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에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읽었다. 제제에 대한 이야기. 삶에 대한 행복과 의미를 아이 눈을 따라간다. 가난이 덮치지만, 의미를 찾고 행복을 알아가는 제제. 관계가 아픔을 주었지만, 결국 관계가 위로를 주는 이야기다.
제제 성장일기가 아니라, 사실 어른들이 성장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이제 어른으로 가까워졌기 떄문일까? 제제 주변에 있는 어른이 된 듯하다. 제제가 안타깝고, 눈앞이 흐려지기도 하며, 화가 나기도 하다. 문단이 문장이 되고 더 진하게 만들어 놓으니 하나의 단어가 남았다.
'가난'
조선 선비에 미덕은 안빈낙도.
'가난하지만 마음을 편히 하고 걱정하지 않으며 도를 즐긴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여전하다. 정말일까?
제제가 이끌어준 생각에 앉아, 단어에 단어를 붙여 문장을 만든다. 문장을 모아 문단을 만들어 두니, 조그마한 글 파편이 만들어진다.
"돈이 부족해도 행복할 수 있다. 다만, 무척 어려울 뿐이다."
가난이 뿜어내는 어려움을 넘어서는 행복이 있어야 한다.
가난은 온갖 불편을 함께 데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다. 가난이 뿜어내는 어려움을 넘어서는 행복을 만들어 낸다면 말이다. 가능할까? 가능하긴 하다, 다만 무척 어려울 뿐이다. 내 주변에도 돈보다는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사시는 분이 있다. 그분들은 돈으로 움직이기보다는 행복을 향해 달려간다.
사람마다 충분한 돈, 부족한 돈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기준은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행복의 양이 큰 영향을 준다. 가난이 만들어내는 어려움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 드린다. 모르는 척하지도 않는다. 가난이 뿜어내는 어려움을 행복이 모두 덮어버린다.
가끔 나에게도 불편함이 오기도 한다. 불편함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커질 수도 있다. 불편함을 투정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불편함을 잊을 행복을 찾으려 한다. 사람마다 다를 테다. 나에게는 글이고, 그림이다. 글을 쓰고 많은 분들과 나누는 순간. 그림에 집중하는 시간. 온갖 불편함이 행복으로 덮여 찾을 수도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