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리로 채우고, 고소한 냄새를 넣는다.
혼자 있는 자취방. 소리를 지우다.
오랜만에 혼자 살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 내내 자취과 기숙사를 오갔다. 대학원에 진학하고는 자취를 하며 쭉 살다, 박사 과정 끄트머리에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졸업 뒤에도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직장을 다니는 덕분에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다시 헤어졌다. 집에서 직장이 멀어지기도 했고, 회사는 타지에서 오는 이들을 위해 집을 마련해 줬다. 어색한 집에 익숙한 물건을 채웠다. 친한 친구를 낯선 곳에서 만나는 느낌이다. 늘 쓰던 잡동사니가 생경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혼자다. 전과 가장 다른 건 바로 소리다. 함께 할 땐 모른다. 혼자 산다는 건 얼마나 적막했는지. 나만 가만히 있으면 소리는 없다. 물이 흐르는 소리, 보일러 소리, 에어컨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 정도다. 사람이 내는 소리는 없고 인공적인 소리만 있다.
인공적인 소리는 익숙해지더니 사라진다. 소리가 지워진다. 혼자가 외롭다는 건, 소리 없음이 아닐까? 고요히 앉아, 함께 살던 때 들리던 소리를 더듬어 본다. 희망이 (견생 4년 차 몰티즈)가 뜬금없이 짖는 소리, 어머니가 밥을 준비하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 1층 할아버지 할머니의 두런거리는 이야기 소리, 이웃 사이의 인사소리.
아쉬운 마음만 커진다. 지금은 의미 없는 소리로 텅 빈 공간에 욱여넣는다. 보지도 않을 유튜브, ASMR화 되어버린 영화나 드라마, 잔잔한 클래식, 좋아하는 영화 OST도 낮게 깔린다. 때로는 시끌벅적한 예능으로 주의를 헐값에 넘긴다. 혼자 있는 공간에 의미 없지만 소리로 가득 채우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집중이 흐려진다. 자극에 익숙해지는 탓일까? 도파민이 넘쳐난 덕분일까? 텅 빈 눈으로 의미 없는 영상을 본다. 꽉 차버린 소리에 다른 생각을 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며칠을 있고 나니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채운 소리를 푹 찔러 공간에 있던 소리를 뺐다.
다시 적막. 최근에 읽지 못하던 책을 샤라락 넘긴다. 사각사각.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가 창문을 뚫고 작게 들린다. 다시 책에 집중. 사각사각. 혼자 있는 자취방에, 소리를 지우고 작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다시 사각사각.
한 시간 동안 사각 거리는 소리를 내며 책을 읽었다. 판타지 세계에 잠시 다녀오기도 하고, 학자의 어깨에 올라타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나 든다. 한 분야에 전문가와 이야기 나누며 통찰에 눈을 반짝여 보기도 한다. 홀로 있는 시간, 소리가 빠진 공간에 내 생각을 하나씩 채워 놓는다.
이제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며 앉아 있는 의자를 핑그르르 돌린다. 한 바퀴 두 바퀴. 이젠 향으로 집을 채울까 하다 생각이 번쩍인다. 빵의 고소한 향을 넣고 싶다. 프라이팬을 꺼내고 버터... 없으니 식용유 조금 넣고 식빵을 얹어 본다. 자글자글. 고소한 냄새가 방을 가득 채운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빼고 나니. 넣을 것들이 많다. 책 소리, 빵 냄새. 우선 잘 익은 빵에 잼 듬뿍 발라 한입 와그작 하고 책의 사각 거리는 소리를 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