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단어 없이, 행복을 표현해 보세요."
책과 글을 소개하는 SNS 계정을 눈팅하다보면 이런 종류의 질문을 꽤 자주 본다.
정답 없는 과제를 받아 들고 내 맘에 쏙 드는 단어 혹은 문장을 고민하는 과정에 머리가 복잡해지다 보면
마치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같은.. 라이터스 하이(Writer's High)가 오는 듯할 때도 있다.
누군가의 창의적인 댓글에 감탄과 부러움을 보내다 문득 나도 질문을 만들어본다.
"설레다는 단어 없이 설렘을 표현해 보세요."
이 질문을 받으면 누군가는 벚꽃이나 분홍, 첫사랑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깊이 고민해보면 기억 속이라 햇살이 더 따듯한 그 날, 첫 출근날의 각잡힌 셔츠,
고백 직전의 숨막히는 떨림, 5분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소개팅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주저 없이 이렇게 적기로 한다.
스물
고작 두 글자 짜리 한 단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그 뜻을 묻는다면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수천 수만 가지의 서로 다른 설렘이 쏟아져 나올 테니까.
나의 아침은 1년 전의 것보단 조금 이르게 시작된다.
오전 6시.
눈이 떠짐과 동시에 새벽을 지탱하던 마음의 댐이 무너진 듯
수만 가지 생각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한때 나를 무너뜨렸던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이 남기고 간 지독한 습관 혹은 안도의 후유증이다.
나는 깨어나고, 생각들은 재운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루틴을 지켜내던 중
'학번'이라는 이름표를 단 생각 하나가 좀 만나자며 유난히 손을 높게 든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학번, 지금 대학생은 26학번이다. 난 10학번이었는데.
스물 하고 또 다른 스물에 가까운 세월이 한 번 더 겹쳐버렸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와..." 소리가 터져 나온다.
대학 입학식 날, 강당에는 발도 들이지 않고 친구들과 주변을 구경하며 놀던 일이 또렷이 기억나는데 시간은 어느새 이만큼이나 멀리 와있었다.
사진첩을 들춰 잊고 있던 조각들도 꺼내본다.
그러고 보니 나 스무 살 때 갤럭시 S가 처음 나왔었지.
아바타 1도 당시 첫 개봉이라 극장에서 봤었고
매장에서 알바를 하다 바지가 터져 친구에게 급히 바지를 받으며 진땀을 뺐던 날,
휴가 나와 짧은 머리를 가리려 빵모자를 눌러쓰고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일산 라페스타에서의 밤.
신촌 맥도날드에서 새벽에 먹었던 맥모닝
오늘의 커피를 주문하면 저렴한 값에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형의 조언을 달달 암기하고, 카페에 많이 다녀본 척, 능숙하게 주문했다가 (아직까지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에스프레소가 "짠" 하고 나타나 당황했던 서툴렀던 날의 데이트와
당시엔 목숨만큼 중요했던 밤샘 게임들까지.
그때의 고민은 지금보다 가벼웠을까?
어설픈 잘못과 부끄러운 흑역사만 빼면 모든 것이 아련한 기억이 되었다.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기에 그 시절은, 청춘은 이토록 설레는 이름이 되었나 보다.
어른들은 종종 젊은이들을 보며 말씀하신다.
“아이고, 좋을 때다. 부럽다. 이뻐.”
그 푸르른 젊음도 부럽겠지만, 실은 앞으로 만날 모든 일이 '처음'일 그들의 '새로움'이 부러운 것일 테다.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좋은 줄 알게 되는 이 반복되는 후회를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생각을 고쳐먹어 본다.
스물 하고도 16년을 더 살았으니, 어쩌면 나는 지금 '두 번째 스물'을 사는 중인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찾아올 '세 번째 스물'에 겪게 될 새로운 일들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지나간 스물을 그리워하느라 오늘이라는 가장 설레는 스물을 놓치고 싶지 않다.
훗날 세 번째 스물을 살아갈 나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오늘 나의 '두 번째 스물'에 기꺼이 설레는 마음을 내줄 작정이다.
오랜 친구를 만나면 난 습관처럼 이런 말을 건네곤 한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이제는 그 말 뒤에 꼭 한마디를 덧붙이려 한다.
“근데 지금도 좋~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