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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잡으려면 흔들림은 필연적이래."

『스파클』

by Starry Garden
중심을 잡으려면 흔들림은 필연적이래.


어리둥절.

가끔 내게 무거운 질문을 하는 이들이 있다. 박사과정 중일 때는 석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질문했다. 박사과정 끄트머리에서는 '박사과정을 할까요 말까요'와 '대학원을 계속 다녀야 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최근에는 질문이 바뀌었는데, '이직을 해야 할까요?' '지금 하는 일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잘하고 있는 걸까요?'로 변했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리둥절했다. “나한테 충고 같은 걸 바라는 건 아니지요?” 바라면 안 되는 건가, 현재는 희미하게 웃었다. “젊은 사람들은 착각을 해요. 노인들이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별거 없어요. 나는 그냥 쉽게 늙었어요.” (page 469, 『피프티 피플』정세랑 지음) 그들이 날 보며 착각한 거 아닌가 싶었다. 난 평범한 선원이다. 집채만 한 파도를 뚫어 낸 적도 없고, 배에는 식량이 한 톨도 남지 않은 채 버티는 극한의 항해를 한 적도 없다. 흔한 어려움을 겪었고, 누구가 겪을 수 있는 일을 거친 선원일 뿐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변변치 못했다. 없는 일을 만들고, 나도 지킬 수 없는 말을 하긴 싫었다.


흔들려 본 자.

연구를 하다 보면 반복되는 현상을 발견하곤 한다. 그땐,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이론으로 차근차근 찾아가기도 하고, 때론 실험을 통해 알아내기도 한다. 반복되며 받는 질문에 고민을 했다. 엉뚱한 곳에서 단서를 찾았다. 『스파클』에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유리와 영이 홀로 집에 남았다. 주의를 잃었다. 냄비에 물을 붓지도 않고 불을 댕겼다. 연기는 순식간에 불이 되었다. 매캐한 연기가 둘을 덮쳤다. 유리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절뚝거리시던 할머니는 동생 영을 끌어안고 나갔다. 살려달라는 말은 연기에 덮였다. 이대로 끝나나 싶었는데, 소방관이 나타났다. 부주의의 결과는 처참했다. 동생 영은 식물인간이 되었고, 유리는 한쪽 눈을 잃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유리는 새 눈을 얻는다. 죄책감을 얹고 살아가다 궁금했다. 기증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기증자를 찾아 나선다.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고, 평생 지고 살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나이가 먹는다고 해서 자라나지 않고, 어리다고 해서 어른이 아닌 건 아니다. 여운이 깊게 남는 책이었다.

책이 주는 감동은 여럿이지만, 가장 강렬할 때는 바로 문장이다. 단 한 문장만 좋아도 계속 읽게 되고 다시 읽게 된다. 나를 사로잡는 문장이 있었다.

"사람들은 흔들리는 것을 굉장히 무서워하지만 중심을 잡으려면 흔들림은 필연적이래." (page 161, 『스파클』최현진 지음) 내게 질문한 이들은 내가 흔들리지만 앞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질문 한건 아닐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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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끊임없이 흔들린다. 나도 나를 믿지 못하는 순간도 잦다. 그래도 했고, 그래도 하고 있다. 박사 때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걸었다. 한참 걸었을 때는 무서웠다. 다시 돌아길 길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험은 번번이 실패하고, 논문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하고 있었다. 고민은 하되, 했다. 직장에서 맡는 일도 다르지 않았다. 일을 하며 실수하고 놓치기도 한다. 상사의 따끔한 말을 하기도 한다.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고뇌하되 멈추지 않고 매일 주어진 일을 할 뿐이다. 옆에서도 생각하는 게 보이고 이럴까 저럴까 보였을까? 그럼에도 하고 있으니 내게 질문을 했던 모양이다. 중심을 잡고 있는 이유. 거기서 출발한 지금의 내가 궁금했을 테다. 막상 그들의 질문을 듣고만 있는다. 대부분 듣다 보면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종종 답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빙빙 둘러 나도 잘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그냥 한다는 말을 남길뿐이었다. 책이 다시 한번 말을 건넸다.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적란운 속으로 들어가 봐야 어떤 기상 현상이 기다리고 있었는지 보게 되는 것처럼 문제에 부딪혀 봐야 알 것 같았다." (page 46, 『스파클』최현진 지음) 맞다. 직접 부딪혀 만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아무리 말을 하고, 아무리 조언을 해줘도 소용이 없다. 그때는 그 문제를 흔들리며 해야만 한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온전히 내 몫을 치러야지만 다음 발을 내디딜 수 있다. 흔들림은 인정하고, 그저 그저 앞으로 가야만 한다.


흔들리고 있다면 앞으로 가고 있다.

언제가 되면 흔들리지 않을까? 고등학생 때는 대학생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대학생 때는 대학원생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졸업을 하고 나서 취업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아니다. 매 순간 짊어져야 하는 무게의 질문이 있고,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흔들릴 뿐이다. 자전거는 구르지 않으면 곧 쓰러진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흔들리지만 페달을 굴러야 한다. 그렇게 그렇게 흔들리며 간다. 찾았다. 내게 질문하는 이들에게 할 말.


"흔들리고 있어?, 앞으로 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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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장이 많아, 문장 자판기를 만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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