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의 의미
근정전의 의미
경복궁은 조선시대의 법궁*으로 명실상부한 조선시대의 심장이라 할 수 있다. 그 법궁에서도 핵심이 있는데, 바로 근정전이다. 이곳에서 임금은 정치를 하고, 임금 즉위식과 같은 중요 행사를 하며, 외국 사신의 접견을 하는 장소이다. 새로운 나라 조선을 건국하고 거기에 걸맞은 궁궐을 지을 때, 각 건물의 명칭을 신중하게 지었다고 한다. 법궁이자 핵심인 근정전은 그럼 무슨 뜻일까?
정도전이 기록한 문서가 <태조실록>에 있는데 근정의 뜻은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폐하게 됨은 필연의 이치입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 부지런함을 풀어서 한번 더 이야기하는데, "아침엔 정무를 보고, 낮에는 사람을 만나고, 저녁에는 지시할 사항을 다듬고, 밤에는 몸을 편안히 하여야 하나니 이것이 임금의 부지런합입니다"라고 한다.
법궁: 임금이 사는 궁궐 -한국 고전용어 사전-
그렇다. 부지런히 일하고 부지런히 쉬는 것이 근정의 의미이고 임금이 새겨야 할 말이었다. 휴식과 일의 균형이 맞이 않으면 사람은 무너진다. 과중한 업무가 효율을 낮추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휴식을 계속한다는 것이 게을러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앞으로 조선의 왕에게 정도전은 매일 드나드는 곳의 이름을 근정전이라 고하며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쉬어라"라고 한 것이다.
아무튼 퇴근
대학원 생활은 장기전이다. 벼락치기는 잘 통하지 않는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벼락치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보고서 데드라인이 다가온다거나 실험의 특성상 24시간을 관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아무튼 퇴근을 해야 한다. 이건 아무튼 출근과 연계되는데, 느지막이 오후 2시에 출근을 하곤 '아무튼 퇴근'을 외치며 6시 가는 건 아무튼 퇴근이 아니다. 아무튼 출근과 아무튼 퇴근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자는 말이다. 꾸준히 시간을 들여서 일을 해야만 목표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이지 벼락치기로는 목표에 도달할 시간을 누적할 수 없다.
아무튼 퇴근을 강조하고 싶은 건 내 경험이 크다. 대학원 생활은 늘 시간에 쫓기고 성과에 쫓긴다. 조교로 해야 할 일 있고, 연구 프로젝트 성과에 대한 일도 해야 하며, 내 논문도 써야 한다. 거기다 실험은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낮에는 잡일을 처리하며 실험을 하고, 밤에는 논문을 읽고 쓴다. 일기도 꾸준히 쓰는 게 어려운데, 논문은 감히 더 어렵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거기게 매달려 있다 보면 다음날 퇴근하기는 일쑤였다.
그 시간이 효율적이었을까? 사실 효율이랄 게 없을 때가 많다. 불안감이 그곳에 그냥 앉아있게 만들 뿐이었다. 그래서 늘 피곤에 절어있었던 것이다.
이 매거진의 시작인 <자네 대학원생인가?>에서 묘사한 좀비 같던 대학원생들은 아마 조급함과 불안함 때문에 실험실을 떠나 쉬지 못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폐하게 됨은 필연의 이치입니다"라고 말하듯, 물론 부지런히 해야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부지런히 쉬는 것도 중요하다. 쉬어야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불안과 조급함이 나를 더 피곤하게 하니 실험실에서 퇴근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내일의 내가 더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해야만 한다.
조선의 임금이라는 직책도 아마 불안과 조급함에 떨며 지냈을 것이다. 그러니 쉬는 게 무척 힘들거라 예상한 정도전은 쉼을 강조한 것이다. 대학원생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쉼이 중요한 것이다.
퇴근은 곧 휴식이다. 퇴근이 안 되는 실험을 하는 경우나 층층이 선배가 많은 실험실에서 직장인처럼 눈치를 봐야 할 수도 있다. 그럼 휴식이라는 것에 집중을 해보자. 점심시간에 산책을 간다던지, 실험 대기 시간에 눈을 붙인다든지 말이다. 바쁜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고 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건 불안과 조급함이 크기에 조금의 시간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랬으니 말이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애연가가 친구들에게 금연을 권하는 꼴이다. 내가 하지 못한 것을 권하니 머쓱하긴 하다. 하지만 애연가도 안다. 담배가 몸에 좋지 않을 것을. 그러니 담배를 피우는 이에게 나는 못하지만 너라도 했으면 한다는 소망으로 금연을 권한 것이다. 나도 그러하다. 그때 내가 하지 못해 힘들었던 나날을 그대들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에 권한다.
'알잘딱깔센*' 휴식도 부지런히 하는 그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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