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재판관의 진심.
"지금부터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평생 판사를 만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를 둘러봐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건 드라마나 영화, 또는 뉴스다. 필터 하나를 거친 그들의 모습은 여지없이 왜곡되고 만다. 강한 힘을 가진 이, 돈을 가진 이들의 숨보다 빠르게 누워 상식에서 벗어난 판결을 한다. 당당하기까지 하다. 법과 상식은 다르다며, 법조문 뒤에 숨는다. 그리곤 질문에 답 따윈 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등장한다. 판사에게 처벌을 가한다. 참 교육으로 사이다를 선사한다.
반대도 있다. 정의에 불타는 판사가 등장한다. 좌충우돌한다. 상급자의 말은 듣지 않는다. 외압은 물론이다. 법을 이용해 요리조리 피해 가는 이들을 단박에 잡아낸다. 그들이 이용한 법으로 덫을 준비해 둔다. 정당한 처벌로 끝난다. 때로는 법을 어겨가며 나쁜 녀석들을 처리한다. 가슴이 뻥하고 뚫린다.
사실에 가까운 뉴스에서는 어떤가? 판사는 근엄하다. 엄숙한 재판장에서 가장 높은 단상에 있다. 그것도 모자라 커다란 의자에 앉는다. 일반인이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와 한자가 범벅인 문장을 읊는다. 잘못을 했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한참 한 뒤, 선고를 내린다. 그때야 어떤 처벌인지 알게된다. 내가 아는 판사의 전부다.
2025년. 전 국민이 바라본 재판관이 있다. "지금부터 2024헌나8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로 시작한다. 20분이 넘는 글을 읽어 내려간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 마지막에 도착했을 때, 그는 시간을 묻고 선고에 마침표를 찍는다. 큰 환호소리가 들리고 한쪽에서는 작게 탄성이 흐른다.
대한민국 가장 유명한 판사.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른 판결을 내린 그. 누구일까?
"지금부터 문형배 재판관 탐색을 시작하겠습니다."
<호의에 대하여> (2025년 8월 출간)은 인간 문형배 에세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해 1992년 판사로 부산, 경남에서 활동했다. 마지막에는 헌법 재판소소장 권한대행으로 2025년 4월 퇴임했다. 책을 펼쳐 목차만 봐도 그가 누구인지 설핏 보인다. 역시 글은 자신의 내면을 보이는 일이다.
1. 일상은 소중하다.
2. 일독을 권한다.
3. 사회에 바란다.
따스하지만, 단단한 어른 한 분이 서 계신듯한 목차다. 나이가 많다고 모두 어른은 아니다.
"자신이 지낸 세월이 곧 권위라고 착각해 큰소리를 내는 분"
"자신이 한 일이 세상에 전부라 착각하고 듣지 않는 분"
"나이로 줄을 세우고 서열이 곧 모든 것이라 착각하며 눈을 치켜뜨는 분"
'세월의 부피가 아니라 세월의 무게가 중요하다. 그러니 나이의 적고 많음에 얽매이지 말고 세월의 무게를 체화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경험하여'라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page 106)
진짜 어른인 그가 어떤 시간의 무게를 지고 있는지 보인다. 판사라는 직업에 대한 두려움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고백한다. 죄를 짓고 판결이라는 도구로 죄를 뉘우치게 하는 자신의 일과 죄를 짓지 말라며 사랑을 전파하는 이삭의 집 원장님의 일을 양팔저울에 놓고 무게를 측정해보기도 한다. 켜켜이 퇴적된 고민으로 그는 판결하며 세상을 보고 있었다.
책을 읽을 수록 느낀다. 난 완벽한 판사를 바라지 않는다. 인간일 뿐인 그들에게 완벽을 바란다는 건 과한 요구다. 신이 아닌 그들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다만, 인간임을 잊지 않고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인간. 아름다움을 지닌 인간 판사를 원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두 번째에선 책을 추천한다.
그는 경험의 한계를 느낀다. 유한한 시간 속,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범위에는 제한이 명확하다. 재판에서는 인생의 끝에 서있는 사람을 보는 일이다. 판사 말 한마디에 인생은 요동친다. 법만 가지고 판결하기에는 인간 세상이 너무나 복잡하다. 그는 책을 통해 경험을 추출해 낸다. 다독하며 세상을 탐험한다.
판사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제한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고,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page 305)
굶어본 사람만이 배고픔의 무서움을 안다. 가난해 본 자만이 가난한 자들의 절박함을 안다. 빵을 훔친 장발장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맞을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 맞을까? 아픔을 아는 자는 처벌이 아니라 선처로 뉘우침이라는 판결을 내려 기회를 선고하지 않을까? 읽고 있으면, 내 경험의 한계도 뚜렷하게 보게 된다.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착한 사람에게 법을 가르치거나 법을 아는 사람을 착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전자가 후자보다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page 389)
마지막은 사회에 바라는 점을 적었다. 판사는 강한 힘을 가진다. 단, 재판장 안에서 자신이 할당받은 사건에서만. 세상을 마주하며 그는 불편했다. 착한 사람은 번번이 작은 일에도 처벌을 받고, 착하지 않은 이들을 교묘하게 재판장에서 유유히 떠나는 모습을 봤다. 판사가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외침이 담겨있다.
아름다운 사람이 많다. 절망하기엔 이르다. (page 95)
혼탁해 보인다. 착하지 않은 이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곳곳에 숨어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 나쁜 일은 재빨리 퍼지고, 좋은 일은 느릿하게 움직인다. 아! 하고픈 선고가 있다.
"주문하겠습니다. 아직 <호의에 대하여>를 읽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 1회 읽기를 처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