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김치가 홀로 버스를 타고 옵니다.
고속버스는 친정엄마의 사랑을 싣고
차로 4시간 거리에 살고 계시는 친정 엄마는 김장철에 많은 양의 김치를 한꺼번에 담그지 않으신다. 엘베 없는 아파트 5층에서 김장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래전 몸이 아프시고 나서는 감히 시도하지 않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 김장철에는 엄마가 지인에게 직접 돈을 주고 우리가 먹을 김치를 부탁을 하신다. 마트에서 직접 필요한 만큼만 사 먹어도 된다고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말라고 매년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다. 자나 깨나 자식을 챙겨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더군다나 돈을 주고받아온 김치가 세 집(엄마, 친오빠, 나)이 나눠 먹기에는 넉넉지 않다고 생각하시는지 엄마는 본인의 컨디션이 괜찮으실 때 종종 소량으로 김치를 담그신다. 엄마는 평소에도 김장철 전에 자식들 먹는 김치가 떨어질까 봐 꽤나 신경 쓰고 계신다.
김치는 담가놓으셨지만 막상 바로 가지러 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우리 남매는 둘 다 타지에서 살고 있다. 보통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같은 행사가 있을 때 친정에 간다. 엄마가 김치를 담그실 때마다 매번 바로 가지러 갈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갈 때까지 마냥 기다리실 분도 아니다.
엄마는 다방면으로 김치를 바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셨다. 보통의 택배로 김치를 보낼 수도 있지만 집어던지거나 터질 수 있다고 불안해서 싫다고 하셨다. 다행히 엄마와 비슷한 사정에 놓인 친구분이 좋은 방법을 알려 주셨다. 그건 바로 '고속버스 당일 택배 서비스' 였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제시간에 맞춰 터미널에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엄마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뿐이다.
며칠 전 엄마는 시장에서 오랜만에 맘에 드는 통배추를 발견했다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차마 그냥 올 수가 없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서 아빠와 함께 차에 싣고 오셨다고 했다. 그날 오후 통배추를 시작으로 각종야채와 재료까지 하나하나 직접 다듬는 엄마의 손가락을 떠올려보니 마음이 아려온다. 엄마의 손가락은 류머티즘관절염 증상으로 손가락 마디가 여기저기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다. 덥고 습한 날씨에 무슨 고생이냐고 엄마한테 괜히 고생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쳐봤지만 한발 늦었다. 내가 전화했을 때는 이미 거하게 판을 벌리신 상태였다. 물론 하지 말라고 말려도 그 고집을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분명 늦은 시간까지 끙끙대시면서 혼자서 담은 김치를 통에 차곡차곡 쌓으셨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7시 45분, 제로데이 택배회사에서 예상했던 알림톡이 왔다. 고속버스 택배가 접수되었다는 톡이다.
고속버스 출발시간 8시, 예상 도착시간은 11시 40분이다. 예상 도착 시간 전 터미널에 도착해야 한다. 버스하차장 근처 화물 영업소 앞에서 김치가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게 내 임무다. 고속버스 택배 시스템을 잘 몰랐던 때 오후에 보내주신 김치를 도착시간보다 늦게 찾으러 갔다가 영업소가 문을 닫아서 보내주신 김치를 당일 찾지 못한 아찔했던 경험이 있다. (다음 날 다시 찾으러 갔더니 김치가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부글부글 끓면서 미쳐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토로했다가 엄마와 된통 싸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이후 엄마도 김치를 일찍 보내주신다.
꿉꿉한 날씨에 한참을 기다려 무사히 김치를 가지고 왔다. 마음 한구석에는 솔직히 엄마한테 왜 또 보냈냐고, 더 이상 안 보내도 괜찮다고 다음부터는 보내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자식을 챙겨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조그미나마 알 것 같다. 그저 김치가 잘 도착했으니 감사한 마음을 담아 맛있게 잘 먹겠다고만 말했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담근 생김치가 혼자 버스를 타고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김치통 뚜껑을 열어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평소 통깨를 좋아하시는 엄마의 김치가 확실하다. 사랑 듬뿍 그득하게 뿌려진 깨만큼이나 엄마의 사랑은 셀 수가 없다.
더운 날씨에 요즘 입맛도 없는데 엄마가 보내주신 생김치를 쭉쭉 찢어 밥 한술 떠야겠다.
사진출처 : 직접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