 사라진 내 인생에서 임신과 동시에 군대동기보다 더 찐하다는 조리원 동기를 그렇게도 원했었다. 그땐 코로나도 아닌데 각방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조리원이라 동 하나 없이 긴 세월의 육아 터널을 지내왔다. 육아 고충하나 나눌 조동이 없어 참으로 외로운 시절이었다.

다시없을 내 인생의 미래를 함께 할 브런치 동기라니!  조동하나 없던 그 외로움과 서러움이 한순간에 사그라드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브런치 얘들아! 동기가 되어 다 같이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약속했다.






곧  마지막 편이 이어집니다.



사진 출처: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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