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미래 Apr 08. 2023

미움받을 용기 가득한 며느리는 빠질게요

딸만 데리고 시제에 간 남편

     


시제(時祭)

정의 : 춘하추동의 길일이나 절일에 받드는 제사를 시제라 하는데 사시제, 시사, 시향, 절사, 묘제라고도 한다. 모든 제사 중에서 가장 중히 여겨 제사의식도 가장 완비되어 있는 사시제와 조상의 묘소에서 받드는 묘제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유형 : 의식행사

성격 : 제사   

예시 : 우리는 이번에 시제를 드리러 고향에 간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결혼하고 적응이 안 되는 시댁의 낯선 문화 중에 하나가 시제에 참석하는 것이다.

처음 결혼했을 당시 별다른 생각이 없어서인지 시제에 참석하는 것을 별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며느리였다. 몰라도 너무 몰랐다.

멋모르고 순순히 따라나섰던 며느리가 제 발등을 찍었다.

제는 선산의 위치였다. 가까웠다면 부담 없이 다녀왔으려나? 우리가 사는 곳에서 선산까지는 당일치기 왕복 8~9시간 거리다. 어쩌다 날짜가 나들이 시즌이라도 겹치면 왕복 10시간도 거뜬한 거리다.

결혼하고 나서 아이가 없던 시절에는 직장인의 황금 같은 토요일을 반납하고 따라나섰다.


아이가 태어난 후 아이를 데리고 그 멀고도 힘든 곳, 출발 한참 전부터 아니 며칠 전부터 마음까지 불편한 그곳에 간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머리가 굵어졌나? 슬슬 아이를 핑곗거리로 삼았다.

허나 아래층에 사시는 시어머니가 시제 음식 준비 순번이 올 때에는 양심상 차마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그곳에 다녀왔던 날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의 하루였다.

몇 년 후 옥탑방에서 탈출하고 나서 이제 시제는 내 일도 아니다는 생각에 나 몰라라 하고 싶어졌다. 아이와 함께 했던 그날의 수고로움이 떠올랐고 그 상황들을 재현하기 싫었다. 하는 수 없이 그전 날 억지로 지방에 거주하시는 친정엄마를 우리 집으로 호출한 적도 있다. 시간이 흐르니 나 조차도 미움받을 용기가 가득한 며느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다음 해에는 꼭 가겠다는 말을 남긴 채 몇 년이 흘렀고 그 뒤에는 코로나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결혼식 이후 스쳐 지나갔던 시댁 친척분들을 그곳에서 만났다. 어색한 인사가 오갔다. 갈 때마다 새로운 얼굴들도 보였다. 백부님과 백모님은 거의 다 오시지만 남편의 사촌형들은 아이들만 데려오곤 했다. 나와 비슷한 위치에 놓인 며느리들은 시제가 끝날 때까지 대부분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날이 올 줄 나 역시도 몰랐다.

시제 모실 음식은 아버님의 형제들(거의 백모님들이 준비하신다)과 그 자식들(아니 며느리들)이 돌아가면서 서열대로 순번을 정해서 준비한다. 아버님 형제들의 순서가 끝나면 집안 아들들이 돌아가면서 준비해야 한다.

시어머니가 음식 준비하고 나서 다음 내 순번은 13년 후였다. (코로나로 몇 년 연기되었다)

몇 년 전  시댁의 가장 큰 백부님이 돌아가셨고 집안의 제일 큰 며느리나 음식 장만하는 백부님의 며느리 정도만 참석하고 있는 시제 행사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의구심이 살짝 밀려온다.





선산에는 집에서 새벽 6시 전에 출발해야 10시 반 전후에 겨우 도착한다. 그래야 늦지 않게 시제상 차릴 준비를 할 수 있다. 단순하게 상만 차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경기도 오산만 되면 그나마 가까운 거리라 부담이 덜 하겠지)

1년 동안 비어있던 선산 옆의 컨테이너하우스 청소부터 해야 한다. 각종 벌레 시체들과의 사투를 시작으로 그동안 쌓인 먼지들을 밟고 여기저기 분주하게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날 신고 간 흰 양말은 다시 신을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하우스 안의 거실 겸 주방, 방과 화장실 청소가 완료되면 2차전이 시작된다. 시제 모실 제사용품 준비다. 여기서도 1년 동안 묶었던 상과 제기들, 병풍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배열해야 한다. 거기 모인 몇 안 되는 여자들은 누구 하나 내빼지 않고 서로 눈치를 보며 발 빠르게 움직인다.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나면 선산을 다듬고 바깥일을 했던 남자들이 하우스 안으로 들어온다. 제복을 입고 갓을 쓰고 예의를 갖춘다. 집안의 큰 백부님은 족보인 듯 낡은 책을 꺼내신다. 드디어 시작이다. 읊조리듯 낮은 목소리로 조상님들을 불러오시는 듯했다. 그 시간 거실에서는 이제 점심상 준비시작이다. 하루가 이리도 길었나? 아직도 점심 전이다.





"나 안 간다고 말씀드렸어?
미리 빨리 얘기 좀 해놓으라니까!!"



몇 년 동안 코로나 여파로 시제도 쉬어갔다. 남편과 그 일로 한동안 싸울(?) 일이 없었는데 올해부터 다시 시작이다. 며칠 전부터 남편을 닦달했다. 우리 음식준비 차례가 아니니까 안 가고 싶다고 당당히 얘기했다. 남편은 혼자 가면 심심하다고 이번에는 10살인 딸을 데려간다고 괜한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본인 부모님이랑 같이 잘  갔다 왔는데 굳이 왜 딸까지 데려가려 하는지 모르겠다.

당일치기 8시간 이상 걸리는 곳을 애가 가려고 할까? 엄마도 없는데? (남편이 호 혹시나 딸을 데려가면 애 낳고 처음으로 토요일에 오롯이 나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남편이 잔머리를 썼다. 아이를 꼬셨다. 평생 본인 손에 5만 원이라는 돈을 쥐어본 적 없는 아이한테 아빠가 현금 5만 원을 준다는 조건을 걸었다.  두 눈 동그랗게 뜨고 5만 원만 생각하는 딸내미가 곧바로 대답했다.

"엄마, 나 아빠 따라서 갈래. 대신 내 5만 원 뺏어가는 거 아니지? 나 사고 싶은 거 사도 되는 거지?"

며칠 전부터 사고 싶은 게 있다고 둘마트에 가고 싶어 했었다. 이런 나이스한 기회를 딸도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가 언제 네 돈을 뺏었다고 그러는 거야? 네 돈 그대로 고스란히 다 통장에 있다고 얘기했는데)

치사한 인간이 엄마 닮아서 순하고 순한 딸을 이번에는 칼국수가 아닌 돈으로 꼬드기다니, 역시 잔머리 귀재다.

(토요일에 혼자 있고 싶어서 절대 그런 거 아니지만) 5만 원의 유혹에 휩쓸려 따라간다는 딸을 붙잡지 않았다.

잘 다녀오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완전 시골 산속 구경도 하고 엄마 대신 어른들 일손도 거들고 조부모의 사랑도 듬뿍 받아오길 바란다.



토요일 새벽 정확히 5시 50분에

남편은 딸만 데리고 시댁으로 출발했고

7분 뒤 시부모님을 모시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며느리는

추억의 뉴욕제과를 그리워하며 약속 장소인 강남역으로 간다.








사진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