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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총총한 정원 속 책방

Bookstore in the starry garden

by Starry Garden
Starry garden


브런치의 필명으로 starry garden을 쓰고 있다. 한글로 하면 '별이 총총한 정원' 정도일까? 필명을 지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 누군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라 내가 짓는 이름이니 뜻도 좋고 나를 잘 표현하길 바랬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음에 고려한 이름은 '책향' 또는 '서향'이었다.


창덕궁에 가면 '서향각'이라는 건물이 있다. 책(書) 향기(香)가 난다는 의미를 가진 이 건물은 서책이나 그림을 보관하는 곳으로, 주기적으로 포쇄를 했던 모양이다. 포쇄는 좀이 쓸고 습기가 스며 책이 상하는 것을 막고자 햇볕에 말리는 관리법이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자 하는 나에게 딱이다 싶었다. '서향'이라고 하면 '서양'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 '책향'은 어떨까 고심까지 하고, 가까운 이들에게 물어봤다.


반응이 시원찮았다. '좋긴 한데....'라는 줄임말로 시작하는 거보니 말이다. 마침(?) 브런치 작가 신청에서도 탈락했으니, 급한 일도 아니라 생각하고 마음의 서랍에다가 고이 넣어 두었다. 그렇게 2달 정도 지났을까? 브런치에 다시 도전하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몇 편의 글을 썼다. 글을 쓰며 필명을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여자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다시 한번 물어봤다. "책향 어때?", 잠깐 고민하던 여자 친구는 내 이름의 한자를 물어봤다. 내 이름 중 하나가 별을 뜻한다는 걸 듣더니 "starry를 넣자"라며 권했고, 이유를 물으니, "최근에 나 Don-Mclean - Vincent (starry starry night)를 들었거든 그게 생각나서!"라며 짧고 확실한 이유를 전해줬다.


그리고 참 멋없게 나는 "형용사인데 명사가 필요해."라며 말했다. 순간 아차 하며 내 눈동자는 허공을 배회했고, 그녀의 눈은 검은 자보다 흰자를 더 보이며 나를 흘겨봤다. 그 순간 위기에서 날 구출한 단어는 '정원'이었다. 그녀는 검은 자를 더 많이 내보이더니 괜찮다며 내 죄를 사해주셨다. 왜? 정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을까? 생각을 되짚어보니 아랫집에 사시는 노부부께서 열성적으로 가꾸시는 정원 때문이라 짐작했다. 꽃, 나무, 심지어 블루베리 같이 과실나무까지 촘촘히 심겨있으며, 돌과 도자기 인형들이 즐비한 하나의 자연을 구축해 놓을 그곳을 아침저녁으로 보고, 이웃인 그분들께 인사하며 각인된 모양이다


위기(?)를 거쳐 탄생한 이름이 starry garden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나를 표현 하려니, 그 이름에 걸맞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듯 했다.


별이 총총한 정원 속 책방


Starry garden이라는 이름을 짓고 곱씹어 볼수록 참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가께서 글은 내면을 들어내는 일이라, 좋을 글을 쓰려면 좋은 내면을 가꿔야 한다고 했다. 내면 가꾸기가 마치 정원 가꾸기처럼 느껴졌다. 앞서 말한 노부부께서 가꾸는 정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분들은 아침저녁으로 내다 보고, 비가 오거나 너무 건조한 날은 정원을 채우고 있는 식물을 돌본다. 물을 주거나, 배수가 잘되도록 조치를 취하신다. 건강한 식물을 위해 비료를 주기도 하시고, 가지를 치시기도 하신다. 그 결과가 멋진 정원이 되어, 그곳을 오가는 모든 이들이 미소짓게하고, 계절의 흐름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 글이 마치 정원처럼 보이길 바랬다. 내가 잘 돌본 내면을 들어내는 정원. 지나가는 이들이 쉬며 지나가는 정원. 계절을 느낄 수 있도록 다채로운 정원.


그러기 위해선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그 노력이 마음을 가꾸는 일의 일환이 되는 선 순환이 되지 않을까?라는 질문과 생각이 교차했다.


그런 내 내면에는 반드시 책방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 책이 정리되어 있는 책방 말이다. 내가 만든 별이 총총한 정원 속 책방을 상상해봤다.


상상


반짝거리는 별이 잘 보이는 맑고 늦은 밤, 시내라 말하긴 죄송한 읍내와는 차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자그마한 책방이 있다. 책방을 갈려면 4층 정도의 **타운하우스 단지를 지나간다. 단지 입구를 지나면 홀로 환한 빛을 내는 책방이 있다. 책방의 사방은 마치 성벽을 두른 듯, 주위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라는 표시를 하는 것 처럼 정원으로 둘러싸여있다. 입구로 안내하는 초록색의 자그마한 입간판이 있고 길은 징검다리처럼 돌이 놓여있다. 입간판에는 책, 소품 그리고 아래에는 #독립출판 서적, #기성 출판 서적, #뜨개 소품이라고 적혀있다. '별이 총총 빛나는 정원 속 책방'이라는 간판 아래에 문이 있다. 문 아래쪽 반은 밝은 색의 나무로 막혀 있고 위에는 유리로 되어 있어 안쪽이 보였다. 잠시 주저하며 들어간 책방에서는 시원한 기운이 밖의 더운 기운을 밀어내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안경을 쓰고 계산대에 앉아있다. 자세히 보면 계산대인지 서재 책상인지 모르겠다. 아마 손님한테는 과하게 친절하진 않을 것 같다. 손님인 내가 들어왔는데도 자신이 하던 일을 멈추지 않으니 말이다. 주인은 흰색 바탕에 하늘색의 작은 체크 셔츠, 바지는 베이지색, 흰색 양말, 나이키 신발을 신고 있다. 그의 오른손이 닿을만한 거리에 컵이 있다. 가까이 갈 수록 흐릿한 과일향이 난다. 아마 차를 마시고 있던 모양이다. 그 옆에는 동아-에이 0.7 mm 볼펜 한 자루와 15 cm 내외의 낡은 자가 함께 있다. 그의 뒤에는 책장이 있는데, 책장의 마지막단에 손이 간신히 닿을 정도의 높이로 벽을 가득 매우고 있다. 계산대 앞 쪽에는 양쪽으로 큰 평대가 있고, 가운데는 복도로 길이 나있다. 평대에는 책들이 누워있고 아래에는 가지런히 서있다. 신간보다는 옛날 책이 많이 있다. 트렌드를 거스르기도 가끔 타기도 하는 주인의 고집이 있어보인다. 평대가 만든 복도 끝에는 창가 쪽으로 작은 책상과 의자가 있고 사람이 앉아있다. 2명은 주인과 비슷한 자세로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다.


새로운 방법의 책 소개


새로운 이름은 내게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라 촉구했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매력적인 형식에 도전해보고자 했다. 소설의 형식을 빌린 책 소개. 책 맞춤형 독자를 만들어 등장시킨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물들은 다른 인물들과 교차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또 다른 책들은 소개할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등장인물이 나타난다면, 그에게 공감한다면 당신에게도 필요한 책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대가 될 수 있고, 그대에게 가까운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리라. 어디로 갈지, 언제 끝날지, 어떻게 흐를지 모르는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두려운 일이다. 전형적인 이과생인 내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책을 소개하는 도전을 하니 말이다. 새로운 이름이 주는 힘을 믿어 보려한다. 누군가가 지금 이 글을 읽는다면, 책을 추천받을 수도 있고, 조금씩 성장하는 Starry garden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당장 내년에 이 글을 보고 두 가지 말을 듣는다면 무척 성공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꽤 꾸준히 썼네", "처음보단 많이 괜찮아졌네". 이 여정을 따라올 사람에게 응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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