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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Dec 31. 2022

집콕남을 대신하는 그녀♡

2023년 토끼의 해에도 잘 부탁한다!

"오늘은 약속 없어? 우리 갔다 올게, 혼자 있을 거지?

배 고프면 라면 끓여서 알타리 꺼내서 같이 먹어"


그렇게 한마디를 남긴 채 그녀의 손을 잡고 급하게 서둘렀다.

7분 후에 도착 예정인 서울행 버스를 타야 한다.

"빨리 가자, 버스 놓치면 한참 기다려야 해"



워낙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여자 사람은

집콕을 좋아하고 방콕을 사랑하며 지옥철을 극도로 혐오하는 남자 사람과 결혼했다.


덕분에 지난 크리스마스 주말을 친구네 집에서 작은 케이크와 함께 딴 집콕을 하며 신세를 졌다.

다음날에는 송년회 겸 시댁식구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보냈다.

7시간 이상 같은 공간에서 먹고 기다리고 다시 먹고 기다리면서

보내는 건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꽤나 불편한 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이대로 이번 크리스마스와 연말도 작년처럼 아무 추억도 없이 허무하게 지나갈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속 시원하게 뚫어 줄 곳이 필요했다.

이번만큼은 대형 카페도 근처 공원도 아니다. 자주 가던 뒷산은 더더욱 아니다.

코로나로 근 3년의 시간 동안 자유롭지 못했던 지난날들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을 만큼의 뻥 뚫린 곳이길 바랐다.

밤새 눈과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 있는 용기는 그득했지만 혼자 나설 만큼의 용기까지는 담아내질 못했다.

겨우내 장소는 물색했지만 집콕남에게 같이 가자고 말해봤자 거절당하기 뻔했다.

어쩔 수 없이 오늘도 그녀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월요일에는 피아노 학원을 갔다 와도 1시 40분에 귀가하는 그녀.

여전히 집콕 남자를 대신해 그 여자의 희생양이 된 이상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그녀는

서울행 버스에 같이 올랐다.


소파에서 3~4시간 꿈쩍도 하지 않고 집중해서 골프와 주식 유튜브에 몰입하는 남자의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가?

때론 집에 콕 처박혀 방 안에서 무엇인가 만들기를 하면서 몇 시간씩 몰입하는 그녀,

인형 하나 가지고도 2시간 이상 놀 수 있는 무한한 상상력의 힘을 가진 그녀는

어쩌면 집콕남을 더 닮았는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월요일은 넘쳐나는 시간 속에 본인이 원하는 놀이를 하며 신나게 미친 듯이 노는 날이다.

월요일의 시간을 빼앗는 여자사람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대신 여자사람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첫 번째 무기는 평소 몸에 해롭다는 핑계로 잘 사주지 않는 과일 주스다.

얼마 전 은행 어플 이벤트에서 받은 스벅 기프트콘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다.

두 번째 무기는 어릴 적부터 탄수화물 중독되면 안 된다고 평소에 라면과 함께 일부러 먹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칼국수다.

칼국수와 라면이라면 자다가도 바로 먹을 수 있는 미친 소화력을 뽐내는 그녀에게 칼국수는 최애 소울푸드다.


무기를 공개하자마자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벌써 칼국수를 순식간에 흡입 완료하고 과일 주스를 3초 만에 들이킨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다.



코로나로 3년간 묶여 있던 발이 풀린 그날,

우리는 광화문광장에 내려서 얼마 전에 교보에 입점해서 핫하다는 스타벅스에서 일단 목을 축였다.

어둑해질 무렵 서울 빛초롱 축제를 그 누구보다 신나게 누볐다.

평소에 토끼를 좋아하는 그녀와 다가올 23년의 토끼의 해를 기대하며 도란도란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걷기 시작했다.

청계천을 거쳐 명동까지 극한의 걷기 훈련을 마친 후 비로소 도착한 명동교자.

그곳의 칼국수는 극기 훈련으로 지친 다리를 다시 1만 보 이상을 걸을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마법의 밀가루다.

칼국수와 만두밖에 허락할 수 없는 뱃속이 푸드트럭들이 즐비한 명동 거리를 거닐 때는 꽤나 원망스러웠다. 오늘 하루쯤은 그녀를 품었던 임산부 시절처럼 배가 거대하게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도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넘쳤다.

잠시나마 먹방 유튜버 쯔양이나 히밥이 부러웠지만 괜찮았다.

지금 내 옆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사랑하는 그녀가 내 손을 잡고 함께 거닐고 있기에.



머지않은 시간,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약속을 잡고 혼자서 문을 열고

'나갔다 올게'

한마디 건네며 외출하는 그녀를 상상해 본다.

상상을 해보는 데 곧 들이닥칠 현실이 될 것 같아서 덜컥 겁이 난다.

겁을 내기 전에 그 시간을 아쉬움 없이 받아들일 준비를 천천히 해야지.

그 시간이 온다 해도 쿨하게 보내줄 수 마음,

일찍 들어오라는 잔소리 대신 넉넉한 용돈을 주며 '재미있게 잘 놀고 와' 라며 힘껏 안아줄 수 있는 용기를 키우고 싶다.



항상 내 옆에서 함께해줘서 고맙다!
자고 일어나면 펼쳐지는 토끼의 해
2023년도 잘 부탁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덧붙임) 내년에는 집콕남자를 끌고 나와 함께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궁투어를 해보고 싶은 소박한 계획을 세워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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