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또 답지 베꼈지?"
수학 문제를 풀기 싫어 숙제 중 한두 페이지 정도는 해설지를 보고 컨닝을 하곤 했다. 꽤 자주.
문제 밑에 답만 덩그러니 적혀 있으면 저 컨닝했어요! 뒤에 답지 봤어요! 광고하는 것 같으니
문제마다 적당히 헤맨 흔적은 필수. 상습범.
계산한(척) 흔적, 지우개로 지워 고민한 흔적,
잘못 쓴 수식을 찍찍 연필로 그은 흔적까지.
매번 진심을 담아 꽤 정교하게 진행된 컨닝은
확률이 무려 9할이나 되었다.
엄마한테 걸린 확률.
일 할은 그냥 봐준 게 아닌가 싶다.
어떻게 매번 알아채는지,
매번 혼나면서 왜 이번엔 진짜 안 걸릴 거라 여겼었는지.
수학은 열심히 고민하는 과정에서 실력이 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난 고등학교 때도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만나면 지체하지 않고 답지를 읽었다.
무조건 반사. 파블로프의 개.
수학 문제 너머에 처음 만나는, 어려운 삶의 문제들.
그 문제가 내 삶에서 결정적인, 혹은 덩어리가 좀 크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일단 멈춘다.
멈췄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쫀거다.
그러고는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동원, 유튜브, 블로그, 책, AI까지 활용해
내가 찾을 수 있는 세상의 모든 답안지를 소환해 정보를 얻어낸다.
그렇게 '쫄았다.' '무섭다.' '남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가 '철저한 준비'라는 나름대로 괜찮은 포장지로 감싸진다.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행동을 시작하고
좀 진행이 되나~ 싶을 때쯤, 어김없이 불쑥 찾아오는 이 생각.
나 잘하고 있는 거 맞나?
분명 공부하고 계획한 대로 하고 있는데도 불안이 앞선다.
이 내용이 확실한가?, "혹시 계획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닐까?"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점검을 시작한다.
그렇게 검색의 굴레에 갇힌다.
그러다 보면 더 간절한 마음으로 더 확실한 답안지를 바란다.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내 앞에 나타나
"임마, 네가 하는 게 정답이야. 잘 하고 있으니 그대로만 해."라며 등 한 번 툭 쳐주는 답지.
아니면 "완전히 잘못됐으니 이렇게 해봐." 하는 답지..
어려운 수학 문제 앞에서 '그냥 빨리 답안지나 봤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과 비스름~한데
삶에서 '답안지 같은 인생 강사'는 만나기가 어려워 보인다.
만난다 해도 인생 강사의 정답이지 나의 정답은 아닐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길을 알려줄 순 있으나 나의 덜컹거림까지 대신 느껴주진 못할 테니..
난 오늘도 수학 문제를 풀던 어린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사는 것 같아 보인다.
문제 옆에 적당히 헤맨 흔적이 검색창에 남아있고
찍찍 그어가며 만든 흔적이 메모장에 남아있는
그 정교한 컨닝의 마음으로.
'나 잘하고 있는 거 맞나?' 하는 물음을 수십 번 건네며
다시 검색창을 기웃거리는 이 방황들은
사실은 정답지를 몰래 훔쳐보고 싶어 안달 난 쫄보의 발버둥이다.
여전히 확신은 없다. 잘 모르겠다.
다만 오늘도 찍찍 그어가며
남의 답안지에는 없는 지저분한 낙서들을 늘려갈 뿐이다.
혹시나 낙서 속에서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섞인 의심도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