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다정함에 목매지 않기로 했다.

by 뭇별



“진짜 형 왜 이렇게 자아가 비대해? 형 뭐 돼요?”


한 때 열풍이었던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한 장면.

한창 감정을 이입해가며 시청하던 중,

극 중 인사팀장의 이 대사에서 멈칫하게 된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형통할 것을. 아무것도 아닌 네가 대체 왜 커다란 존재인 것 마냥 오만하게 행동하느냐."는 일침.


드라마가 종영된 지 몇 달이 지났음에도

이 대사가 가시처럼 걸려있었다.

찔리기도, 납득되기도, 납득되니 더 아프게 찔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한때는 자아가 이따만큼 부풀어 있던 시절을 지나왔으니까.


지난겨울, 감기에 걸린 조카가

기어이 할아버지 댁에 가서 놀아야겠다고 떼를 쓴다.


“안 돼, 너 감기 걸렸잖아.”


그러자 녀석은 뭐가 문제냐는 듯이 말한다.



“약 들고 가면 되잖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논리는 항상 당당하다.


내 몸의 병은 약이 해결해 줄 테니,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옮을 가능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그 논리.

어이없으면서도 묘하게 부럽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앞 구르기만 해도 모든 어른이 박수를 쳐주고

온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야 하며

내 욕구가 가장 앞에 서야 하는 시절


사랑받고 자란 아이의 자아는 그렇게 크고 단단하다.


나는 안 그랬겠는가.

조금만 억울해도 세상이 나에게 불공평하다고 느꼈고,

날 저평가하면 나를 몰라보는 저 사람이 부족한 거라 말했고

조금만 잘 풀리면 역시 나는 특별한 존재라며 자아를 부풀렸다.


그러다 사회에 던져진다.

이곳에 내가 알던 자비로운 시나리오는 없다.

깎이고, 밀리고,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내 가치를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일들을 겪는다.

분명 어린 시절 내가 짠 시나리오대로라면 지금 슈퍼카를 타고 박수갈채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잠재력이 아닌 숫자와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현실 앞에 침묵한다.


"음, 뭐. 모든 사람들이 나한테 특별대우를 해줄 필요는 없지."


비대한 자아가 조금 깎여 나간다.


그러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시련 앞에 서게 되는 날, 질문이 튀어나온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어떻게 세상이 나한테 이럴 수 있는가.

이 질문 속에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불행은 어울리지 않는다.’

는 생각이 깔려있는지도 모르겠다.

비대한 자아의 마지막 항변.


인정해야 했다.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우리는 동시에

세상 전체의 입장에선 찰나를 지나는 수 많은 이름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세상이 나에게만 특별히 친절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고 억울함이 감쪽같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세상의 다정함에 목매지는 않기로 했다.



그 자리에 낯선 질문 하나가 들어찼다.


"자, 그럼 나는 이제 누구로 살 것인가?"



이 질문을 품고 품다 보니 나태주 시인의 짧은 시 한 구절을 만난다.


마당을 쓸었더니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고,

꽃 한 송이 피었더니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다는 고백.


비대해진 자아를 깎아내며 내가 도달한 곳이

'아무것도 아닌 초라한 점'인 줄 알았는데,

나태주 시인은 그곳이 바로 '지구의 한 모퉁이'라고 말해준다.


나는 이 지구 한 모퉁이를 조금 더 따뜻하게 바꿀 수 있다는 것.

세상의 다정에 서운해할 에너지를 아껴

내가 먼저 세상에 다정을 건네기로 한다.


비대했던 자아가 깎여나가고 남은

그 옹글고 작은 점 위로

먼저 꽃을 피워내는 봄이 되기로 한다.



형 뭐 돼요?

어 나 이제 뭐 돼 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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