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도를 버려. 네 길을 가.
약도가 이상해요.
해석은 독자의 특권.
글은 작가에서부터 시작되지만, 해석은 독자의 몫이 된다. 하지만,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는 일을 어려워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린 오랜 시간 치른 시험 때문은 아닌가 한다. 오직, 유일무이한 답을 짧은 시간에 찾는 일에 길들여진 탓에 자신의 해석이 틀린 건 아닌지 두려워한다. 서평을 쓰면서도 고민했고, 독서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하곤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해석은 독자의 특권이다. 어떤 해석이든 있을 수 있다. 맞고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이 바로 해석의 출발이다. 쓰고 나니 거창하다. 짧고 가볍게 이야기하면, '난 나만의 해석을 낸다.' 정도겠다. 그러고 나니 조금은 자유롭게 생각을 그릴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번에는 최진영 작가님의 『팽이』중 <어디쯤>이다.
『팽이』<어디쯤>
줄거리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약도를 보고 걷는 남자가 등장한다. 길을 잃었다. 사람에게 물어봐도, 약도를 건네준 아버지와 통화를 해봐도 도통 길을 알 수 없다. 아버지는 그 길이 맞다고 하지만, 걸어도 원하는 장소를 나오지 않는다. 그는 삶에도 길을 잃고 있다. 직장도, 관계에도 길을 잃고 있다. 지금 길을 잃고 헤매는 것처럼. 아버지는 전화로 '어디냐' 묻지만 답하지 못한다. 약도를 보지만 알 수 없다. 어지러운 정신을 가다듬지만 여전히 어딘지 모를 곳에 도착한다. 결국 길을 찾게 될까?
단편 소설을 읽고 마지막에 쓴 문장이 있다. "다시 읽고 생각하고픈 소설" 과거의 내 모습을 보았고, 가끔 목적을 잃어버리고 걷는 내 모습이 비쳤다. 고등학교 때는 이과를 가냐 문과를 가냐 고민을 했다. 사람들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먼저 가본 이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대학교 학과를 정할 때도 고민이 많았다. 앞으로 어떤 학과가 유망할지, 취직은 잘 될지 고민했다. 아무도 미래를 살아보지 못했지만, 자신은 안다며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이 주는 조악한 약도를 본다. 약도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지도에 있던 건 없고 또 다른 길만 이어져있다.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알게 된 사실 조각이 하나 있다. 아무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그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들 다르다.
아무도 모르니, 어디든 답이다.
직장을 다니고 나서, 이젠 누가 봐도 어른이 된 지금도 길을 잃어버린 듯 헤맨다. 선택을 고민하고, 걷고 있던 길이 맞는지 어디쯤 와있는지 여전히 궁금해한다. 아는 지인에게 물었다. "선택할 때 어떻게 고민하세요?" 곰곰 생각하시더니 입을 뗐다. "선택을 고민한다는 건, 무엇이 맞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한 결과를 낼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라는 거지. 지금 주어진 정보, 내 판단력에서는 말이지. 그럼 고민은 조금 하고 아무거나 해. 물론 정밀하게 마음을 따지고 고면 아무거나는 아니지. 조금 더 끌리는 선택이 있긴 하거든. 다음이 중요해. 그리고 그 선택이 맞게 최선을 다해. 아니 맞는 답이 될 때까지 해. 어디쯤 와있는진 모르지. 얼마나 좋아. 어디로 갈지 모를 정도로 멀리 갈 수 있다는 가능태를 마주한 거니까."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무엇이든 답이 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누군가 틀렸다고 말은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진정으로 그 길을 걸어봤던 사람인지 따져보면 대부분 아니다. 상상, 또는 조각의 정보를 가지고 내게 말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두보의 시에는 '개관사정'이라는 말이 나온다. '관 뚜껑을 덮다'라는 말로, 진정한 인생의 평가는 죽음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만큼 아무도 모른다.
해본다. 그냥 가본다.
인간의 축복은 오지 않은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이다. 거대한 물리법칙인 작용과 반작용이 떠오른다.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을 받고, 아직 오지 않은 날들에 대한 불안을 얻게 된다. 오지 않은 날들에 대한 불안을 줄이기 위해 앞을 알고 싶어 한다. 8차선 도로가 내 앞에 놓이길 바라고, 내비게이션이 단 한 번의 오류 없이 목적지에 다다른 인생을 바란다. 없다. 그런 길을 단연코 없다. (내가 모든 인생을 다 알 수 없지만)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태도를 정하는 일이다. 해본다. 그냥 가본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 되길 노력을 한다. 김창옥 교수는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아도 나무다"라는 말을 했다. 길을 걷고 있는 일 자체에 의미를 둔다. 찬란한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난 자라나고 있는 나무다. 어떤 길이라도 나만이 가는 길이니 이 흔적이 곧 내가 된다. "약도가 이상해요"라고 하는 주인공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 "약도를 버려. 이젠 어디쯤인지 말하는 사람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마. 그냥 걸어. 네가 가고픈 곳으로. 어디에 도착할지 아무도 몰라. 네가 가는 길이 답이 되도록 만들어. 결국 도착하지 못할지라도 상관없어. 길 자체가 목적지일 때도 있어." 쓰고 나니, 내게 하고 싶은 말인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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