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서울 > 비행기로 이탈리아 > 2일차 렌터카 찾기
아침부터 부지런히 인천 공항행 리무진 버스를 탔다. 코로나 팬데믹 때 가장 그리웠던 것 중 하나는 약간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맡으며 공항을 향하는 것 자체였는데, 이번엔 새벽은 아니었지만 간만의 장기 여행이어서인지 공항으로 가는 길 자체가 매우 설렜다. 여행을 떠나는 나도 별 탈 없이 즐거운 일들로 가득하기를, 그리고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들도 무탈하기를.
처음 비행기를 예약했을 때보다 출발 시간이 1시간 가량 늦어졌기 때문에 교통 체증이 심한 아침 러시 아워는 피할 수 있었다. 나는 리무진 버스 노선의 마지막 역에서 탔기 때문에 버스 내부에 승객이 아주 많았는데, 나처럼 이제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한국 여행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서울은 어떤 도시였을까? 다시 오고 싶은 곳일지, 아니면 별 볼 일 없는 곳일지 모르겠다. 그걸 결정짓는 건 무엇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먼저, 그 나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신기하고 새로운 것들이 많고,
둘째 그걸 내가 좋아했을 때,
셋째로, 가보고 싶은 곳들이 너무 많아서
일정 중에 다 못 봤을 때,
넷째, 여행지가 끊임없이 변하는 동시에
변하지 않는 것을 가졌을 때
나라면 여행지에 고국에서 전부 할 수 있는 것만 있다면 굳이 새로운 나라에 가지는 않을 것 같고, 그조차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매력도는 떨어질 듯하다. 경험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한번의 방문으로는 다 못했을 때도 다시 와보고 싶단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좋았던 몇 가지는 변하지 않는 동시에 새로운 것들이 계속 발생하는 곳이라면 그리움과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가 동시에 있으니 정말 지속적으로 가고 싶은 여행지가 될 거 같다. 지금 향하고 있는 토스카나는 내게 어떤 곳으로 남게될 지 더 기대가 됐다.
이탈리아는 운이 좋게도 이전에 두 번 여행해봤다. 첫 번째는 대학생 때 유럽 여러 나라를 찍먹하면서 다니는 세미 패키지 배낭여행이었고, 이때 굵직한 대도시들을 관광하며 이탈리아에 언젠가 또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믿거나 말거나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졌었는데, 실제로 두 번 이상 방문하게 되었다.
두번째 역시 대학생 때였는데, 이때는 10개월 정도의 영국 교환학생을 마무리하고 귀국하기 전에 갔던 여행이었다. 이때는 첫 여행 때 가보지 못했던 밀라노 같은 큰 도시와 거기에서 멀지 않은 피사, 친퀘테레, 베로나와 같이 조금 더 작은 도시들에 갔었다. 그때도 학기가 끝난 때라 6월 중순 정도였는데, 음식도 너무 맛있고 바다나 건축물, 풍경 등 볼 게 너무 많았지만 관광을 다니기에는 꽤 더웠던 것 같다.
그 당시 굉장히 강렬했던 기억 중 하나가 있는데, 베로나에서였다. 한낮에 이곳 저곳 관광을 다니면서 너무 덥고 지친 와중에 목이 너무 말라서 아마 카페 겸 바(Bar)에 들어갔던 것 같다. 일단 햇빛을 피해 실내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한층 시원해진 게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주인 아저씨의 추천을 받아 살짝 달콤한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아마 모스카토 다스티-을 한 잔 마셨는데, 그때 느꼈던 청량함과 신선함이란! 이런 게 진짜 refresher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날이 많이 더워지면 그때의 생각이 나며 시원한 화이트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싶어한다. 이렇게 이태리 와인은 약 10여년 전에 이미 내게 매년 여름이면 생각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과연 24년 6월의 토스카나는 나에게 어떤 인상을 주게 될까? 토스카나는 다시 가고 싶은 곳일까, 아님 이번 일주일 정도의 여행으로 모든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곳일까? 그렇게 8박 10일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비행기에서 두 번의 식사와 1번의 간식을 먹으면 대략 14시간이 지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한참 전쟁 중이라 그렇게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거다. 예전엔 이 정도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다리가 너무 아파서 자꾸 비행기 뒤편의 빈 공간으로 간다. 비상문에 달린 창문을 살짝 열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눈으로 하얗게 덮인 땅을 지나고 있다. 그게 너무 예뻐서 한참을 쳐다보다 다시 자리로 들어오자 너무 강한 빛을 봤기 때문인지 눈이 약간 시리다. 원래 비행기에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나는 미리 다운받아 온 영상들을 보며 시간을 달랬다.
드디어 로마 도착! 서울에서 출발할 때 우리가 타는 항공기와 연결되는 항공편의 도착이 지연되면서 연쇄적으로 한 시간 가량 늦게 출발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로마에 도착하는 시간도 더 늦어졌다. 하지만 얼마 만에 밟는 유럽 땅인지!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입국 수속은 굉장히 빨랐는데, 한국 여권 소유자는 한쪽으로 몰아서 자동 출입국 심사 같은 것을 한번 거치고, 전담 인력이 여권의 얼굴과 대조해보고 입국 허가 도장을 바로 찍어주는 느낌이었다. 한국 여권의 묘한 힘을 느끼면서 패스트 트랙 같은 수속을 거쳤으나, 문제는 짐찾기였다. 중간에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면서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차례차례 짐이 나오고, 드디어 공항 밖으로!
K와 Y는 한국에서 유심 바우처를 미리 사뒀기 때문에 부랴부랴 통신사 부스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너무나 유럽스럽게도 담당자가 곧 돌아온다는 종이를 붙여두고 자리를 비웠다. 분명 구글 지도에는 저녁 9시에 문을 닫는다고 쓰여 있는데, 저녁 8시인데 곧 돌아온다는 종이가 붙어있다는 것은 정말 잠시 자리를 비운 걸까, 아니면 오늘 영업은 종료했다는 걸까? 주변 부스에 있는 직원들에게 물어봐도 자신들은 모른단다. 그리고 심지어 40분을 더 기다렸는데도 담당자가 돌아오지 않을 때는?
만약 지금 여기에서 유심을 교환하지 못하면 내일 아침에 렌터카를 인수하러 오며 들르는 방법과 아님 포기하고 다른 수를 찾는 방법이 있을 텐데, 잠시라도 핸드폰을 못 하는 상황이 되면 힘든 한국인에게 두 처사는 모두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일단 구글 지도 상 9시에 닫는다고 했으니, 9시까지 그냥 기다리기로 하고 딱 5분 정도 지나자 담당자가 유리창에 쳐진 발을 걷어 올리며 해맑게 등장했다. 그렇게 현지 통화에 데이터 100GB가 포함된 유심을 야무지게 챙겼다.
나는 한국에서 이심을 설치해와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켰더니 다행히 연결이 잘 되었다. 모두가 같은 통신 상품을 사용하면 혹시나 이탈리아 시골에서 인터넷을 아무도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을까봐 가급적 각기 다른 플랜으로 사기로 했다. 나는 10일 동안 매일 1GB씩 사용 후(5G)에 저속 무제한으로 사용하는 플랜을 택했는데, 체감 상 이탈리아의 5G는 한국의 LTE보다 느렸다.
공항에서 호스텔로 갈 수 있는 셔틀버스를 타러 갔다. 택시를 탈지, 셔틀을 탈지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이탈리아의 택시 어플을 써보려고 했는데, 쉬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 어렵사리 찾은 셔틀버스 승강장에서 미니밴을 타고 호스텔로 가는데, 기사님의 상당한 드라이빙 솜씨에 잠시 잊었던 안전벨트를 찾게 되었다.
호스텔 바로 옆에 있는 쇼핑몰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마감 시간이 가까워서 대부분의 식당에서 주문을 받지 않았다. 원래 제 시간에 도착했다면 열었을 수도 있겠지만 아쉬운 대로 나홀로 영업 중인 버거킹에서 출출함을 달랠 주전부리를 이것저것 사왔다. 약간의 짐을 풀고 내일의 대략적인 일정을 얘기하며 1일차는 종료. 아직까지는 이탈리아에 왔다는 현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시차 때문인지 새벽 6시부터 눈이 떠졌다. 괜히 동침인의 잠을 깨우고 싶지는 않아서 침대에 누운 채로 오늘 일정을 괜히 한번 톺아보고 아침을 먹을 만한 곳이 있는지,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이탈리아 운전이 시작될 텐데 주행 시 주의할 만한 것들이 있을지 찾아봤다. 두 명의 드라이버 중 한 명이기 때문!
• 먼저 렌터카를 인수하며 확인해야 할 것들
1. 내/외부에 파손 흔적 있는지 확인 – 나중을 위해 사진과 동영상 찍어두기
2. 기름
– 반납해야 할 때 보통 가득 채워서 반납하는데, 출발하면서도 가득 채워져 있는지 확인해두기
- 휘발유, 또는 디젤(경유) 중 어떤 것을 넣어야 하는지 확인
3. 몇 km나 달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시보드 찍어두기
4. 와이퍼 상태 – 비가 올 때를 대비하여 와이퍼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 (워셔액은 비어있었다)
5. 전조등 상태 – 전조등 문제 없이 잘 들어오는지, 어떻게 켜고 끄는지 확인
6. 에어컨/히터/창문 상태 – 잘 작동되는지 확인
7. 브레이크 상태 – 브레이크 잘 되는지 확인
8. 트렁크에 문제 없는지 확인
• 이탈리아에서 운전을 하며 알아야 하는 것들
1. 1차선은 추월 차선으로, 2차선에서 달리다가 추월하고 싶을 때만 잠깐 지나간다. 한국에서는 추월하면 2차선에서 보통 난리가 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다시 2차선으로 들어올 때 차들이 잘 양보해준다
2. 도로에서 바로 뒤에서 좇아오는 차들이 많다. 그러나 차선 양보는 잘 해준다
3. 한국에 카카오내비, 티맵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도 이태리 로컬 내비게이션앱이 있다. 특히 과속 카메라 등에 대한 정보가 잘 나오기 때문에 구글 지도와 동시에 켜서 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4. ZTL(Zona Traffico Limitato)이 써 있는 지역은 진입 불가. 시간 제한이 있는 곳일 수도 있는데, 가급적 피해간다
5. 고속도로에서 비용 지불은 현금, 카드 둘 다 된다. 카드는 carte라고 쓰인 곳으로 가면 되고, 교통카드 찍듯 터치하는 것만으로도 비용이 지불된다
6. 고속도로 최고 시속은 130km. 꽤 빨리 달리는 차들이 있다
7. 회전교차로 – 먼저 진입한 차들이 항상 우선이다. 그래서 교통량이 많은 곳에서는 진입하는 데 한참 걸리기도. 한번은 오는 차를 못 보고 진입했더니 엄청 빵빵거렸다
8. Stop이라고 표지판에 쓰여 있다면 반드시 멈췄다가 출발
9. 작은 도로에서 큰 도로로 진입할 때 차들이 보통 급정거한다. 일단 멈추기는 하는 모양. 막 달려와서 부딪칠 것 같았는데 대부분은 끽 하고 멈춘다
짐을 챙겨서는 어제 호스텔 리셉션에서 예약해둔 셔틀을 타고 다시 공항으로 출발. 우리 호스텔이 마지막 픽업이었는지 미니밴이 외국 손님들과 짐가방으로 가득 차있다. 뒷좌석에 세 자리밖에 남지 않아 K가 운전석 바로 옆자리에 탔는데, “자신이 오늘의 가이드(I’m your guide today)”라고 너스레를 떨며 자리에 앉았다. 차에 탄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웃으며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유머+센스는 정말 타고나서, 내가 굉장히 좋아하고 또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다. 차에서 내리면서 뉴질랜드에서 왔다는 어떤 아주머니는 “오늘의 가이드에 대해 정보가 부족한 것 같다”며 작은 대화를 이어 나가기도 했다. 만약 나혼자 여행을 왔다면, 이런 사소한 재미들은 몰랐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이번 여행이 더 즐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공항 내 렌터카 대여 부스를 찾아 순번을 QR로 등록했는데, 대략 40분 이상 걸릴 것 같아 둘씩 나눠 아침 식사를 하고 오기로 했다. 렌터카 예약을 한 Y와 함께 같은 업체의 다른 대여 부스가 있는지 공항을 한바퀴 휘 둘러봤지만 없었기 때문에 바로 카페테리아에 갔다. 각종 파니니, 샌드위치 등과 커피를 파는 곳으로, 공항/항공사 직원들과 일반 고객들이 한창 아침 식사 중이었다. 우리는 프로슈토가 끼워진 얇은 샌드위치와 카푸치노 두 잔을 주문했다. 참고로 이탈리아에서는 카푸치노를 오전 11시 이후에는 안 시킨다고 한다. 외국인에게는 상관 없다고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불문율인가보다.
총 4개의 렌터카 창구 중 두 개는 로컬 창구, 하나는 노약자(priority) 전담, 나머지 하나는 인터내셔널 창구로 추정되는데, 그렇다고 로컬 담당이 인터내셔널 업무를 못하는 건 아니어보였다. 우리 앞의 인터내셔널 손님은 영어도 이탈리아어도 전혀 안 통하는 중국인 커플이었는데 절차 상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계속 창구 직원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몸짓을 하며 격앙된 언성이 오갔고, 절차에 진척이 없어 시간도 엄청 오래 걸렸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우리도 동양인처럼 보이니까 중국어를 할 수 있는지 업체에서도, 그 커플도 물어봤지만, 안타깝게도 중국어를 할 수 있는 K는 교대로 아침식사를 하러 자리를 비운 상황. 차라리 도와줘서 우리 차례가 빨리 올 수 있었다면 도와줬을 거다. (그런데, 영어도 이탈리아어도 못하는데 어떻게 도로의 표지판을 보며 운전을 하려고 하는 걸까? 한편으로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 순서의 번호는 화면에서 이미 한참을 넘어갔고, 로컬 창구에 우리 순서가 한참 지나갔다고 말을 하니 지금 응대하는 손님 바로 다음에 도와주겠다고 했다. 차례를 기다리다가 대여 시작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려서 동동거리고 있었던 지라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Y가 물어본 건데 통한 거다. 마지막 날 6시간을 추가 대여하는 요청까지 더해 모든 처리를 밟고 차가 세워져 있는 주차동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받은 차는 폭스바겐 티구안! 트렁크에 캐리어를 전부 넣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3개까지밖에 안 들어가서 24인치 하나는 뒷좌석에 넣고 담요로 가리고 다녔다.
워낙 유럽은 렌터카 트렁크 도난 사고에 대한 흉흉한 소문과 실제 지인들의 경험이 많기 때문에 차와 캐리어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보안끈과 자물쇠를 이동할 때마다 채우고 다녔다.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건지 원래 토스카나는 도난 사건이 많지 않은 곳인지 모르겠지만 여행 내내 도난 문제는 없었다.
유럽에서 차를 렌트할 때 일반적인 준비물
1. 자물쇠와 긴 체인 (다ㅇ소에 판다)
2. 짐을 가릴 수 있는 담요나 천 (우리처럼 혹시 뒷좌석에 짐을 놓고 다녀야할 때를 대비)
3. 휴대폰 거치대 (구형 자동차를 받는 경우에 대비)
4. 휴대폰 충전기 (자동차가 C타입일지, USB 타입일지 모르므로 둘 다 준비하면 좋을 것 같다)
애플 카플레이가 지원되는 자동차라 음악도 틀 수 있고, 구글 지도도 인포테인먼트를 통해 잘 볼 수 있었는데, 핸드폰을 고정할 수 있는 거치대를 한국에서 가져갔던 터라 둘 다 잘 사용했다. 다만 차에서 충전할 수 있는 라인이 C타입으로 연결해야 하는 거라 USB 타입만 있었던 나는 Y의 라인을 빌려 썼었다. 내비게이션을 계속 켜고 주행하다보면 배터리가 꽤 빨리 닳기 때문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많이 찍어야 하는 날이면 보조 배터리를 연결하고 있어야 했다. 어떤 자동차를 뽑게(?) 될지 모르니까 이런 저런 준비가 잘 되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정말 본격적으로 이탈리아 여행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