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어 주는 단 한 곳이 날 살게 한다.

아는 형 가라사대.

by Starry Garden
나를 믿어 주는 단 한 곳이 날 살게 한다.


아는 형 K와 가끔 통화를 한다. 한 번 하면 1시간 가깝게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럴 때면, 주제는 여럿이다. K는 대부분 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경험으로 날 앞으로 가게 한다. K와 대화를 잦으니, 글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얼마 전 일이다. 서 너 편이 쌓이니, 욕심이 났다. 10편을 채워 브런치 북으로 만들겠다는 작은 결심에 도달했다. K와 나눴던 말들을 복기하게 된다.


K와 대화를 돌려보니, 그는 자신의 이야기. 특히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전무하다 싶었다. K와 만난 건 학창 시절이니 긴 시간이지만 그가 나와 만나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했는지 모른다. 그는 말하지 않았고, 나는 현재 K가 좋기에 굳이 묻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무슨 이유에선지 자신의 엣이야기를 시작했다. 글로 쓰면 흔해 보이지만, 개인에게는 어려웠던 경험이 나열된다. 긴 이야기를 단어로 추리면 가난과 빚 정도일까? (K와 아무리 가깝지만, 거기다 써도 된다고 했지만 다 옮겨 적기에는 두렵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는 빚을 부모님과 나눠 짊어지고 살았다. 추심을 하러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이 찾아오니, 배겨낼 재간이 없다. 집 앞에 누군가 어른거리면 K는 동네를 정처 없이 떠돌았다. 정서적 지지가 강했을까? 부모님은 허우적거리며 빚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 일했으니 다정하게 앉아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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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환경에 놓이면 미성년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럼에도 K는 어긋나지 않고 단단한 어른이 되었다. 왜일까? K가 반복해서 한 이야기가 중심에는 '안식처'가 있다. 돈 없는 아이가 오락실을 가고 공원을 걷기도 하다, 집으로 가면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K가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바로 '친구집'이다. 터덜터덜 집으로 가면 친구는 잘 왔다며 맞이하고, 부모님은 언제나 질문하지 않으셨다. 잠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밥을 내어주신다. 하루를 살아낸다. K는 그마저 다 누리지 못했다. 새벽이 되면 친구 집에서 나간다. 빚쟁이가 물러간 자신의 집으로 후다닥 들어간다.


질문도, 의문도 없이 받아주는 곳. 믿어주는 안식처가 K에게 있다. 믿음. 질문 없는 믿음은 정말 강력하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 한 명만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도 하고, 때로는 떨리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를 알아주고, 언제나 안아주는 단 한 분이 있는 그곳이 K를 살게 하는 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흡사하다. 거친 정도가 다르지만, 사람에 따라 자신만의 무게를 진다. 어떤 무게든 간에, 짊어지고 가다가도 잠시 쉬어갈 곳이 필요하다. 사람인 탓에 무한한 에너지가 나오진 않는다. 누군가의 비난이라는 짐에 더해지고, 누군가의 멸시가 다리를 잡아갈 곳 없이 유랑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건 바로 나를 믿어주는 이들이, 질문 없이 받아주는 안식처가 있기 때문이다.


힘겨운 삶을 견디고 있을까? 주변을 돌아보자. 팔을 활짝 벌려 나를 맞이해 주는 곳 한 곳은 있다. 그곳으로 가자. 날 살게 해 주는 이유를 찾게 되리라. 이따금, 나도 누군가에게 질문 없이 받아주는 안식처가 될 날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