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의 열기는 아직 뜨겁다.
트로트가 한동안 전국을 강타했었다. <내일은 미스터 트롯>과 <내일은 미스 트롯>에서는 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임영웅은 삼대가 덕질하는 가수가 되었다. 유재석은 부캐로 유산슬이 되어 트로트 열풍을 젊은 사람에게도 전했다. 이제는 그 열기가 식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평일 저녁 거실에서 경쾌한 트로트가 울려 퍼진다.
우리들의 트로트 (출처: MBN)
거실로 나가보니, 어머니는 <우리들의 트로트>를 보신다. 제목도 생경한 트로트부터 최근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노래를 듣던 어머니는 성당에서 노래를 부른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텔레비전의 소리를 줄였다.
<눈물 젖은 두만강>이 울려 퍼진 성당
*이하, 어머니 시점으로 작성했습니다(나=밝은 달=어머니).
할머니는 가톨릭 신자였다. 할머니의 영향 덕에 고모들도, 고모부들도 모두 신실힌 믿음을 가지셨다. 주말이 되면 할머니의 지휘 아래 가족들은 성당으로 향했다. 보통은 은근한 강요가 있을 법했지만, 전혀 없었다. 나에게 세례를 권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더운 기운을 시원한 바람이 밀어내는 가을. 심심하던 차에 할머니 손을 잡고 성당으로 갔다.
기억을 더듬어 교회를 찾았다. 동상동에 있는 김해 성당. 김해 성당의 홈페이지 역사와 기억의 퍼즐을 맞춰보니, 내가 간 성당은 자리를 잡아가던 성당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할머니는 성당에서 영향력이 있으셨나 보다. 내가 주로 가서 놀던 곳은 신부님 방이었고, 할머니를 비롯해 고모들은 자주 신부님과 긴 이야기를 하셨다. 그날도 신부님과 할머니, 고모가 나누셨다. 할머니가 불쑥 말을 꺼낸다.
"크리스마스에 잔치를 하는데, 노래를 부를 일이 있어. 한 번 해볼래?"
고모는 옆에서 거든다.
"밝은 달아 여기서 노래 한번 불러봐."
빼는 법이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준비 신호를 보냈다. 노래하기를 좋아했고, 무대 체질이었나 보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가 방을 가득 채웠다(딸이 실용음악과에 진학한 것을 보면 아마 내 영향이 아닐까 한다). 오디션이었다보다. 나는 크리스마스 공연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할머니의 애창곡으로 추정되는 곡이 공연곡으로 선정됐다. <눈물 젖은 두만강>.
일주일에 한 번 가던 성당은 연습 덕분에 일주일에 세 번을 갔다. 서운해하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에는 매일 갔다. 집안일에서 해방되는 것도 즐거웠다. 더 즐거웠던 이유는 할머니의 자랑이 된 것이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왔다. 온갖 행사 뒤에 내 차례가 다가왔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성스러운 십자가를 뒤로하고 신도들을 위한 짧은 콘서트가 끝났다. 클리셰처럼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방긋 웃으며 할머니와 눈을 마주치곤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어머니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노래를 함께 부르신다. 나는 웃으며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쳤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짠한 마음이 든다. 왜 일까? 아마, 어머니가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인 노래를 접고 사셨으리라는 생각 때문은 아닐까 한다. 지금이라도 마음껏 부르셨으면 한다.
다시 텔레비전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박수도 함께.
그날의 성당으로 돌아간 어머니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