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할머니 임종을 지키다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
만물 도보상을 하셨던 할머니 잠자리 옆은 늘 내 차지였다(<너희 아버지 뭐하시니?> 참조). 1973년 칠순은 막 넘은 할머니는 더 이상 마을을 돌아다니시지 못하고 집에만 계셨다. 정확히 말하면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계셨다. 모두들 할머니와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듯, 평소에 보기 힘들던 고모와 고모부들이 아침저녁으로 집으로 오셨고, 언니 오빠들도 퇴근을 집으로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무더움을 피했다는 안도감보다는 추운 겨울을 할머니께서 견디실까라는 걱정이 앞선 가을이었다. 누워만 계시던 할머니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그러곤 나지막한 서랍장에서 꼬깃꼬깃 접혀있던 지폐를 두어 장 꺼내 주시며 엷은 미소를 지으셨다. 무슨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얼른 인사를 하고 받아 들었다. 인생 끄트머리에 다다랐을 때, 제일 가깝다고 생각한 손녀에게 뭐라도 주고 싶으셨나 보다. 힘을 짜내어 주신 게 돈이셨으니 말이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던 날 어른들은 교대를 하며 할머니 옆을 지키셨다. 타이밍이라는 게 묘하다. 세상모르고 자던 내가 잠시 목이 말라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늘 있던 어른들은 없었다. 별 생각은 없었다. 물 한잔 먹고 다시 이불로 들어 갈려고 했는데, 할머니께서 눈을 엷게 뜨시곤 아주 긴 한숨을 쉬셨다. 우리도 힘든 일 후에는 긴 한숨을 쉬듯, 할머니가 사셨던 고되고 긴 인생에 대한 긴 숨이셨나 보다. 그러곤 눈을 감으셨다.
직감이 말했다. 어른을 불러야 된다고 했다. 건너 방에서 잠자던 어른을 아무나 깨웠다. 일어난 이도 알았다. 무슨 일이 있어 났다는 걸. 할머니가 긴 여행을 끝내고 다른 곳으로 가셨다는 걸. 그렇게 좁은 집에 있던 모든 어른은 일어나 울음을 터뜨려 할머니와의 마지막 인사를 마을 전체에 알렸다.
실감 나지 않았다. 장례 절차는 할머니가 떠나길 기다렸다는 듯 진행되었다. 집 앞에는 근조를 알리는 등을 달고, 천막이 쳐졌다. 오시는 손님을 맞이할 솥도 준비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을 손님부터 멀리 사는 친척까지 5일간 그 일이 지속되었다.
마지막 날이 되던 날, 몸이 치쳐서 정신도 무너졌는지 한 시간을 울어댔다.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할머니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사고 친 고모부
개그맨이 토크쇼에 나와 가끔 장례식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곤 한다. 할머니 장례식장에서도 시트콤 같은 이야기가 있다. 고모부가 술을 참 많이 드셨다. 구박받던 사위가 이제는 원망의 대상이 없어져 그런지, 평소에 못했던 효도가 아쉬웠던 건지 모르지만, 꼬부라진 혀로 알 수 없는 말을 소리치셨다. 어른들은 말리고 주저앉히길 반복했지만, 난동과 소란의 경계선을 오갔다.
소리치고 말리는 사람과 옥신각신하며 힘을 너무 주셨나? 베이지색 바지가 진한 색으로 물들어 다리를 따라 길을 냈다. 말리던 분도, 소리치던 분도 정적이 흘렀다. 그 부끄러운 상황에 정신이 들었는지, 이제는 정신을 반드시(?) 잃어야겠다고 결심을 하셨는지 아무 방문을 열고 들어가셨다. 그리곤 묵묵부답. 그 장면을 나와 형제들이 보곤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었썼다.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장례식장의 금기라 생각되는 웃음이 계속 나왔다.
그 후 어떻게 되었냐고? 고모부는 다음날 방에서 나오는 걸 보지 못했지만, 사라지셨다. 고모는 고모부의 뒤처리를 했으며, 어머니가 방을 깨끗이 원상복구 시켰다. 해가 져가는 노을과 함께 돌아오셨다. 그리고 당당하던 고모부는 역시(?)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부끄러워하셨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부끄러워할 일도 없지 않을까...?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는 그랬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홀로 임종을 지켰다. 긴 한숨 소리를 들으며.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울음의 이유도 지금까지 모르겠다. 그저 떠나셨구나 정도였다. 그것이 그녀가 맞이한 첫 죽음이었을 뿐이었다.
부모님의 첫 작별인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생각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것이다. 우리 삶에서 피하고 싶지만 절대 피할 수 없는 이야기인 마지막 인사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의 뇌리게 깊숙이 박히니 말이다.
1. 가족이 돌아가신 경험은 언제 최초로 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