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무튼 출근? 등교?

대학원도 출근이 반이다.

by Starry Garden
<아무튼 출근>


<아무튼 출근>은 MBC에서 방영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직업의 하루를 보여준다. 소방관, 경찰, 변호사, 선생님처럼 귀에 익은 직업도 있고 장례지도사, 남극 연구원, 퍼레이드 기획감독처럼 생경한 직업도 나온다. 방송에서 잘 다루지 않고, 우리가 쉽게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이들의 직업의 하루를 보여주니 흥미롭다.


다음에 오는 감정은 '참 비슷하다'라는 느낌의 공감이다. 공감 속에는 '어디든 비슷하구나', '일은 생경해도 고민하는 건 비슷하구나'라는 사는게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맴돈다.


<아무튼 출근>을 보며, 대학원생이 가져야 할 태도라 생각했다. 그 모든 직업들의 시작은 '출근'이었다. 석사과정도 박사과정도 출근이 시작이다. 아무튼 출근을 해야 모든 일이 시작된다.


미생물이 강제한 출근!


'대학원은 학교로 등교지 무슨 출근이냐'라며 이 글의 시작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학교라 하더라도 규칙적인 출근을 하는 회사라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학원도 규칙적인 출근이 모든 일의 시작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연구실의 문화와 관습은 지도교수의 지도방식, 선배 태도, 연구 주제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다. 연구실마다 특수성을 가진다는 말이다. 그래도 나는 주장한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공학 실험실에서는 반응기를 운영한다. 반응기란 특정한 목표를 관찰하기 위해 조건을 제한한 상태로 운영되는 기기를 이른다. 내 전공에서는 보통 반응기에 미생물을 넣고, 처리하고 싶은 폐수를 유입하며 처리 정도를 살핀다. 이 반응기는 반려동물 같기도 하고 아이 같기도 해서, 매일 돌봐줘야 한다. 그리고 묘하게 꼭 반응기의 주인이 자리를 비우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정교하게 자동화를 해놔도 문제는 발생한다.


한 번은 학회 발표 덕분에(?) 학교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지없이 전화가 온다. "선배님, 반응기 유출수가 이상한데요..?" '아놔'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괜찮으니까 유입수나 잘 봐줘."라며 짧은 탈출을 어서 끝낸다.


내가 자리를 잠시 비운 덕에 발생한 문제점이 미팅의 화두로 떠오른다. 결과가 튄 부분의 원인을 이런저런 말들로 설명 아닌 변명을 하고, 무사히 넘어가길 기도하고 있었다. 내 말이 막 끝나자마자 교수님이 한 마디 하신다.


"미생물은 까탈스럽다. 하루라도 인사를 오지 않으면 버럭 성질을 낸다."


30년 전 미생물이나 지금 미생물이나 비슷한가 보다. 이 녀석도 내 출근을 강제했다. 그것도 꾸준히 말이다.


꼭 연구실 갈 필요 있나요?


연구 주제에 따라, 그리고 자신의 생활 리듬에 따라 자신은 집에서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 수 있고, 나는 저녁에 더 집중이 잘 된다고 해서, 연구실에 가지 않는 이들이 더러 있다. 물론, 아주 잘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으나, 나는 아니었다. 두 가지 반응이 예상된다. "어떤 연구실이 재택 연구를 용인하냐?", "나는 학교가 아니더라도 나는 잘만 되던데"라는 극단의 반응이다. 있다, 연구실 오지 않고 하는 분들이.


특히 집에서 연구를 하신다는 분은 집중의 문제를 떠나서 휴식과 일의 구분이 없어지는 게 더 큰 문제이다. 일을 하는 것도 쉬는 것도 아닌 시간이 지속되면 피곤하고, 집중력은 더 떨어지기 마련이다.


일단 연구실에 가면 연구 생각을 하고, 필요한 것을 찾아보고, 읽게 된다. 규칙적인 연구시간을 확보하고 꾸준히 하면, 참 많은 시간이 모여 나를 연구로 이끈다. 그리고 연구와 휴식을 분리하여 충분한 휴식이 있어야만이 높은 몰입의 연구가 가능하다. 그러니 꼭 연구실을 가야만 한다.


다시 아무튼 출근


참 가기 싫어질 때가 있고, 참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아무 일을 하지 않더라고 규칙적인 시간에 연구실에 있는 것이 필요하다. 실험은 시도와 실패의 반복이고, 논문을 읽고 정리하는 건 참 지루한 일이다. 실험의 실패는 내 몸 한 부분과 마음 한쪽이 무너지는 느낌까지 주고, 논문 정리는 아무런 효과가 없이 느껴질 때, 바로 가기 싫고, 있기 싫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출근으로 어떤 상황에서라도 가는 습관이 있어야 한다. 출근을 안 하고 집에서 한다는 명목으로 연구실을 피한다면 해결되는 실험도, 쌓이는 생각도 없어진다. 피하는 순간 악화되고 나는 게을러진다. 그러니 아무튼 출근을 해야만 한다.


연구는 연구실에서 하는 것이다. 싫어도 좋아도 눈이 와도 비가 와도 가자. 아무튼 출근이다.



P.S.

나는 지금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데, 대학원 때 습관을 잘 들인 탓이다. 지도교수님은 7시에 출근하셔서 10시에 퇴근하시는 생활을 하셨는데, 나는 겨우 흉내만 낼 뿐이었다. 그래도 그 덕에 좋은 습관을 들였다. 옆에 좋은 롤모델이 있어서 보다 쉽게 습관을 들일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감사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대 주위에 그런 분이 한분이라도 있다면, 따라 해보길 권한다. 없다면, 이제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