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웠던 날은 자취를 감췄다. 날씨가 좋다. 쾌청한 날 덕분일까? 결혼식이 잦다. 최근 몇 주. 주말이면 멋지게 옷을 입고 참석했다. 축하하고 나와 밥을 먹으면 고되다. 축하하는 일에도 에너지가 필요한 모양이다.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가지고 집으로 가기엔 아쉽다. 평소와 다르게 차려입은 탓이다. 나와서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기다, 목적지를 정했다. 인천 차이나 타운. 주말에 사람이 많은 건 예상했지만, 너무 많았다. 만차라며 돌아가라는 푯말 3개를 본 뒤에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
걸었다. 사람도 차도 많은 이유를 알았다. '제물포 르네상스 축제' 중이다. 아담하게 마련된 무대에서는 아쟁이 울렸다. 멋진 선율에 사람들을 모았다. 도망치듯 걸어 나왔다. 결혼식만큼이나 복작거리는 사람들을 지나쳐 갔다. 친구들 등만 보고 따라 걷다, 고개를 들었다. 멈췄다. 독립서점 "문학 소매점."
날 두고 가던 이들이 돌아보면 피식 웃는다. 참새가 방앗간을 찾았다며, 얼른 들어가 보자 한다. 문 앞에는 부탁 말씀이 적혀있다. 내부 사진 촬영이 어렵다는 말. 동생이 독립서점을 2년 동안 운영하며 분투한 경험이 떠올랐다.
사진만으로 서점을 누리고 떠나는 분들. 사람이 오가는 만큼, 뒤적거린 책은 다친다. 헌 책이 쌓여가는 아픔이 생각났다. 무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책장을 빼곡하게 채운 책들이 맞이한다. 문을 닫으니 소란스러운 소리가 끊어졌다. 책으로 만든 진공에 들어갔다.
모든 가게가 그렇겠지만, 독립서점만큼 서점 지기를 잘 들어내는 공간은 없다. 단정하고 정리된 서점을 거닐었다. 서점지기가 좋아하는 책들로 그들이 선호하는 순서에 따라 배열되니 서점지기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다. 서점지기가 만든 책 숲을 산책했다. 진공이 열렸다 닫힌다. 후다닥 들어온다. 눈에는 레이저가 나와 빠르게 검색한다. "앗"하며 소리를 지르더니, 몇 권을 두둑하게 챙긴다.
한강 작가님의 책인가 보다. "여기에는 있을 줄 알았다"며 전리품을 챙긴다. 노벨상 수상 이후 찾기 어려운 책을 찾은 기쁨이 전해졌다. 계산하며 구매자께서 몇 마디 하셨다. "잘 보이는 곳에 두면 후다닥 팔릴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거든요."
서점 지기는 빙긋 웃으시며 답하셨다. "네, 알아요. 바로 팔리겠죠. 그러고 싶지 않아요. 다른 책들이 주목받길 바라거든요." 그 말씀에 난 아무도 보지 않은 허공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서점지기의 정돈된 철학이 설핏 비친다.
걷다, 멈춰 책 한 권을 선택했다. 문지혁 작가님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를 한 권 집었다. 진도가 안 나가는 소설의 활로를 알려줄 것 같았다. 문학 소매점은 얼마나 되었을까? 2년이라는 계약 기간을 겨우 채운 커피문고가 기억난다. 문학 소매점은 고요한 진공을 오래도록 지켜내길 바라는 마음이 자라난다. 계산을 하고 있으니, 빨리 가자는 친구들의 재촉이 보인다.
떠들썩 한 차이나 타운을 벗어나 피난처가 되어준 문학소매점을 뒤로하고 문을 열었다. 훅하고 경쾌한 소리들이 끼쳐온다. 작용과 반작용이라고 할까? 시끄러운 거리에 있는 조용한 서점이 묘한 균형을 이룬다. 차이나 타운을 또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다음에는 서점 지기와 몇 마디 나누고 싶다. 서점이 궁금하고, 서점지기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