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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Sep 25. 2024

'어머니, 아버지, 저만 믿으세요.'

나도 그들의 슈퍼맨이 되고 싶다.

'어머니, 아버지 저만 믿으세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어머니, 아버지, 저만 믿으세요.'


  하고 싶다는 의미는 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일러준다. 문장은 여러 모양이 된다.


  '어머니, 하고 싶은 거 하세요. 돈 걱정은 마시고요.'

  '아버지, 뭐가 걱정이세요. 부족한 부분은 제가 채워 볼게요. 해보세요.'

  '어머니, 버스 기다리는 거 힘들지? 작지만 차 한 대 마련해 볼게요.'

  '아버지, 저 시간 여유 있어요. 한 번 해볼까요?'


  해드리고 싶지만 현실이 암담하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턱 하고 막혀 나오지 않는다. 숨겨둔 마음에서만 뱅뱅 돈다. 아릿해지는 강도가 커질 때가 있는데, 옛날 생각이 날 때다.


  울먹이며 "엄마"하고 부르면 지체 없이 달려와 해결해 주시던 어머니.

  답답한 얼굴로 "아버지"하고 부르면 더 긴 말 하지 않아도 수습해 주시던 아버지.

  받기만 했다. 이제는 마땅해 돌려 드려야 하지만 못하고 있다. 이제 내 도움이 필요할 정도의 나이에 들어선 부모님. 행여나 내가 걱정할까, 부담이 될까 "아들"이라는 말도 맘껏 부르지 못한다. 전화 한 통화도 용기를 차곡차곡 쌓아야 할 수 있는 부모님 생각을 짚어낸다.


  능력과 목표의 차이는 선택을 강요한다. 능력을 키워낼 것인가, 목표를 깎아 낼 것인가. 돈 버는 일에는 잼병인지 시간이 걸리는 일인지, 쉽지 않다. 부모는 자식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르니 조급해질 뿐이다. 그럼 부모님에게 받은 것들을 잊고 살면 되지만, 선택하지 못한다.


  한참을 생각하다, 내가 겨우 할 수 있는 건 그저 전화를 하는 일뿐이다. 식사는 하셨는지, 오늘 버스를 기다리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몸은 괜찮으신지, 여쭙는 게 겨우 내가 하는 일일 뿐이다. 난 잘 있고, 난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마친다. 최소한 걱정을 줄 수 없으니.


  매일을 생각한다. 부모님에게 받은 많은 은혜를. 갚진 못하더라도, 말 한마디 더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며. 큰 일을 하지 못하더라고, 언젠가 기회가 오리라 믿으며 오늘도 전화를 건다. 당신 덕분에 난 여기서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 걱정할 것 없이 잘 살고 있다는 안도를 선물이라 생각하며 포장한다. 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용기 내 겨우내 짜낸다.


  "뭐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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