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타인의 다정한 체포

by 뭇별
도를 아십니까????????


2016년, 약간 늦은 나이에 전역 후 첫 학기를 마친 뒤, 씩씩하게 알바를 시작했다.

나름 내가 살던 동네에서 가장 번화한 역 근처에 있던 카페 알바.

한가한 시간대엔 당시 레시피보다 더 맛있는 뭇별식 카페모카를 제조해가며 제법 재밌게 일했던 기억이 있다.


딱 한가지 피곤했던 게 있었는데 당시 매일같이 출현하던 '도를 아십니까' 무리들.


지각 위기에 처해 종종걸음을 걸으며 출근하던 어느 겨울 날.

어김없이 도쟁이 둘이 짝을 지어 내 앞길을 막는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앞길을 막아버린 적은 없었는데.

짜증 섞인 얼굴로 쳐다보니 그들이 묻는다.

"잠시만요 선생님. 올해가 어떤 해인지 아세요?"

혈기왕성했던 20대 중반의 나는 있는 그대로 대답한다.


병신년이요.


2016년은 실제로 병신년(丙申年)이었다.

벙찐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총총대며 출근했다.


언제가부터 일상에서 낯선 이가 먼저 말을 걸어 온다는 건

대체적으로 경계해야 할 일, 피곤한 일이 되었다.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불순한 의도들.


나 역시 길거리에서 그런 낌새가 보이면

얼굴도 보지 않고 않고

먼저 걸어오는 말은 그대로 무시한 채 빠르게 지나간다.


그들도 사연은 있겠으나

나의 다정함이 그곳까지 닿을만큼 한가롭진 않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시선은 스마트폰에 고정한 채

타인이라는 소음을 차단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 철벽 같은 경계가 의미없이 무너지는 곳이 있다.


여행지.


여행지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머리 위로 핸드폰을 치켜들고 있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시간을 체포하겠다는 것.

이 눈부신 순간을 그냥 보내기 아쉬우니 어떻게든 그 찬란함을 붙잡고 싶은 간절한 몸짓일테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여 순간을 잡다보면

종종 휴대폰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을 본다.


어르신들이나 가족 단위 여행객, 셀카봉을 챙기지 않은 커플들.

‘함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누군가 찍어주길 바라는 눈치로 주위를 살피곤 한다.

누가봐도 티가 난다. '누구한테 찍어달라고 하지?'가 쓰여있는 표정.

그 표정을 포착하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건넨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아무에게나 들이대는 푼수떼기는 아니지만

그 두리번거림을 발견하면 나의 다정함이 마구 꿈틀댄다.


이 말은 묘한 힘이 있다.

방금까지 완벽한 타인이었던 그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웃는 얼굴로 변한다.

"아유, 감사하죠!" 하고 평생을 추억할만한 찰나가 담긴 휴대폰을 건네받는다.


나는 그 찰나에 예우를 담아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그들의 발을 사진 밑부분과 얼추 비슷하게 수평을 맞춘다.

(다리가 길어보여야 그 사진을 더 오래 볼 것이라는 나 중심적 사고.)


그렇게 나름 정성을 들여 사진을 찍는다.

자 찍습니다~ 아버님 쫌만 더 붙으시고~ 하나 둘 셋!

한장 더요~ 하나 둘 셋!

찰칵


나는 최근 들어 사진에 진심이 되었다.

멋들어진 배경을 전문가스럽게 설정을 조절하며 찍는 유형의 진심이 아니라

내 하루가 너무 소중해서 그 기록을 남기겠다는 진심에 가깝다.


하루가 소중해서 라고 표현했지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질문 앞에 있던 시기,

그 질문에 잠식되지 않고 웃고 있던 사진에 큰 위로를 받은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다정이 여행지에서 두리번거림을 발견하면 꿈틀대는 이유 역시

그들도 일상을 지내다 문득 꺼내 본 사진 한 장이

다시 웃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주길 바라는 오지랖일테다.


이제는 이웃과 인사 나누는 것조차 어색해진 삭막한 세상이라지만

여행지에서의 "사진 찍어드릴까요?" 는 여전히 다정한 호의라는게 참 반갑다.


사진을 찍어주고 휴대폰을 돌려줄 때 "감사합니다." 와 더불어

가끔 돌아오는 "복 받으실 거예요." 하는 한마디.


나의 다정은 그분의 다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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