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마무리는 설렁탕

열쩡의 일상 기록

by 열쩡

아침부터 창밖에는 비가 타닥타닥 리듬을 타며 내리고 있다. 경쾌한 그 소리에 덩달아 마음도 들뜬다.

오후에 있는 자격증 시험 준비로 기출문제 풀이 인강을 2배속으로 듣고 있지만, 집중은 자꾸만 창밖으로 새어나간다.

‘아… 이런 날에는 통유리 카페에 앉아 창문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마셔야 하는데.’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따뜻해진다.

아쉬운 대로 집에 있던 카누 봉지를 뜯어 빠르게 커피를 타 본다. 향긋한 냄새가 퍼지자 비로소 마음이 조금은 진정된다.


시험 입실 시간은 오후 2시 40분. 1시 40분에는 출발해야 하지만 점심을 챙기기에는 애매하다. 요즘은 밥만 먹으면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앉아 중력의 존재를 새삼 실감한다.

먹자니 졸릴까 걱정이고, 안 먹자니 평소 삼시 세끼를 꼬박 챙겨 먹는 나답지 않다. 무엇보다 시험이 끝나는 오후 4시 30분까지 주린 배를 붙잡고 버틸 자신이 없다.


게다가 나는 배가 고프면 무의식적으로 어금니를 꽉 깨무는 습관이 있다. 이게 온몸을 긴장시켜 오히려 에너지를 더 빨리 소모하게 한다. 말 그대로 ‘에너지 고갈의 악순환’이다.

하지만 오늘 하루, 아니 그 1시간 반의 시험 시간만 버티면 되니까 결국 밥은 건너뛰기로 한다.


시험장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작은 둘레길 같다. 학교 입구에서 건물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평소 강한 햇살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던 꽃들이 빗물에 씻겨 제 빛깔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샤워를 마친 꽃들의 짙어진 향기 사이로 교복을 입은 열여덟 살 소녀가 스쳐 지나간다. 봄의 문턱에서 친구들에게 향하던 그 소녀는 오늘의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문제 1번을 읽자마자 눈썹이 절로 치켜올라간다. 마지막 문제를 풀고 나니 한숨이 새어 나온다. 답을 맞혀보지 않아도 망했다는 걸 직감할 수 있다.

아침부터 괜히 기분이 좋아서 ‘설마 소설《운수 좋은 날》은 아니겠지?’ 했는데, 말이 씨가 됐다.


시험을 마치고 교정을 나서는 길, 슬픔이 추적추적 마음을 적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적해서 좋았던 교정이 지금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쓸쓸하다.

배고픔 때문인지, 실망감 때문인지 모르지만 속 깊은 곳에서 쓴 내가 천천히 올라온다.


집에 가는 길에 설렁탕이나 한 그릇 사 먹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우산 아래, 우리가 피워낸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