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규격의 수영장 20개를 가득 채운 물에
'게오스민'을 단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인간은 단번에 알아챈다
상어는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바다에 떨어진 한 방울의 피 냄새를 맡고
개는 주인의 감정까지 읽을 수 있을만큼 예민한 코를 가졌다고 한다.
그들에 비하면 인간의 후각은 볼품없는 수준일테다.
그러나 특정 영역에서만큼은 상어나 개는 비교도 되지 않을, 초능력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릴 압도적인 후각을 자랑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물 냄새.'
'비 오기 직전의 흙 냄새' 라 불리는 성분,
게오스민.
인간의 후각은 이 게오스민을 찾아내는 데 있어 가히 초월적이다.
과학적 수치로 환산하면 1조 분의 1(1ppt)이다.
상어가 피 냄새를 감지하는 농도가 100만 분의 1(1ppm) 수준이라니
인간은 상어보다 무려 100만 배 더 예민하게 물 냄새를 추적하는 셈이다.
이 예민함은 생존을 위한 기록이란다.
수 만년 전, 인류에게 물은 곧 생명이였고
그 물 한방울을 찾기 위한 간절한 능력이 우리에게 박혀있는 것일테다.
내가 보기에 인류에겐
압도적인 후각을 자랑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만만함의 냄새.
협업을 하다 보면 다양한 고객사 직원들과 만나게 된다.
짧게는 두 세달, 길게는 6개월 간 같은 공간에서 일하게 될 때도 있다.
이렇게 섞여 같이 일하다보면
다소 나이가 어린 고객사 직원들을 대하는 어떤 '어른'들의 일관적인 태도가 보인다.
보고있으면 씁쓸해질 때가 많다.
거래처 직원 A와 B.
둘 다
서른 한살
남자
미혼
잘 웃는 만큼 표정은 밝고 말투도 상냥하다.
둘은 입사한지 얼마 안된 입사 동기로 내가 느끼기엔 업무 능력도 비슷해 보인다.
신입인 만큼 적극적이고 활발하기까지 하다.
소위 '우리 회사로 왔으면 좋겠다.' 싶은 에이스들.
그런데 일주일 간의 탐색기간이 종료되면 항상 묘한 일이 벌어진다.
나보다 나이 많은 상사들이
A에겐 여전히 존댓말을, B에겐 은근슬쩍 반말을 섞기 시작한다.
맡은 것이다. 만만함의 냄새를.
그들의 차이는 웃음의 빈도, 말과 행동의 무게에 있어 보인다.
모두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B는 상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묻지 않은 말에도 먼저 웃으며 대답했고, 필요 이상의 반응을 보인다.
A는 정중하지만 필요한 말 외엔 침묵을 지켰다.
연신 허리를 숙이며 대화하는 B와는 달리 정중한 한번의 인사.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문득 거울 속의 내가 비친다.
나 역시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비굴해졌던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굽신거리며 안부를 묻던 시간들.
집에 와서 생각해보면 다소 무례한 농담이었던 말들에
같이 허허 웃었던 시간.
그건 다정함이 아니라 미움받을까 두려워 쳐두었던
만만함 이란 이름의 방어막이었다.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 앞에서도 쫄지 않기로 결심한 내가
고작 이 얄팍한 시선들 앞에서 다정함을 표방해 만만해 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굽신거리지 않아도, 내 몫을 챙기면서도 당당하게 다정할 수 있다.
꼿꼿이 고개를 들고 있는 우리의 다정함이 만만함이라는 불순물에 섞이지 않기를 바란다.」
는 말은 속으로 삼키고
거래처 직원 B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