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 여행기, 6일차

조식 박스, 올리브 농장 투어, 안티노리 와이너리 투어

by Starrwy

[Sustainable breakfast box]


아침이 밝았다. 숙소가 1층이다보니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일 까봐 창문에 커튼이란 커튼은 다 치고 잠들었는데, 덕분에 해가 안 들어서 꽤 오래 잘 수 있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잠시 숙소 바로 앞의 부지를 거니는데, 붉은 장미꽃이 만발한 앞마당, 하얗게 부서지는 오렌지자스민 향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없는 수영장, 그 가장자리를 따라 작은 물살이 이는 풍경이 마치 천국 같다.



여기 저기 사진을 찍고 있자 하니 어제 전화로 리셉션에 주문해둔 조식 박스를 들고 스태프가 찾아왔다. Savory(짠 맛) 또는 Sweet(단 맛) 중에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Savory를 택했다. K는 조식은 건너뛰고 싶다고 하여, 일단 박스 오픈! 샌드위치와 삶은 계란, 우유와 주스, 요거트와 그래놀라, 오렌지와 커피 캡슐 한 알씩이 들어있었다. 너무 귀엽다. 모두 재활용할 수 있는 자재로 구성된 게 꽤 세심했다. 이곳에선 이런 방식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구나.


사진은 Y와 H가 주문한 2인분의 조식 박스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는 양은 아니어서, 일부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시작은 캡슐 커피 내리기. 치즈와 루꼴라의 향이 입 안 가득 느껴졌던 샌드위치, 노른자까지 알맞게 익었던 삶은 계란, 딱 기본인 요거트. 다 맛있었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오렌지도 굉장히 달고 맛있었다. 만족스럽다.



[올리브 농장 투어]


오늘은 투어 데이. 먼저 오전 시간엔 H가 미리 예약해둔 올리브 투어다. 농장을 둘러보고 올리브유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투어로, 숙소와 약간의 거리가 있어 2시간 가량을 차로 내달렸다. 평일의 이탈리아 고속도로에는 커다란 화물 차량이 많아 속도를 내며 운전하는 게 조금 무서웠다. 고속도로지만 편도 2차선 정도라서, 한 차선을 화물차나 느리게 달리는 차량이 점거(?)하고 있으면 1차선을 130km 의 무서운 속도로 달릴 수 밖에 없는 것.


일단 투어 호스트에게 전달 받은 주소를 찍고 출발했다. 농장 입구를 잘 못찾겠어서 호스트에게 연락을 했는데, 조금 떨어져있는 엉뚱한 곳의 구글맵 좌표를 찍어주는 거다. 그래서 다시 그 근처까지 가서 주차를 해두고 걸어갔는데, 거긴 농장이 아닌 일반 가정집 주소였다.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를 때 마침 집주인이 아침 장을 봐서 딱 본인의 집으로 들어가려던 차였고, 우리가 자기 집 앞에서 뭘 하고 있는지 지켜보던 와중이었던 것. 우리는 철썩같이 그 집이 올리브 투어를 하는 시작 지점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당당히 벨을 눌렀는데, 장 봐서 집으로 들어가려던 집 주인은 웬 낯선 아시안 여자애들이 자기 집을 방문하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거라니. 내가 집주인이었어도 황당하고 웃겼을 것 같다.



이미 투어가 시작하기로 했던 시간은 훌쩍 지났고, 살짝 투어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이미 비용은 지불되었고 환불은 불가하다는 H의 말이 경종이 울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호스트에게 전화를 해서 다시 문의를 하니, 아까 차에 타고 긴가민가 하며 지나갔던 그 농장이었다. 농장으로 들어가는 정문이 가던 길의 7시 방향에 있어서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못해 지나쳐버린 것.


호스트의 제대로 된 안내대로 길가에 차를 대놓고 농장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곳은 유기농으로 채소를 재배하여 지역 레스토랑 등에 납품하거나, 고객에 직거래 사업을 하는 농장으로, 그 뜻에 동의한 젊은이들이 여럿 일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는 더 길게 투어를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 다음 일정이 또 예정되어 있어 가급적 농장 투어는 줄이고 올리브유 시식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빗물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는 텃밭 배치라든지, 근처에 심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작물들, 자신의 사업 모델을 어떻게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근처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오기도 한다고 한다. 나 또한 작은 옥상 텃밭을 갖고 있어, 어떤 작물들을 키우는지에 대해 투어 가이드와 함께 이야기했다.




텃밭을 지나 염소를 방목하는 작은 목장과 토끼 사육장을 둘러봤다. H는 용감하게도 목장 안으로 들어가 염소를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가이드는 토끼도 한 마리 데려와 농장에서 키우고 있는 토끼에 얽힌 에피소드를 잔뜩 풀어놨다. 기하급수적인 번식을 막기 위해 성별에 따라 토끼들을 분리해 사육하고 있으며, 밤에는 근처 숲에서 내려오는 여우나 멧돼지 등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을 켜둔다고 한다. 처음엔 도망가기 위해 발버둥치던 토끼도 우리가 쓰다듬는 손길이 맘에 들었는지, 체념한 건지 가이드 품에 가만히 안겨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대망의 올리브유 시식. 다시 차를 타고 올리브 밭을 지나 넓은 안마당과 두 채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탁 트인 언덕 아래로 올리브 나무 밭이 넓게 펼쳐졌다. 앞마당엔 우리를 위한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강한 햇살을 살짝 가려주는 나무 발로 만들어진 지붕이 꽤 잘 어울렸다.




이 농장에서 만드는 올리브유는 냉압착 방식이며, 올리브유는 햇빛에 변질되기 쉬우므로 특수 제작한 스테인리스 재질의 병에 담는다고 한다. Mild한 맛과 강한 맛이 있는데, 강한 맛 올리브유에서는 정말 목을 탁 치는 스파이시함이 느껴졌다. 가이드는 우리의 반응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아마 이런 올리브유를 어릴 때부터 접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르는, 외지인만 느낄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싶었다. 가이드는 좋은 올리브유를 고르는 방법과 보관하는 방법 등에 대해 설명해줬다. 산도가 낮고 쓴맛이 나는 올리브오일이 좋다고 한다. 햇빛이 닿지 않는 상온의 공간에 보관하는 게 좋고, 구매 후 2년 내 소비해야 한다고 한다.



준비되어 있던 빵에 올리브유를 듬뿍 뿌려 입에 넣었더니 입 안과 코 가득 향긋한 올리브유향이 느껴진다. 점심 시간이 다가온 지라 맛있는 올리브유 탓(?)을 하며 빵을 잔뜩 먹었다.



올리브유로 만든 비누, 화장품도 소개해주고, 여러 종류의 꿀과 발사믹 식초도 맛보여주었다. 아카시아꿀, 밤꿀, 숲꿀, 잡꿀 등등 꽃에 따라 꿀의 맛이 확확 달라지는 게 당연한 동시에 신기했다. 숙성 정도에 따라 발사믹 식초도 맛이 다 달랐는데, 은은하게 달면서 톡 쏘는 시큼한 맛이 꽤 마음에 들었다.


각자 올리브유 한 병씩을 구매하고, 나중에 주문할 때 할인 받을 수 있는 명함도 받아왔다.



[안티노리 와이너리 투어]


그 다음 목적지인 안티노리 와이너리를 향해 출발했다. 근처에 오자마자 느껴지는 자본의 냄새. 어마어마하게 큰 주차장과 와이너리 현판이 이 가문/브랜드의 위상을 알려주는 듯 했다.




오늘 이곳에 오기 위해 우리는 두 달 전 예약이 열리자마자 사이트에 들어갔다. 투어는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는 프로그램과 영어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4명의 인원이 한번에 영어 투어를 신청하려고 하니 예상보다 경쟁이 치열했던 것 같다. 원래 하고 싶었던 날엔 이미 예약이 마감되어 오늘 예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미리 예매를 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대기 시간을 포함하여 전체 투어 시간이 3시간 정도로 꽤 오래 걸리기 때문에, 부지나 와인샵도 함께 구경할 수 있게 여유롭게 반나절 정도는 잡고 가는 것이 좋다. 프로그램에 따라 더 짧거나 긴 것도 있는데, 사이트 상 환불 불가로 적혀 있어 일정을 잘 고려하거나 자세한 취소/환불 규정은 사이트에서 참조하는 걸 추천한다.



https://www.antinori.it/en/experiences/




널찍한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포도 나무가 줄지어 있는 언덕길을 오르면 안티노리 와이너리 본 건물이 나온다. 유리 창문과 나선형의 계단이 눈에 띄는 건물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와인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차분함과 웅장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파란 하늘과 동동 떠있는 하얀 구름들, 연두빛의 포도나무 잎까지 완벽한 풍경이었다.



예약한 내용을 리셉션에 말한 뒤 투어가 시작되기 전까지 잠깐의 시간이 있어 안내 받은 공간에서 대기했다. 와인병이 한가득 눕혀있거나 세워져있는 벽장식이 있었는데, 나무 박스를 쌓아 만든 것 같은 의자와 함께 꽤나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비치되어 있는 물도 마시고, 더위를 잠시 식히고 있자니 우리의 투어를 책임져줄 가이드가 시작을 알렸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 스페인 등에서 온 분들과 함께 이동했다.


가장 먼저 안티노리 가문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와인을 숙성하는 장소, 제조하는 장소, 병입하는 장소를 차례로 소개해줬다. 숙성이 진행되는 거대한 창고는 별도의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온도가 조절되는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 몇 층 높이의 숙성용 스테인리스 통과 오크 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오크 통의 앞쪽 하단에는 조그만 뚜껑 같은 문이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예전에는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청소했다고 한다. 거의 어린이 정도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함께 투어를 들었던 아주머니가 자기처럼 뚱뚱하지 않은 우리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지 않냐며 농담을 했다.


언덕이자 건물의 가장 옥상의 밭에도 포도나무들이 심겨 있었는데, 처음엔 관상용으로 심었었지만 어느 날 햇빛을 잘 받은 옥상의 포도 품질이 꽤 좋다는 것을 깨닫고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니나다를까 언덕 위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눈을 제대로 뜨고 있기가 힘들 정도로 해가 강렬했다. 가을에 오면 이 포도나무에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터라 그 모습 또한 직접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대망의 테이스팅 시간! 별도의 조용한 방에 우리를 위한 테이스팅 세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총 4종류의 와인을 마셔볼 수 있었는데, 화이트 와인 하나와 레드 와인 세 종류였다. 이 중 가장 취향인 것은 끼안티 클라시코인 Marchese Antinori 였다. 가이드 언니에게 혹시 마케팅 직종 이력서 전달해줄 수 있는지 너스레를 떨며 즐겁게 시음을 마무리했다.



시음 장소 바로 앞은 더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시음해볼 수 있는 공간과 와인을 구매할 수 있는 기념품샵이었다. 비싸지만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슈퍼 투스칸 와인을 살 생각이 있었던 나는, 그나마 재고가 있는 21년산 티냐넬로를 한 병 면세로 구입했다. 황금 빈티지라고 하는 16년 제품은 여기에는 없었다.



[Montisi에서의 저녁 식사]


잠깐 쉬며 부지를 조금 더 구경하다가 다시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저녁 식사를 어디에서 할지 찾다가 구글 지도에서 숙소 근처의 작은 마을에 평점이 높은 식당이 있어 들르기로 했다. 몬탈치노 지역의 Montisi라는 마을. 주차를 하고 식당으로 들어가니 아직 오픈 시간이 조금 남아 밖이나 1층의 슈퍼 겸 바에서 대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와 Y, H는 동네를 휘 산책하고 오기로 하고, K는 가게에 남아 쉬기로 했다. 오렌지자스민 꽃의 향기가 온 동네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그 향기에 이끌려 작은 골목 골목으로 들어가니 벽을 따라 작은 주차장이 나오고, 그 뒤로 숲과 구릉이 넓게 펼쳐졌다. 해가 지려는듯 지평선에 가까울수록 조금씩 주황 빛인 하늘. 오늘의 마지막 햇빛을 받으며 고양이 한 마리가 눈을 감고 식빵을 굽고 있다. 너무나 평화로운 무드. 시간은 어찌나 얄궂은지 ‘오늘’의 이 햇빛은 다시는 느낄 수 없고 여행의 끝은 점점 가까워진다.



오픈 시간이 되고, 셰프도 도착해서 점원이 메뉴를 알려주러 왔다. 특이하게도 이 가게엔 메뉴판이 없고, 셰프가 오늘의 요리를 쭉 불러주는데, 다행이도 영어를 잘 하는 분이어서 메뉴를 정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파스타는 소스와 파스타면을 조합할 수 있었는데, 뇨끼는 꼭 먹어보고 싶어서 소스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토마토 소스를 추천해주었고, 그 지역에서 많이 먹는다고 하는 파스타면은 화이트 라구 소스를 추천해줘서 선택했다. 소고기와 구운 야채, 닭고기 구이를 주문하고 여기에 어울리는 와인을 한 병 추천 받았는데 처음 추천해주었던 와인은 우리 기준에 산도가 너무 높았다. 그렇게 말씀을 드리니 다른 와인을 추천해주었는데, 이건 꽤 마음에 들었다.



이 날 먹었던 파스타는 처음 입에 넣었을 때 면이 너무 보드라워서, 그 질감이 약간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 생면 파스타를 안 먹어본 건 아니었는데, 지금껏 먹어본 파스타 중 가장 부드럽고도 잘 익은 파스타라고 생각했다. 짭짤한 소스와의 궁합도 정말 좋았다. 지금까지 먹어본 파스타 중 최고랄까.



한참 식사를 마무리하던 때 식당 한쪽 벽면을 거의 가득 채운 그림 속 익살스러운 얼굴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셰프의 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그림과 정말 똑같이 생기셔서 너무 재밌었다. 디저트로 원래는 두 개를 시키려고 했는데, 역시나 메뉴판 없이 말로만 설명을 듣다 미스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디저트가 종류별로 하나씩 다 나왔다. 커스터드 같은 크림에 초콜렛 또는 딸기를 올린 것과 베이커리 종류. 배는 불렀지만 맛있어서 거의 다 먹었다. 에스프레소로 마무리를 하고 다시 숙소로.




숙소 앞 작은 정원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오늘도 별로 가득하다. 이제 이탈리아에서 머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여행인가. 남은 일정을 알차게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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