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해서 보는 드라마가 있다. <나의 아저씨>. 최근에 글을 쓰고 다시 돌려봤다. 반복해서 영화, 드라마, 책을 보면 신기한 순간을 맞이한다. 보지 못했던 부분이 보이고, 때로는 흘러가던 문장이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한다. 이번에 보며 내게 새롭게 다가온 문장이 있다. 우선 장면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동훈(이선균 분) 친한 친구가 있다. 속명으로는 윤상원 (박해준 분). 법명으로는 겸덕이다. 마을에서 수재가 나타났다며, 모든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상원. 그는 어느 날 세상의 이름을 버리고 법을 따라 절에 들어갔다. 동훈은 버거운 마음을 챙기고파, 친구이자 스님인 겸덕을 찾아간다.
둘은 허공을 지긋히 바라본다. 동훈은 답답하던 마음을 친구에게 털어놓는다.
"그냥 나 하나 희생하면 인생 그런대로 흘러가겠다 싶었는데"
듣던 스님은 친구가 되어 받아친다.
"희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가 6.25 용사냐, 인마? 희생하게. 열심히 산 거 같은데, 이뤄 놓은 건 없고 행복하지도 않고, 희생했다 치고 싶겠지, 그렇게 포장하고 싶겠지. 지석이한테(동훈 아들) 말해 봐라. 널 위해서 희생했다고 욕 나오지, 기분 더럽지. 누가 희생을 원해? 어떤 자식이 어떤 부모가 아니, 누가 누구한테? 거지 같은 인생들의 자기 합리화 쩐다, 인마"
동훈은 스님보다 더 스님처럼 차분하게 답한다. "다들 그렇게 살아"
아직도 스님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친구로 동훈의 말을 받아친다.
"아유, 그럼 지석이도 그렇게 살라 그래. 그 소리엔 눈에 불나지? 지석이 한텐 절대 강요하지 않을 인생 너한테는 왜 강요해? 너부터 행복해라, 제발. 희생이란 단어는 집어치우고
눈을 번쩍이는 동훈을 향해 친구에서 스님으로 돌아간 겸덕은 답한다.
"뻔뻔하게 너만 생각해, 그래도 돼"
가끔 아니 자주 난 가까운 이들, 소중한 이들을 위해 희생한다 생각했다. 아니 지금 보니 착각하며 산 모양이다. 동훈처럼 주어진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꿈을 버려둔 채 살면 그런대로 잘 흘러가리라 생각했다. 계획대로 되는 게 어디 있을까? 어느 복서가 한 말처럼 한 대 맞기 전까지는 그럴듯한 계획을 가진 것처럼 말이다. 계획이 어긋나니 탓할 곳을 찾는다.
희생하며 스스로를 연민하던 내게 우레와 같은 야단이 쏟아진 기분이다. 내가 6.25 용사도 아니고, 무엇을 그렇게 희생을 했는지 고민케 된다. 설령 희생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소중한 이들이 그걸 바라지는 않을 테다. 가끔 방향을 잃고, 누구를 위해 산다는 말이 목까지 차오를 때가 있다.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을 희생이라는 그렇듯한 포장지에 넣는다.
다들 그렇게 산다며 위로하지만, 한숨 몰아쉬는 일도 쉽지 않게 버거워지기 마련이다. 그때는 조금은 뻔뻔해도 되지 않을까? 나를 위해, 누군가를 위한다는 말을 접어두는 일 말이다. 내가 하고픈 일, 그 일이 설령 소중한 이들을 위한 일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책임만으로 살지 말고, 나를 위해 사는 순간. 조금이라도 숨을 터 놓고 살기 위해 하고픈 일들. 너무 오랜 시간 잊고 있어 있는 지도 없는지도 모르기 전에 나를 위해, 나만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 소중한 이들은 내 행복을 바라지, 희생을 바라지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