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
꼬꼬마 초딩 시절.
담임 선생님이 준비한 속담 퀴즈 중 하나였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이게 당최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종로에서 왜 뺨을 맞은 것이며 왜 한강에서 눈을 흘기는 것인지.
그전에 흘기다는 표현은 무엇인지.
이 속담을 맞춘 친구는 이걸 어떻게 알고있는 건지마저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이 속담은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전형적인 현대 사회 메뉴얼에 가까워 보인다.
회사에서, 외부에서 일하고 생활하다 보면
'오늘 뭐야? 몰래카메라야?' 싶은 날이 있다.
꼬이는 업무, 상사의 말도 안되는 변덕, 이해되지 않는 갑질이 밀려오면
"너무 하신거 아닙니까!" 하며 당장이라도 들이받거나
영화에서처럼 책상 위 물건들을 팔로 '촤라락!' 하며 싹 밀어 버리고 싶은 순간이 온다.
그러나 사회인, 30대 중반, 가장이라는 가면은 무거우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속에서는 불이 나지만 "네 알겠습니다" 하고 참아낸다.
난 지혜롭고 인내심 강한 '어른'이니까.
진짜 문제는 속에서 난 불이 꺼지지 않은 상태로 집에 도착했을 때 터진다.
평소라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일.
이를테면 (내가 제자리에 꽂지 않은) 책이 정리가 안 돼있거나,
양말 한 짝(내가 어제 벗어둔)이 안방에 굴러다니는 것 같은
그 시덥지 않은 일.
그것들이 눈에 거슬리며 목소리도 말투도 차가워진다.
"아니, 이게 왜 아직 정리가 안 돼있어?"
대부분 나보다 현명한 아내는 "알겠어 미안해~ 오늘 무슨 일 있었어?" 하며 손을 내미는데
'인내심 강한 어른이'였던 그것은 그 호의가 또 미안해 또 틱틱댄다.
낮에 참아낸 그 '지혜로운 사회인의 인내'가
퇴근 후에는 '옹졸한 남편의 히스테리'로 변질되어
저녁의 식탁 위로 쏟아지는 꼴.
어설프게 참는다는 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독으로 고이는 것 같았다.
용기 있게 그 자리에서 풀어내지 못한 감정들은
가장 소중하기에 가장 만만한 곳에서, 가장 비겁한 방식으로 터져 나온다.
차라리 그때 가면을 잠깐 내려놨더라면 어땠을까.
그 무례한 인간에게 "이건 좀 아니죠"라고 딱 부러지게 말했거나,
여유 있게 웃으며 한방 먹일만한 기가 막힌 멘트를 준비했다거나
아니면 퇴근길에 차에서 혼자 소리라도 질러 그 감정을 퇴근길에 버리고 왔어야 했다.
애꿎은 양말에 화를 내고 나서야 나는 오늘의 내가 또 얼마나 비겁했는지 깨닫는다.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 내 마음이 엉뚱한 쪽으로 터지지 않게 제대로 잘 버리는 게 진짜 실력인 것을
오늘도 후회하며 배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던 어린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줘야겠다.
"응 그거 27년 뒤 니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