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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울 Mar 25. 2023

남들 아플 때 같이 안 아프면 큰일난다.


1.

20대 때 나는 내가 무슨 방어력 만렙 금강불괴인 줄 알았다. 하루하루 삶이 별로 힘들거나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2.

그런데 지금 내가 20대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통각 센서부터 기름칠하고 윤이 나게 닦아 놓을 것이다.


3.

만약 본인의 주변인들은 분명 어딘가 아파 보이는데 정작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면, 보통 2가지 경우다.


4.

1. 내가 압도적으로 위에 있거나.

2. 압도적으로 밑에 있거나.


즉 알아서 잘하고 있는 중이던가, 아주 자아아알하고 자빠져있는 중이거나. 난 우리 엄마가 매일 잘 하고 자빠져 있다길래 진짜 칭찬해주는 줄.


5.

난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그림을 못 그려서 결국 포기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람을 제일 미치게 하는 게 뭘까?


6.

내 눈에는 안 보이는 거.


7.

이게 무슨 느낌이냐면, 어느 날 푸른색이 예쁜 바다 그림을 봤다. 나도 그런 바다를 그리고 싶어서 고대로 베껴서 한번 그려보는 거다.


그런데 내 그림은 무슨 죽음의 바다 같다. 분명히 옆에다 딱 두고 고대로 보고 그렸는데.


8.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포토샵으로 그림을 불러와본다. 그리고 스포이드로 푸른 바다색깔을 그대로 추출해 본다. 그런데 미치고 팔짝 뛰는 게, 분명 내 눈에는 파란색 밖에 안 보이는데 붉은 계통 색이 스포이드로 빨려 나오는 거다.


9.

아니 대체 파란색 바다에서 파란색을 뽑아냈는데
이 붉은색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거야?


10.

세상은 단색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절대로.


11.

내게 주어진 업무가 너무 간단하게만 느껴질 때,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마음이 10길 물속도 아니라 1길 물속처럼 훤히 보일 때, 경제 불황이니 물가상승이니 세상이 너무 호들갑 떤다고만 느껴질 때.


12.

즉 인생이 나한테는 만만하게 느껴질 때. 그런데 세상이 당신한테만 만만할 리가 없잖아.


13.

이럴 땐 보통 두 가지 경우다. 이 판에서 내가 호구거나, 걔들이 호구거나. 


14.

아 맞다.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케이스는 바로 이것.


나도 안 아픈데 내 주위 사람도 안 아파할 때. 진짜 안 아파서 안 아픈 게 아니라, 다들 통각이 없는 사람 들 속에 있는 경우.


그때 빨리 안 벗어나면 지금 나처럼 매일 아픔을 느끼면서 뛰는 수밖에 없다. 아야 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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