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뒤의 난 어떤 모습일까?

by 뭇별


장래희망 : 치과의사

훗날 미적분이 싫어 일말의 고민 없이 문과로 진학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란에는 늘 저렇게 적었다.


어린 나이에 받아야 했던 과잉치 수술.

그 피 말리는 현장에서 만난 의사 선생님이 유난히 다정하고 멋져 보였던 잔상 탓에.


수술 전에 맞을 마취 주사는 크고 아파 보였다. 무서웠다.

애초에 주사를 엉덩이도, 팔도 아닌

잇몸에 맞는다는 사실이 그때의 나에겐

말도 안 되는 일을 넘어 그냥 있을 수 없는 일.


주사를 놓기 전 선생님이 말했다.

“이거 맞으면요, 누가 와서 때려도 안 아파요.

세상에서 제일 센 사람이 되는 거예요.”


'말도 안 되죠 사람을 무슨 바보로 아나 ㅋㅋ'

하고 어린 시절의 나에게 고개를 돌리니

그는 ‘세상에서 제일 세진다’는 무논리에 이미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 기가 막힌 거짓말에 매료된 탓인지,

나의 장래희망 란은 한동안 치과의사의 차지였던 것. 어떤 날은 2순위, 3순위에 대통령을 슬쩍 끼워넣기도 해보며.


이렇듯 우리는 의사, 선생님, 대통령, 회사원, 축구선수, 연예인, 화가, 문방구 주인 등 아주 이른 나이부터 수많은 ‘미래의 나’를 그려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장래희망’이라는 칸에 직업부터 적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아직 오지 않은 나를 상상해 보는 연습을 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렇게 우리는 어린 날부터 미래를 그린다.

장래희망을 채우며 ‘언젠가’를 그리고

진로상담을 하며 ‘나중에’를 상상한다.


성인이 되면 그 상상은 보다 정교해진다.

어떤 집에 살지, 결혼은 언제 하는 게 좋을지,

어떤 일을 해야 안정적 일지, 어떤 삶이 잘 사는 삶인지,

몇 년 뒤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까지.


우리는 그렇게 아직 오지 않은 날들로 하나의 커다란 설계도를 그려가며

마음의 방을 가득 채운다.


그런데 이 미래라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정작 방 한가운데 서 있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은

나중에 답장하려 미뤄둔 카톡처럼 여길 때가 많다.


명상 음악을 켜고 ‘나는 왜 사는가’를 들여다보려는 순간,

옆자리에서 건네진 작은 한마디에

펜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

방금의 고요는 얇은 얼음 위 균열처럼 깨져나간다.


미래의 성공을 위해 집중하던 중

아내나 남편이 말을 걸면

그것 때문에 마치 설계도의 선이 크게 삐뚤어진 것 같아 불쑥 화가 치밀기도 한다.

진지하게 한 가지 물어보자.

정말 그것 때문에 삐뚤어졌을까?


참~이상한 일이다.

머나먼 꿈을 위해서는 수백 가지 변수를 촘촘히 대비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마음은 너무 확실해서일까?

유독 거칠게 다룬다.


미래의 집을 그릴 때는 창문 크기 하나에도 완벽을 기하려 하면서

그 집의 온기를 함께 채워갈 내 옆에 있는 사람의 감정은 쉽게 놓친다.


그러고는 하루가 흐트러진 채로 밤을 맞는다.
정작 우리가 ‘잘 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가장 먼저 놓친 채로.



잘 산다는 것.

그게 뭔지 가끔 헷갈린다.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잘 산다는 것은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 그리고 그것의 성공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그 치밀한 설계도 위로 다정함이란 발자국을 마구 찍어대며 웃는 일에 더 가까이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모두 먼 미래를 꿈꾸지만,

그래서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평화를 담보 잡히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지만,

사실 삶은 오늘의 기분, 말투, 표정, 그리고 함께 있는 사람의 숨소리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5년 뒤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면,

오늘 저녁 식탁 앞에서 내가 짓고 있는 표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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