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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의 화 다스리는 방법

걸어야 졸업한다는 전설

by Starry Garden
걸어야 졸업한다는 전설


학교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박사학위를 따려면 학교를 백번은 돌아야 한다." 전설은 자고로 출처도 알 수 없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렇게 큰 학교를 어떻게 백번을 돌 수 있나 했다. 졸업한 지금은? 돌 수 있다. 내가 돌았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족히 백번은 될 테다.


밤에 무척 많이 돌았다. 하루 종일 실험실에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실험이라도, 논문이라도 잘 써지는 날이라면 모를까, 대부분 잘 안되니 답답함은 한 층 더해진다. 답답함은 이내 자신에 대한 화로 변한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 무슨 박사냐."


집에 가진 못하고 하지 못한 일을 보고 있는 밤에 학교를 돈다.


이어폰을 끼고는 볼륨을 높인다. 그렇게 몇 곡을 듣고 나면 한 바퀴를 돈다. 어떤 날을 두 바퀴, 세 바퀴를 돌기도 한다. 그렇게 돌고 나면 답답함은 덜해지고, 화는 사그라든다.


대학원생의 화 다스리는 방법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를 필사하다 알게 되었다. "이누이트족 화 다스리기" 이누이트족은 화나 가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그리고 충분히 걸었다 싶으면 그곳에 막대기를 하나 꼽는다고 한다. 거기에 미움, 원망, 화를 남겨두고 온다는 것이다.


학교 전설은 선배들이 남긴 충고였나 보다. 나도 그렇게 걸었고, 그 전설을 후배들에게 전한다.


대학원생은 무척 답답한 삶을 살아간다. 능력의 변화는 미비하고, 시간은 자꾸 가며, 해야 할 일은 늘 기다린다. 답답함이 발에서부터 타고 올라와 심장을 꽉 쥔다. 답답한 상태에 있다 보면 사소한 일에도 벌컥 화가 난다.


그럼 걷자. 이누이트족처럼. 그렇게 걸어서 내 답답함과 화를 학교 어딘가 꼽아 놓고 오자. 백번이면 졸업이다.


화가 나지 않지만, 오늘은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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