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살고 싶다. 지금을 느끼고 싶다.
연극과 뮤지컬을 보는 이유.
얼마 전 뮤지컬을 봤다. 제목은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소설이 원작이다. 책을 재미있게 본 터라, 기대하며 에매를 했다. 기억을 되살리려 표시해 둔 문장 위주로 쓱 읽고는 뮤지컬을 기다렸다. 주말을 기다리는 또 다른 기대에 마음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놀라며, 뜨끈한 대추음료를 손에 쥐고 극장으로 향했다. 기대가 컸던 덕분에 이르게 도착했다. 직원께서 안내 말씀을 하신다. "30분부터 입장 가능합니다." 가장 앞서 줄을 섰다. 표 일부를 떼어드리고 자리를 자리를 잡았다. 기다린다. 생각하기 참 좋다. 오늘은 뮤지컬이다.
OTT 서비스로 시대와 나라를 넘나들며 좋은 영상을 볼 수 있다. 거기다, 유튜브에서는 수준 높은 영상들은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지금. 날씨를 거스르며, 줄을 서서 극장에 가서 보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건 아닐까? 내가 단순히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여기에 온 것일까?
꼬리에 꼬리는 무는 질문을 하고 있으니, 배우가 나오셨다. 주의 사항을 일러주시고는 오늘의 뮤지컬을 즐겨 달라는 말과 함께 어두워진다. 눅눅한 마음과 꿉꿉한 빨래를 안고 빨래방을 오는 이들이 있다. 아들과 멀어지는 장영감님. 전세 가격이 올라 막막한 부부. 공모전에 번번이 떨어지는 작가. 아무도 관심 없는 버스킹 가수.
코튼향 나는 따스한 노래로 등장인물이 이어진다. 결국 사람이 아픔을 치료할 수 있는 모양이다. 진솔한 마음이 음악으로 꾹 눌러 전달된다. 변한 ESTJ인 난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극은 마지막으로 치닫고, 관객들의 박수로 마무리되었다.
시간을 내어 사람들이 라이브로 연기하는 보는 이유는 여럿일 테다. 하나는 바로 현재와 일시성이다. 배우는 사람이다. 기계처럼 입력값을 같은 값으로 출력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다. 거기다, 해성이 붙는다. 같은 대사에 같은 지문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연기를 한다.
그 다름. 그 다양성이 라이브 연기를 보는 이유다. 어떤 장영감님은 유쾌하지만 따스하고, 어떤 장영감님은 진중하지만 미소를 보이는 사람일 수 있다. 어떤 만년 작가는 우울하지만, 당찬 구석이 있을 수 있고, 어떤 만년 보조작가는 유쾌하지만, 미래에 불안이 가득한 캐릭터일 수 있다.
라이브의 묘미다. 같은 사람도 회차마다 다르고, 다른 사람은 말해 무얼 할까? 다른 극이 된다. 결국 연극과 뮤지컬은 현재를 살게 하는 극이다. 이번만 볼 수 있는 극이 눈앞에 펼쳐진다. 저장된 영상에서 느낄 수 없는 요소다. 물론 같은 영상이라도 시간에 따라 기분에 따라 다른 영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하는 극이 변화와 내 변화가 곱해지면, 얼마나 많은 감동이 내게 우연처럼 올 수 있을까?
지난 연극도 지난 뮤지컬도 떠오른다. 한 번 더 볼 수 있는 극에서 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또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까? 현재에만 집중하는 연극을 뮤지컬을 또 보러 가야겠다. 현재를 살고 싶다. 지금을 느끼고 싶다.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서평,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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