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의 나는 회계사가 되고 싶었다.
아니지.. 경영학과에 진학한 그때 당시의 나는
회계사라는 직업이 왠지 날 성공으로 이끌어 줄
윌리웡카의 골든티켓에 가까워 보였다.
신촌과 종로에 있는 학원을 다녔다.
아침부터 밤까지 학원에 있는 무채색 일상의 반복이었고
점심과 저녁은 어머니가 주신 하루치 용돈으로 해결했다.
먹는 메뉴는 학식, 김밥천국, 고시식당 등 대체적으로 늘 비슷했으니
그날의 식비가 내 자유의 한도였다.
밤 11시 30분.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진 않았지만
신촌 뒷골목의 온도는 싸늘했다.
그냥 여느 때처럼 자습을 마치고 학원을 나서다
근처에서 알바를 끝낸 동네 동생을 만난다.
인사보다 앞서는, 전자담배를 입에 머금은 듯한 하얀 입김.
야식이 먹고 싶던 야심한 시간,
반가운 만남과 시간과 날씨가 기가 막히게 정렬된 콜라보는 우리의 발걸음을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하게 했다.
등대처럼 불을 밝히고 있던 그곳.
기나긴 고심 끝에
컵라면 하나씩을 집어 들고는 서로를 쳐다본다.
말은 없지만 표정은 전해진다
"너 돈 있지?"
"형 돈 있죠?"
돈이 다 떨어져 자연스레 서로에게 빌붙으려던 눈치작전은 당연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
합심하여 가방과 주머니를 탈탈 털어 동전을 모으니
육개장 컵라면을 딱 하나 살 수 있는 돈이 나왔다.
편의점 안엔 먹을 자리도 없어서
우리는 뜨거운 물에 젓가락 두 개를 받아 들고
신촌 뒷골목 계단에 나란히 앉는다.
... 그래도 내가 형이지 않는가?
"너 먼저 먹어라 그동안 내가 담배를 피울게. 그리고 내가 먹는 동안엔 네가 담배를 피워."
> "양조절 못할 것 같은데 그냥 한 젓가락씩 번갈아가면서 먹죠?"
우답 현문
양조절 못할 것 같다는 말은 무서웠다.
국물도 한 모금씩 번갈아가며 마시다 보니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동생에게 말했다.
“성공하자 우리"
성공하면 걸어오는 길에 있던
토스트 맛있다고 소문난 할머니네 포장마차에서
토스트며 어묵이며 그냥 다 먹자고 했다.
그때 내가 말한 성공은 무엇이었을까?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고급 외제차와 한강이 보이는 집?
명품과 해외여행?
이 비슷한 장면들 사이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나의 성공'을 상상했다기보단 남들이 성공이라 부르는 장면을 빌려와
그게 내 꿈인 척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누군가 "저 꼭대기에 올라보니 경치가 끝내주더라!"하니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는지,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는지는 따지지도 않은 채
앞사람의 뒤통수를 보며 일단 줄부터 섰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보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것들을 얼마나 빨리 손에 넣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줄에 끼어드는 순간부터는 속도전이 시작됐다.
이제 나는 몇 계단 올라왔는지,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올라갔는지,
나와 같이 출발한 누군가가 나보다 더 높게 올라간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배 아파하며
성공은 비교표가 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점점 흐려진다.
나를 찾아가는 질문은 생각보다 거창한 내용이 아니었다.
“오늘 어떤 얼굴로 하루를 끝내고 싶은가”,
"내 인생 마지막 문장은 어떤 한 줄로 남겨지길 바라는가?"
이 사소한 질문들에
하루하루 서툴게나마 답을 내리다 보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의 우리는 토스트도 어묵도 양껏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돈은 벌었지만
이제 그 자리엔 할머니네 포장마차가 없다.
나는 가끔 그 겨울밤을 반추한다.
추웠고 가난했던 겨울밤. 그치만 컵라면 하나를 나눠 먹으면서도 기어이 웃음을 지켜낸 그 밤을.
그날의 컵라면 국물보다 뜨거운 성공이, 내 인생에 또 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