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 여행기, 7일차

결정의 연속, 더몰 아울렛, 피렌체 스테이크

by Starrwy

[고요한 아침에 내린 결단]


간밤은 조금 추워서 핫팩을 끌어안고 잤다. 예전 수도원이라 산 속 깊은 곳에 있어서 더 추웠던 것 같기도 하다. 어제 남겨뒀던 조식을 챙겨먹고, K가 아침 산책 겸 리셉션에서 사온 커피 캡슐로 커피를 내려서 숙소 앞 정원의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 평화로움. 커피 한 잔으로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다시 이동을 위해 한바탕 짐을 싸다가, 갑자기 이 모든 과정이 부담이라는 걸 체감했다. 앞으로도 거의 매일같이 이동하며 숙소를 바꿔야 하는데,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걸 깨달은 거다. K는 피부가 화끈거려 선크림도 바르지 못하는 상태에, 나 또한 어제 장시간 운전으로 조금 지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긴급 회의(?)를 거쳐 마지막 사투르니아 일정을 과감히 제외하고 피렌체에서 하루 더 보내는 방향으로 계획을 바꿨다.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강행했다간 신변에 큰 일이 날 것 같다는 직감도 들었다. 다행히 사투르니아 근처의 숙소는 무료 예약 취소가 가능했고 피렌체 숙소는 하루 연장이 가능했다.



피렌체를 향하며 뒷자리에 앉은 팀이 점심 식사할 곳을 찾아주었다. 몬테바르키(Montevarchi)라는 지역의 Le Mura del Cassero라는 토스카나 음식을 파는 식당이었는데, 소박한 광장의 한 코너에 있어 마침 좋은 햇빛을 즐기기 위해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서버가 메뉴판과 커트러리, 접시 등을 빠르게 세팅해주었다.


구글 지도로 확인했던 메뉴와는 사뭇 다른 것으로 보아 메뉴는 주기적으로 업데이트가 되는 듯 했다. 다 맛있어보였다. 오늘 식사의 시작은 부라타 치즈와 프로슈토를 올린 샐러드, 그리고 흰살 생선을 시즈닝하여 갈아 올린 빵. 한국에서 부라타 치즈를 즐겨찾는 편은 아니었는데 프로슈토와 함께 먹으니 너무 맛있어서 계속 손이 갔다. 소금과 후추처럼 당연히 테이블에 준비되어 있는 올리브유를 듬뿍 뿌리면 한층 더 맛있어진다. 흰살 생선을 올린 빵은 이전엔 먹어본 적이 없는 메뉴여서 궁금해서 시켜봤는데, 대성공이었다. 곱게 갈린 생선의 간이 딱 맞아서 아주 좋았다. 후추를 추가하면 풍미가 더 좋아진다.



사프란이 들어간 리조또와 토마토 치즈 파스타도 기분 좋게 맛있었고, 미트로프는 기대에 약간 못미쳤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역시 에스프레소로 마무리!




식사를 하며 피렌체로 바로 갈지 아님 가는 길에 있는 아울렛에 들를지 고민하다가 내일 하루 전체를 피렌체에서 보내기 위해 오늘은 아울렛에 가기로 했다. 이 근처의 가장 큰 아울렛은 더 몰(The Mall). 이 외에 프라다 스페이스라는 곳도 있긴 하지만 여러 브랜드를 한번에 보고 싶어 더 몰로 정했다.


평일에 가서인지 예상보다 아주 붐비지는 않았지만 구찌나 버버리 같은 브랜드 매장은 결제 대기줄이 꽤 긴 편이었다. 난 이번 여행에서 프라다의 카드 슬롯은 꼭 사고 싶었기 때문에 장바구니(?)에 추가하고, 구경하다 눈에 들어온 검정 스틸레토 구두를 신어보았다. 내 발은 220-225mm 사이로 좀 작은 편이어서, 팔리지 않아 할인의 할인이 적용된 신발을 아울렛에서 가끔 득템하는 경우가 있다. 한눈에 반해 바로 신어본 프라다의 구두는 모양과 가죽의 질감이 너무 예쁘고, 할인도 굉장히 많이 되었지만 아쉽게도 사이즈가 좀 컸다. 딱 하나 남은 제품이라 다른 사이즈는 없었다. 이걸 그냥 사서 다른 방법으로 보강을 할지 너무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덜컥 샀다가 신지 않고 고이 모셔뒀던 신발이 있어, 이번엔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맞지 않는 신발이었다.




처음엔 1시간 안에 쇼핑을 끝내고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계산까지 마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우리끼리 정한 마감 시간에 연장의 연장을 더한 후 각자 모든 볼일을 마치고 모였다. 친구들은 청자켓과 드라이빙 슈즈, 가족들에게 줄 선물 등을 득템/구입했다. 면세품 범위를 넘는 제품은 입국할 때 세관에 등록은 해야겠지만 우선 할인률이 높아 쇼핑하는 재미가 있었다.



[드디어 피렌체 입성!]


우리 숙소는 피렌체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 1층 주차장에 어렵사리 주차를 해두고 2층의 숙소에 들어갔다. 복층구조의 방 2개에 소파베드 하나, 화장실 2개인 집 전체를 빌렸는데, 세탁기도 있어 약간의 빨래도 할 수 있었다. 여행 중반을 넘은지라 한번 세탁을 하고 싶었는데 잘 사용했다. 모두 꽤 지쳐서 짐을 대충 풀어두고 잠시 쉬었다. 그런데 K의 컨디션이 좀 좋지 않다는 소식. 저녁에는 피렌체 시내에 있는 스테이크 레스토랑에 예약을 해두었는데, K는 숙소에서 쉬고 나머지 셋이 가기로 했다.



시내까지는 도보로 약 30분 남짓. 예약 시간까지는 약간 타이트하지만 동네에 익숙해질 겸 조금 빠르게 걸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내리막길이라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보볼리 정원, 피티 궁전, 베키오 다리를 지나 상점가에 가까워질수록 인파가 점점 많아짐은 물론 도시의 활기도 같이 느껴졌다. 1827년부터 영업을 한 Antico Ristorante Paoli는 피렌체식 티본 스테이크 맛집으로, 알쓸신잡 프로그램에도 나왔다고 한다. 역사를 증명하는 듯한 천장의 벽화가 멋지다. 대기 줄이 아주 길었는데, 예약자명을 말하니 바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다만 레스토랑 내 테이블을 가능한 꽉 채워넣은 듯 옆 테이블과의 간격이 굉장히 좁았다.



식사의 시작은 진토닉.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아서 토마토 스프와 트러플 크림 파스타, 티본 스테이크를 와인과 함께 주문했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토마토 스프는 굉장히 신선해서 색다르게 먹을 만 했고, 파스타는 예상되는 맛이었다. 드디어 훌륭한 비주얼의 피렌체식 스테이크가 불판 위에서 지글대며 나왔다. 뻔한 스테이크지만 정말 너무 맛있었다. 생각보다 더 부드럽고 잡냄새 없이 고소한 고기맛. 이번 여행에서 돌아온 후 주변에서 어떤 음식이 제일 맛있었는지 물어보면 Top3 중 가장 먼저 이 스테이크를 이야기할 정도였다.



식사를 마친 후 마무리로 티라미수를 추가 주문했다. 예전 피렌체에 왔을 때 정말 인생 티라미수를 맛보았는데, 아쉽게도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어떤 레스토랑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기억을 마음 한 켠에 가진 채 한번 시켜보았는데, 맛은 있었지만 추억 속의 그 맛은 아니었다. 내 인생 티라미수는 어쩌면 실제보다 기억 속에서 더 맛있어졌을 수도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먹어보고 싶다. 피렌체의 모든 유명 스테이크집을 다 들러본다면 찾을 수 있으려나.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거리를 구경하며 숙소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광장엔 회전목마도 있고, 그 유명한 산조반니 세례당과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조토의 종탑 앞엔 밤에도 인파가 굉장했다. 엄청난 규모의 세밀한 조각들은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제대로 담기지가 않는다. 잘은 모르겠지만 조각상 하나 하나에 다 의미가 있고, 유명한 성인 또는 성직자의 모습을 본뜬 것이겠지. 그리고 대성당 옆에는 두오모를 설계한 브루넬레스키의 조각상이 마치 두오모를 올려다보는 듯한 모습으로 있었다. Y는 여행 준비를 하며 이 건축가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었는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줄 것을 요청했다.


광각이 아니고서는 담아내기 어려운 규모



젤라또 하나씩을 들고 아르노 강가로 향했다. 오랜만에 맘놓고 마셨더니 취기가 조금 올랐다. 베키오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 바로 옆의 ‘산타 트리니타 다리’로 갔는데, 다리 위에서 바라본 강가의 풍경은 꽤 낭만적이다. 오늘도 푹 잠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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