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조건이 아니면 실패한 인생이야?

기어코, 꼿꼿이, 기꺼이

by 뭇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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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설악산 정상 등반에 성공했다.

평소 일주일 5회, 30분씩 5km/h로 꾸준히 걸었던 운동 덕분이었을까?
숨이 차오르는 고통을 견디며 한 발 한 발 내디딘 끝에,
나는 무려 15분 만에 설악산 권금성 꼭대기의 공기를 마시는 기록을 세웠다.

도움을 약간 받았다.

케이블카의.
케이블카 5분, 도보 10분.
내가 두 배 더 걸었으니 자력 등반이다.

그렇게 뻔뻔한 기분과 함께 도착한 정상엔
멋진 돌산(?)과 나름대로 탁 트인 전경이 나를 반겼고
이를 질투하듯 강풍이 몰아쳤다.


다만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눈앞의 풍경은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압도적인 대자연의 풍경을 기대했지만 개인적으로 시야가 약간은 막힌듯한 느낌.

녹색이 짙은 여름이나 단풍이 흐드러진 가을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다.
그러나 눈이 녹은 늦겨울 산의 풍경은 나름대로 단단한 멋은 있었으나

화려한 풍경을 원한 여행자의 눈에 약간은 아쉬워 보인다.


언행 불일치

풍경이 아쉬웠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많은 사진을 찍고

눈앞에 겹겹이 쌓인 봉우리, 그 속에 고목들과 바위, 흙을 눈에 담고
내려가는 케이블카에 오른다.

케이블카 유리창 너머로 멀어지는 풍경을 눈에 담아 가며 휴대폰 저장공간도 채우던 찰나
바로 앞에 있어 보이지 않았던

척박한 돌산 봉우리 끝에 시선이 멈춘다.
나무가 없었다면 틈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거친 돌산에
작은 나무 몇 그루가 뿌리를 박고 서있다.

커다란 위용을 자랑하는 우람한 나무들과는 다르고
"대체 뿌리는 어디에 어떻게 박은 거지?" 싶을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 작은 나무들은 꼿꼿이 고개를 들며 강풍에 맞서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찡하기도, 늠름하기도 해 위로가 된다.


위로


정상에서의 커다란 나무에서도 받지 못한 그 위로가
시선의 변두리에 박힌 이 작디작은 나무에게서 울컥하고 전해진다.

양지바른 곳, 해가 잘 드는 곳, 영양분이 풍부한 땅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존재감을 뽐내는 나무들이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멋진 나무의 모습, 그 주인공들.
어린 시절부터 그리던 나무 그림은 꼭 이런 나무를 닮았다.
반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곳에서도 기어이 뿌리를 박고 꼿꼿이 고개를 들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하는 나무도 있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쁘고, 멋지고 볼품없고 이전에
세상 모든 것엔 다 각자의 존재 이유가 분명해 보이는 광경.


그 작은 거인은 내게 이렇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기꺼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

그 시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절경이라고.

정상에서 그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내려와 제일 많이 들여다본 건 그 돌 틈 나무 사진이다.
사진 속 주인공을 이곳에 옮겨 심어 본다.

그 강한 위로가 닿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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