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뭐가 잘 어울릴 것 같아?
멋모르고 따라간 올리브영.
남자들은 립스틱 네 줄을 손등에 긋고 물어오는 그 물음 앞에서 알게 된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빨강이 있다는 것을.
빨간색과 이름 모를 빨간색들.
수많은 이름 모를 빨강 안에서 본인의 색을 찾아내는 이에게
"어차피 입술이 빨간색이니까 바르면 다 똑같을걸?" 하는 말은
"어차피 자동차 바퀴니까 어떤 휠을 껴도 똑같을걸?" 하는 말로 들릴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문장 하나를 두고 '은, 는, 이, 가, 을, 를'부터
태양, 햇살 한 줌, 봄볕, 윤슬, 따사로운, 창틀 모양으로 잘린 빛 사이에서 며칠을 머문다.
어떤 이가 보기엔 "음~ 비슷해!"라는 대답이 돌아올 법한 일들이
몰입한 당사자에겐 전체를 뒤흔들 중대한 기준이 된다.
그리고 이 몰입이 쌓여 작품 혹은 성과가 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디테일, 열정, 혹은 집념의 승리라 부르곤 한다.
몰입
주변의 것들을 걷어내고 하나를 깊게 파고드는 것.
마음의 렌즈를 쫙 하고 줌을 당겨 그 대상을 프레임 가득 채우는 일.
하지만 지나친 확대는 사진을 되려 흐리게 만드는 날이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이사님은 남들이 잘 생각해내지 못한 부분을 기가 막히게 캐치하는 능력이 있다.
추진력에 그 디테일이 더해지니 능력을 인정받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미세하게 틀어진 물건, 작은 실수를 발견할 때마다 사방으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왜 다들 이걸 못 보는 거야? 이걸로 놓치는 손님, 매출이 얼마인지는 생각 안 해봤어?"
"이거 하나가 다 정신상태인데 다들 어쩌려고 이러냐."
2년 3년,
시간이 흐르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간다.
"왜 다들 이걸 못 보는 거야?"
이와 비슷한 분노는 사실 생각보다 이곳저곳에서 자주 접하는데,
타인을 깎아내리며 본인을 높이는 우월감의 표현인지
정말 보지 못하는 타인이 안타까워하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나에겐 이런 외로운 비명으로 들린다.
"왜 나만 이 지옥 같은 디테일에 갇혀 있는 거야?"
우리는 몰입의 줌 렌즈 덕에
더 정교하게, 더 깊게, 더 멀리 갈 수 있다.
하지만 줌을 너무 당기다 보면
어느 순간 렌즈는 나를, 그리고 타인을 겨누는 조준경이 되기도 한다.
연애를 하면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힘들다는 말도 비슷한 뜻일지 모른다.
상대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더 고성능의 줌 렌즈를 가졌기 때문일 테다.
틀려선 안된다, 항상 꼼꼼히 봐야 한다.
'꼼꼼'과 '열심'이 나를 증명한다. 는 믿음으로
휴무를 반납하며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쉬어가며 일하던 때가 있었다.
감상에 젖는 태도는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고 믿었고
회사의 인정, 연봉 상승과 승진을 당연한 듯 쟁취하며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한 줄 알았던 나의 멘탈은
번아웃, 건강염려증, 우울감, 공황의 전조증상을 종합선물세트로 때려 맞는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 줌을 당겼다면,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서는 다시 줌을 밀어낼 줄도 알아야 했다.
그렇게 반강제로 줌을 밀어냈다.
처음에는 게으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어색했고,
이런 태도로 일을 해도 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자리엔
구멍 난 업무와 무기력한 내가 아니라
그냥 편안해진 내가 있었다.
내가 꽉 쥐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인생이라는 광활한 풍경 속의 작은 점 하나였음을 깨닫자,
주변을 돌볼 다정함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생긴다.
서점 베스트셀러 에세이 책꽂이 앞,
세 권의 책을 꺼낸 뒤 이건 이래서 좋고 이건 저래서 아쉽다며 열을 올리는 내 곁에서,
아내는 휴대폰을 꺼내 방긋 웃으며 셀카를 찍더니 말한다.
"응~ 다 잘 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