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sweet home
마지막 식료품 쇼핑을 위해 K, Y와 함께 숙소를 나왔다가 베이커리 겸 카페가 있어 아침 식사를 하러 들렀다. 동네에 있는 작은 가게였는데, 의외로 아침부터 사람이 아주 많았다. 각자 빵 하나씩과 커피를 주문해 카페 바에 서서 먹는데 정말 말도 안 되게 맛있었다. 나는 빵 사이에 훈제 연어가 끼워진 작은 샌드위치를 골랐는데, 살짝 단맛이 느껴지는 빵과 하나도 비리지 않고 짭잘한 연어의 밸런스가 적당했다.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까르푸 익스프레스. 한국으로 치자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또는 이마트 에브리데이 같은 곳이다. 과자와 리조또 키트, 에스프레소 초콜렛, 할머니께서 부탁하신 당뇨용 커피 설탕을 구입했다. 살구잼이나 연어/참치맛 스프레드는 한국에서는 일반 편의점에선 쉬이 볼 수는 없는데 맛있게 잘 먹을 수 있는 제품이라 장바구니에 넣었다. 와인 안주로 크래커에 발라 먹기 딱 좋을듯 하다.
다시 숙소로 올라오는 길, 동네 식료품점도 문을 열어 잠깐 구경하러 들어갔다. 그리고 와인 리조트에서부터 별렀던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인원에 맞춰 구입했다. 우리의 요리사 K에 의하면 포카치아 같은 이탈리아식 빵에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바르고 치즈, 잠봉 등을 끼우면 아주 꿀맛이라고 한다. 물론 그냥 빵이나 크래커에 먹어도 좋다. 방금 들른 까르푸 익스프레스보다 조금 더 선별된 제품들로 가득한 가게를 한참 구경하다가 막판 짐을 싸기 위해 숙소로 서둘러 올라갔다.
숙소를 청소하러 온 사람에게 등떠밀려 체크아웃을 한 후 이제 로마로 향하는 길. 피렌체에서 공항까지는 차로 3시간 이상 걸려서, 중간 어딘가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고속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에 있는 레스토랑. 진짜 마지막 파스타 만찬이다!
해산물 샐러드와 레몬 라비올리, 까르보나라, 봉골레를 주문했다. 레몬의 상큼한 맛이 피스타치오와 잘 어우러지는 라비올리는 속에 치즈가 채워져서 고소했다. 레몬으로 파스타의 맛을 내는 건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자꾸 손이 갔다. 조금 얇은 파스타 면으로 한국에서 한번 따라해보고 싶은 맛.
까르보나라와 봉골레도 무난하게 아주 맛있었다. 구글 평점이 높아서 찾아왔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었는데 모든 음식이 다 맛있어서 기뻤다. 우리의 마지막 만찬.
이제 차를 반납하기 전, 처음 차를 받았을 때처럼 연료를 가득 채워야 한다. 주유를 하기 위해 주유구 앞에 자리를 잡자 직원이 나왔다. 며칠 전에 했던 것처럼 셀프로 해도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일단 키오스크에서 이것저것 선택할 때나 결제할 때 신경쓰지 않아도 돼 편했다. 토스카나의 산길을 달리다보면 길 위까지 뻗친 얇은 나뭇가지나 날아다니는 벌레가 차의 전면 유리에 부딪혀 여기저기 얼룩이 많은데, 주유소 직원이 당연한 서비스라는 듯 물에 적신 스폰지로 전면 유리를 슥슥 무심하게 닦아주었다. 차에 워셔액이 없어서 깨끗이 못 하고 있던 터라 속이 후련했다.
반납은 차를 대여한 공항 주타 타워에서 하면 됐다. 짐을 전부 내리고 쓰레기를 치운 다음, 트렁크까지 전부 열어두면 직원이 나와 파손 상태라든지 차의 이곳저곳을 확인한다. 아무 문제가 없어 바로 반납 처리가 되었다.
이제 짐을 부치고 체크인을 하기 위해 공항 내부로 들어왔다. 택스리펀 서류를 처리해야 하는데, 관련 구역 여기저기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우린 미리 면세 관련 서류를 전부 모아뒀기 때문에 줄이 없는 키오스크로 각자 빠르게 등록했다. 그런데 친구들은 영수증에 별다른 코멘트가 없었는데, 나는 하단에 검사를 하라는 안내가 나왔다. 어디로 가라는 설명도 하나 없이. 더 문제는 물어볼 수 있는 인력이 뒤쪽엔 아무도 없어서 사람을 만나려면 긴 줄을 전부 기다려야할 수 밖에 없는 것. 와중에 어떤 사람들이 새치기를 해서 앞쪽에서는 큰 소리로 싸움이 나기도 했다.
일단 눈치로 줄을 서긴 했는데, 앞에 선 사람에게 물어보니 다행히 내가 서 있는 곳이 맞았다. 한참을 기다려 담당자에게 영수증을 보여줬고, 내가 산 제품을 캐리어에서 꺼내 확인 받고 나서야 조사가 끝났다는 확인서를 받았다. 랜덤으로 확인을 하는 모양이었다. 공항에 조금 빨리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니 시간이 오히려 부족해졌다. 세관 전에 짐을 부치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었다. 아마 면세로 저렴하게 산 제품을 이탈리아에서 유통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나보다.
다시 체크인 카운터에서 캐리어 무게 초과로 인한 짐 조정을 거친 후 탑승장으로 들어왔다.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각자 흩어졌다가 게이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BDM 와인 한 병을 구매한 다음 따뜻한 차를 한 잔 사서 출발 게이트 앞에 앉았다. 탑승장으로 들어왔을 때 체력은 이미 거의 바닥에 다다른 상태라, 열 몇 시간의 비행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몸상태가 너무 안 좋아 혹시 비행기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쩌지, 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 어디가 아픈 건지도 모르게 전반적으로 안 좋은 상태라 상비약으로 갖고 있던 소화제와 진통제를 먹으며 속을 진정시켰다.
어찌저찌 비행기는 이륙했고, 첫번째 기내식으로 비빔밥이 나왔다. 먹네마네하다가 아주 조금 맛을 보았는데아니 이게 무슨 드라마 같은 일인지, 갑자기 컨디션이 확 좋아진다. 한식을 먹은지 너무 오래되어 겪은 향수병이었던 걸까. 이런 걸 겪은 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잠깐씩 눈을 감거나 사진 정리도 하고, 휴대폰 갤러리의 조카 사진도 보며 비행 시간을 버텼다. 각자 세관 신고까지 거친 후 드디어 한국 도착! K의 연인(지금은 남편)이 마중나와 우리 4명의 여행을 기념하는 사진을 마지막으로 찍어주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가는 길에 컨디션이 저조했던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홈 스윗 홈이다.
장장 6개월을 준비하여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은 8박 10일로 짧았지만 이 여행기를 마무리하는 12월까지도 음미할 수 있었던 즐거움이었다. 이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만들어준 계기이기도 하다. 친구와 여럿이 가는 여행의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낀 것도 좋았다. 각자가 가진 장점을 활용하여 홀로 여행을 가는 것보다 배는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몰랐을 경험들, 또는 떠올리지 못했을 생각들이 레이어를 더해 여행의 농도가 짙어졌다.
여행을 다녀온지 6개월이 넘은 이 시점에도 내 핸드폰의 배경화면은 피엔자에서 찍은 풍경 사진이다. 여행을 하며 지났던 모든 곳이 다 예뻐서, 장면 하나하나를 전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었다. 운전을 하며 지나갔던 야트막한 언덕들과 멀리 보이던 숲, 들판에 섬처럼 떠있던 빌라들, 곳곳의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정원에 만발한 꽃.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이런 풍경들을 가능하다면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 사진으로 가급적 담아보려 했지만, 역시 실제를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오감으로 느끼는 편이 더 여운이 깊다.
와이너리 투어라고 거창하게 제목을 달았었지만 이탈리아 와인을 조금 더 알게 된 투어 정도로 정정하고 싶다. 이전보다 산미가 있는 와인에 대한 거부감이 좀 덜 해진 것은 확실하고, 과일향이 풍부한 와인은 여전히 좋아한다. 한국에서 이번 여행 중에 접한 이탈리아 와인이 보이면 괜히 더 반갑다. 여기저기 와인 판매점을 가보니 현지에서 맛본 대부분의 와인이 수입되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여차하면 언제든 이 여행의 추억을 다시 꺼낼 수 있다는 뜻이니.
여행이 어땠는지를 물어오는 지인들에게 또 하나의 감동 포인트라고 전했던 건 숙소였다. 숙소의 창문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매일 아침 영상으로 담았던 만큼 모든 숙소의 위치와 풍광이 마음에 들었다. 에어비앤비, 와인 리조트,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 모두 다 만족스러웠다. 에어비앤비에서 숙소 주인을 대면으로 만나지 않았어도 체크인/아웃 과정은 순조로웠고, 특색있고 예쁘게 꾸며진 리조트 또한 다시 방문하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여행을 떠나며 품었던 생각. 토스카나는 또 가고 싶은 곳인지? 내 대답은 Yes. 아직 보지 못한 게 너무 많다. 방문하지 못했던 도시도, 숙소도, 와이너리도 많고, 계절의 변화도 느껴보고 싶다. 지인이 추천했던 산 지미냐노도 비가 오는 바람에 못 갔고, 힘들어서 포기했던 마지막 일정 사투르니아 온천도 가고 싶다.
올 여름 즈음 토스카나에서 인구가 너무 노령화되고 타지로 유출되는 수가 많자 이주비를 지원하며 거주를 장려하는 사업을 펼쳤다. 나도 거기에 동참해볼 수 있을까 싶어 살펴보았더니 여러 조건이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건 EU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아예 마음을 접었는데 가끔 현생이 힘들면 토스카나로 이주했다면 그곳에서 살았을 삶을 머릿 속에 단편적으로 그려보게 된다. 그러나 꿈은 꿈으로 남겨두는 편이 더 소중할 수도 있을 터다. 나의 24년을 행복하게 꾸며준 꿈 같았던 토스카나 여행. 아디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