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킬로미터
- 평균 페이스 5'30''
- 시간 27분 30초
SNS 스토리를 열어 엄지 손가락을 몇 번 까닥까닥거리다 보면
매일 만나는 러닝 앱 화면이다.
지인들이 몸소 땀 흘려 증명한 숫자를 보고 있으면
'이러다 우리 집도 역세권에 포함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긴다.
피드를 열면 세상엔 부지런한 사람들도 참 많아 보인다.
자기 계발, 독서, 영어 공부, 미라클 모닝, 갓생 루틴.
"대단하네 진짜"
그렇게 대단한 삶의 조각들이 모인 그곳을 나는 슬쩍 대단피드라 불러본다.
대단피드의 현황을 대변하듯
동네 호수공원은 늘 걷고 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퇴근 후 도서관에 가는 날은 주차만 성공해도 아주 럭키비키한 기분이 된다.
멋진 그들을 보고 있으면 궁금해진다.
저들은 어떤 마음으로 걷고, 뛰고, 읽고 있을까.
혹시 나처럼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떠밀리듯 나온 이도 있을까?
나야 가만히 있으면 하루를 버텨내기 어려운 지경까지 몰렸던 시절,
필사적으로 마음을 괜찮게 만들 거리를 찾다 등 떠밀려 시작한 게 걷기와 읽기였다.
자기 관리나 갓생이라기보단 생존 방식이자 전투였다.
그때처럼 절박한 얼굴로 살아가진 않는 지금,
생존과 전투라는 비장한 단어를 쓰기엔 다소 민망한 감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몸을 움직이는 건
반복하던 일들이 자연스레 삶의 일부가 되었고, 이로 인해 삶이 윤택해졌다는
전래동화스러운 엔딩이라기보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 뒷덜미를 붙들어
이 삶의 방식을 반강제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것에 가까울 테다.
반강제라 해도 사실 대단한게 없다.
글로 조금 포장하면
식후엔 일단 동네 한 바퀴를 걷는 것.
기분 좋으면 한 바퀴 더 걷는 것. 기분 나쁘면 다섯 바퀴 더 걷는 것.
여유가 있는 날엔 목욕탕에 가는 것.
이를 구석구석 잘 닦고 목표한 양의 물을 마시는 것.
기분과 상관없이 인사는 크게 하는 것.
책을 딱 몇 페이지라도 읽고, 마음속에 있는 글자들은 적어내는 것.
아파트 단지의 흔하디 흔한 나무가
봄이 되어서야 비로소 벚꽃나무임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 그것이 달리 보였다.
이름을 알아야 더 오래 기억하고 제대로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
너무 흔해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울 내 반강제적 삶에도 이름을 붙여본다.
'틈생'
거창하진 않지만 일상의 틈 사이로 기어이 해낸 나의 하루.
하루 24시간 중, 타인의 기대나 생업의 의무여서가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해 떼어놓은 이 '틈생'의 시간.
그 시간이 5km 완주나 영어 단어 50개 같은 거창한 기록이 아니어도 충분했다.
그냥 나를 제대로 대접했다는 그 감각이 중요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대단피드’는 당연히 멋지다.
하지만 남들은 몰라도 내 마음속에 소소하고 단단하게 쌓여가는 기록들.
나는 그런 기록들을 반 강제적으로, 그러니 꽤 성실하게 모으는 중이다.
그리고 이것을 소단피드라 부르며 혼자 뿌듯해하기로 했다.
이 피드에서 중요한 건 대단해지기 위한 한방이 아니라, 중단하지 않는 것일테다.
일단, 대학병원에서만 뺄 수 있다는 사랑니가 아프기 전에
오늘 밤에도 이를 조금 더 신경 써서 닦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