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눈물은 장소를 가려야 한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길거리나 회사 사무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은
그 장소로 적합하진 않아 보인다.
무너져가는 마음을 들키는 건 슬픔만큼 무서운 일일 테니.
온전한 나의 표정을 지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던 날.
당장 생각나는 장소는 딱 한 군데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자주 다니던 목욕탕에 도착해 구매한 9천 원짜리 입욕권.
그날의 입욕권이 나에겐 안무권(안전하게 무너질 권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탕 입구에서 번호표를 내밀고 락카 키를 받는다.
낡은 락카가 '철커덕' 하고 열린다.
넥타이를 풀며, 태연한 척 가다듬은 말투를 풀어헤친다.
셔츠를 벗어던지며, 괜찮은 척 지어둔 표정을 구겨 넣는다.
양말까지 벗어던지면 씩씩하던 걸음걸이도 길을 잃고 멈춘다.
마지막으로, 진동 소리가 새 나가지 않게 휴대폰을 옷가지 깊숙이 파묻는다.
이제 세상과 연결된 선은 모두 잘랐다.
락카 문을 닫는 순간, 오직 나와 생각만 남는다.
정수기 앞에서 찬물을 한 잔 들이켜고
미지근한 이벤트탕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안전하게 무너질 시간.
'정확히 무슨 상황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희망이 있는가'
또아리를 틀고있던 질문들이 미지근한 물속에서 고개를 든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점점 깊어간다.
어느새 옮겨간 온탕의 뜨거운 물이
꾹꾹 눌러둔 슬픔과 기어이 맞닿는 순간.
팽팽하게 버티던 마음이 '턱' 하고 무너져 내렸고
막혀 있던 것이 '컥' 하며 명치를 치고 올라온다.
그 틈으로 참았던 것이 왈칵하고 터져 나온다.
콸콸콸 쏟아지는 물소리가 그 소리를 덮는다.
누가 들을까 숨죽여 꺽꺽대던 소리가,
물소리를 확인하더니 이내 '엉엉'으로 바뀐다.
그날의 울음소리는 이 무식하게 고마운 물소리가 전부 삼켜버렸다.
목욕탕에선 어지간히 울지 않고는 티가 나지 않았다.
눈물이 무거우면 뜨겁다는 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숙여버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니면 물기 가득한 양손으로 얼굴을 쓱 쓸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소리는 탕 안의 소음에 섞여,
그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사람의 평범한 추임새가 된다.
그렇게 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을 쏟아낸다.
충분히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다시 '나'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다.
냉탕에 들어가 머리끝까지 몸을 담근다.
벌겋게 달아올랐던 머릿속이 서서히 식어간다.
다시 옷을 입고 찬물 한 잔을 들이켠다.
흘린 눈물만큼 몸무게가 줄었을 리는 없지만,
딱 그만큼 발걸음이 가볍다.
"안녕히 계세요!!"
어른도 가끔은 울어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