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에(아들이 겁나게 좋아하는)라면의 찰떡궁합인 알타리 김치를 가지고 오신 시엄니의 예고치 못한 충격적인 공격이다.
방어는커녕 총 맞은 것처럼 가슴 정중앙에 총알이 뚫고 지나갔다. 분명 내 앞에 계신시엄니의일방적인 공격이었지만적군의시아버지목소리도 겹쳐 들리는 듯했다.
"아, 아 (아니요), 아니, 아니, 아니.. 요요오."
어이구! 제대로 대답도 못하는 이 바보 똥멍청이! 도대체 너란 인간이란! 쯧쯧.
오늘도 출장 간 남편을 원망하며 누구 하나 내 앞에 잘 못 걸리기만 해 봐라! 잘근잘근 씹어먹어 주겠다는 굳은 의지만 소리소문 없이 활활 타올랐다.
아침마다 노오란 마을버스, 빠알간 서울행 광역버스, 새파란 서울 간선버스를 타고 경기 북부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던 시절이 괴로워 임신을 바란 적도 있었지만 아기의 '아'자도 모르는 여자라 덜컥 임신이 될까 봐 무서웠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 역시 애는 저절로 크는 것으로 생각했으니 육아의 세계는 1도 몰랐다.
사실 시댁 식구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한 아이의 탄생으로 이 집에서 존재감이 사라질까 두렵기도 했다.
남편도 3층 시댁에서 옥탑 4층으로 올라왔을 뿐 온전히 결혼한 남자 같지 않았다.
여전히 혼자서 이방인인 삶을 살아가며 새댁사춘기를 혹독히 겪고 있던 시절이었다.
모른 척하며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마음에 피임약을 먹기 시작했다.
(사실 아래층에 시부모님과 아가씨가 있어서 우리의 신혼생활은 불타오르기는커녕 뜨뜻미지근하지도 않았다)
피임약을 먹다 말다를 반복하며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시점에 본격적으로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놓고 물어보시지는 않았지만 며느리의 임신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쯤은 언제나 쉽게 알 수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기다리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손주가 아닌 손자를)
고된 회사 생활로 몸이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쉬고 싶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임신에 성공한 주위 동료들은 결혼하면 무조건 산후휴가와 육아휴직이라는 꽃길은 무조건 누리고 퇴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 꽃길만 걸어야 한다는데
노처녀와 애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는 험난한 부서에 발령 나기 전 먼저 움직여야 했다.
어디 한번 그 찬란한 꽃길에 도전해 볼까?
당차게 피임약을 끊고 임신 준비를 해보기로 마음먹은 찰나,
하필 그 시점에 남편이 발령이 났다. 툭하면 전국출장이다. 갔다 오면 2박 3일부터 통으로 일주일이다.
(에헤라디야~ 혼자만의 시간이다! 치킨 시켜서 나 혼자 산다나 봐야지, 룰루랄라~!)
임신이 안 되는 게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나름 산전검사 마치고 이상 없이 당당히 결혼한 여자다, 검사도 안 하고 검증이 안된 남편은 지금 어디 있나?)
왜 나한테 피임하냐고 물어보는데!!
(몰래 먹었던 피임약 끊은 지 1년 넘었는데요ㅡ.ㅡ;;)
요즘 며느리답지 않게 착하게 옥탑에 제 발로 들어가서 제 스스로 발등 찍어가며 그나마 이혼도 하지 않고 잘 살고 있다며 삼신할머니가 은혜를 주셨지만 첫 아이의 심장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 아이는 아들이었을까? 딸이었을까? 이제 와서 괜히 뒷북이다. 아들이었으면 그 집 며느리 좀 대우받고 살았으려나?)
시엄니의 피임질문 공격을 받고 부단히 노력한 결과였지만 안타까웠다. 그 뒤로 다시는 그 누구도 임신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겨우 임신에 성공했다.
임신과 동시에 입원을 하며 이 아이 하나만은 지키고 싶어서 곧바로 휴직을 신청했다. 그게 꽃길이었다면 꽃길이었을까?
산전 휴직에 산후휴직, 육아휴직의 시간은 쏜쌀같이 지나갔고 제대로 복직하지 못한 영혼은 지금도 영원히 먼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지금 내 옆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여쁜 딸이 하나 있다.
결혼하고 정확히 3년 3개월 만에 낳은 소중한 딸이다.
딸 하나 낳은 이후, 폭풍 같은 질문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고, 애 혼자면 외로운데 동생 낳아줘야 한다고, 애가 둘은 있어야 한다고, 딸이 있으면 아들도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쉬지 않고 퍼부었다.(특히나 길 가다가 마주친 모르는 할머니들은 왜 그리도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인가?)
시부모님도 손주가 아닌 손자를 원하셨기에 임신 중 성별을 공개했을 때에도 적잖은 실망을 하셨다.
9살 어린 아가씨가 결혼하자마자 두 달 만에 임신을 해서 우리 애가 입었던 옷을 물려줄 때에도
시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동생 낳으면 입혀야지 그 옷을 왜 주냐" (모르는 사람한테 준 것도 아닌데 왜 그러시나요?)
"돈 없어서 못 낳아요" 둘러대면 알아서 잘 크는 데 무슨 걱정이냐고 말씀하셨다.
아가씨는 젊어서(?) 그런지 첫째와 둘째 출산을 서른 전후로 마무리했다. (역시 애는 젊을 때 낳아야 한다는 말이 진리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아가씨가 딸 둘을 낳았다. 아들이었으면 딸만 하나 덜렁 낳은 며느리의 기가 팍팍 죽었을 터인데 딸만 둘이라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아가씨는 아직 셋째와 넷째도 충분히 가능한 나이다)
언젠가 시댁 식구 모임에서 우리 애와 아가씨의 애 둘이 시댁 거실을 빙빙 돌면서 시끄럽게 뛰어다녔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은 애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날따라 상당히 정신없었다.
그 와중에 시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머스마들도 아닌 데 왜 이리 애들이 부산스러운 거냐, 거 조용히 좀 해라!"
아무도 듣지 못했던 그 말을 시댁에서는 항상 소머즈귀를 장착하고 있는 그 집 며느리만 정확히 들었다.
아직도 손자를 기다리시는 시아버지의 속내가 궁금하다. 손이 귀한 집안도 아니고 아들이 넘쳐나는 집안에 무슨 연유로 아들을 그토록 바라실까?(며느리가 모르는 수백억 재산이라도 있으면 파헤쳐서라도 알고 싶다, 물려주실 재산이 수백억이라면 아들딸 구별 말고 몇이라도 낳아드려야지요)
하지만 절대 묻지 않는다. 괜히 말 꺼냈다가 아들하나 정도는 품에 안겨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일부러 항상 모른척했다.
하도 모른 척을 했더니 어느 날 먼저 용기를 내셨다. 쓰디쓴 빨강이슬이 한 잔을 털어 넣으시며
"요즘에는 다들 애를 늦게 낳던데, 수용(잘 알지도 못하는 먼 친척)이도 이번에 늦은 나이에 애(아들) 하나 낳았더라. 내가 보기엔 요즘에는 45살까지는 가능할 것 같은데 나도 그때까지 한번 기다려보마"
"........................................"
(아니 뭐라고요? 도대체 누구한테 하시는 말씀이신가요? 저 앞에서 지금 잘 놀고 있는 손녀는 아버님의 손주가 아닌가요? 지금 그 얘기는 저 말고 아가씨한테 하시는 말씀인 거죠?)
딸이 지금 3학년이다. 엄마는 꽉 찬 40대 중반이다. 이제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아버지가 기대하는) 임신 가능한 나이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는데 6월부터 만 나이 적용 진짜입니까? 실화입니까? 저 유효기간 연장되는 건가요? 시부모님은 아직도 포기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이제 포기하셨을까요? 궁금하지만 절대 묻지 않아요.
아버님!
저는 지금 우리 딸 하나로 만족합니다. 제게 아들은 없지만 아들보다 더 많이 손이 가는 (365일 소파와 한 몸인) 몸집이 거대한 아버님의 문제아 아들까지 데리고 살기 너무 벅찹니다. 저의 능력은 여기까지 인 듯합니다.
죄송하지만 그 부탁은 애 낳은 지 10년 차 되는 며느리로서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부디 손자에 대한 욕심은 거두어주세요. 저도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플리즈~~~~~~~~~~~~~~~~~~~~~~~!!!!
덧붙임) 늦둥이는 언제나 유행인가요? 남편의 여동생도 9살 어리고 남편 친구의 (저랑 동갑인) 아내가 곧 아이를 낳는 답니다. 첫째가 중학교에 입학했고 둘째가 5학년인 친구인데요. 저의 안 친한 친오빠도 첫째 중학생에 미취학인 동생이 있네요. 그리고 우리 옆단지에 사는 아이 친구 오빠는 군대에 있고요, 앞동에 사는 아이 친구 언니는 25살 직장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