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마음이 커진 모양입니다.
선배라는 호칭을 고집했던 이유.
호칭. 정말 어렵다. 백부, 숙부, 당숙, 처형, 처남, 처제, 동서, 아주버님, 매부, 매형, 매제, 올케, 제부. 내 위치에 따라 거대한 지도를 펴 놓고 찾아야 할 정도다. 가족끼리는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 호칭에 신중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가 다양해질수록 우린 복잡한 호칭을 얻게 된다. 싫든, 좋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진학했다. 형, 오빠라 불리기 시작했다. 불편했다. 미국처럼 이름으로 불릴 수 없었다. 정해야 했다.
가끔 우린 행동을 먼저 하고,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 그랬다. 못마땅했고, 다른 호칭을 찾았다. 바로 "선배". 새로 알게 된 사람은 물론 예전에 알고 있던 이들에게 까지 바꾸라고 했다. 왜 그러느냐는 이유에 형과 오빠가 불편하 다했다. 내게 오빠라 부르는 사람은 호적을 함께 쓰는 동생뿐이라는 말을 더했다.
곡절을 겪으며 석사를 하고, 박사까지 했다. 시간이 흘렀다. 사회생활을 하며, 호칭에는 직함과 박사가 자리 잡았다. 선배라 불리는 이들과는 멀어져 각자의 생활을 했다. 가끔 가까운 후배들과 만날 때나 선배를 호칭을 붙였다 뗐다가 했다. 그때까지 여전히 난 선배를 고집했지만, 이유를 몰랐다.
후배 중 몇몇이 호칭을 바꿨다. 형이 되고, 오빠가 되었다. 가까운 이들이라 그랬던 건지, 괜찮았다. 이유가 맥락 없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집하던 이유를 좁혀 단어로 만들면 하나. 바로 '책임'이다.
형, 오빠라는 호칭을 무겁게 느꼈다. 가볍게 부르는 이들은 깊은 생각은 없는 이들도 있지만, 난 아니었다. 내 동생을 지킬 만큼, 내 동생에게 해야만 하는 일들을 그들에게 해줄 여력도 능력이 없었기에 호칭이 불편했다. 물론 다 큰 이들에게 무슨 오지랖이라고 할 수 있다. 난 그랬다. 그래서 싫었고, 학업이라는 관계에만 있는, 아주 조금 앞에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좋다 느낀 모양이다.
그럼 지금은 왜 괜찮을까? 마음이 커졌고, 미약하지만 그들에게 말이라도 힘을 줄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거기다 이젠 그들이 소중하다. 지켜야 할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것만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싹이 텄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나만은 그들에게 따스한 말로 아픈 사회로부터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고, 믿는다는 행동으로 그들이 좌절할 때 힘이 되리라 다짐한다.
호칭에 대한 책임은 여전하다. 하지만, 기꺼이 그들을 위해지겠다. 가까운 이들이니 이 글을 읽고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수 도 있겠다. 어쩌나, 난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고, 대 놓고 표현하진 않지만, 그대들 뒤에 내가 있기로 했으니.
글을 쓰며, 행동을 돌아본다. 이유를 알지 못했던 일들을 톺아본다. 이유를 찾고 생각을 굴리기도 하지만, 때때로 여전히 이유 없는 행동을 찾기도 한다. 아직도 난 나를 모른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날 알아간다. 나도 모르는 날 자주 만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