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보초 <- 소풍 가는 길

by 뭇별


다소 늦은 나이에 운전을 시작했다. 장롱면허. 도로 위의 시한폭탄(이었던 것).
불안함을 담보로 양보와 배려를 바라며 다이소에서 산 천 원짜리 초보운전 딱지를 2년째 붙이고 다닌다.


그사이 딱지는 많이도 맞았다.

비 맞고 눈 맞고 햇볕 맞고 바람맞고,

사계절 내내 맞기만 해서 그런지 붙어있긴 한데

색은 바래고 너덜거린다.

글자와 배경의 구분도 흐릿하다.


아직 난 초보인데
딱지는 늙어버렸다.


초보의 필수 조건인 인상 팍 쓰기를 먼저 충족하고,
네비와 전방을 번갈아 쳐다보며 운전을 하다 보면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아버지들은 어떻게 길을 찾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 아빠 차엔 항상 두꺼운 전국지도 책이 있었다.

길을 잃으면 갓길에 차를 세워 커다란 지도책을 펼치고,

이정표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고개를 내밀고,
창문을 열어 낯선 행인에게 "ㅇㅇ리 가려면 어디서 꺾어야 합니까?" 하고 길을 묻던 풍경들.
경로를 이탈하면 "어이쿠" 하는 탄식과 함께했을 그 시절의 고단함이 보고 자랐음에도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이야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하며 돌아 나오는 길도 친절하게 알려주니

목적지까지 헤매는 일이 많지 않지만
예전엔 목적지를 전혀 잘못 찾아가는 일도, 무진장 헤매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도로에서 아예 밥을 해먹기도 했다니 유튜브가 없으면 믿지 못할 이야기다.


그런 시절을 떠올리다 보면
우리네 인생은 옛날 운전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목적지는 어렴풋이 정해보는데 헤맨다.
내가 어디쯤 와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는 중인지 확실하지가 않다.
이 사람은 좌회전을 하라는데 인터넷은 우회전을 하란다. 어차피 다 연결돼 있으니 상관없다는 책도 있다.


그래서 어떤 날은 무지성 직진을 해보고
어떤 날은 이미 헤매봐서 아는 길이 나와 자신 있게 악셀을 밟는다.

갈림길이 너무 많아지면 속도를 줄이고 다시 여기저기 묻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도착한 곳은
목적지였을 수도 있고 목적지를 가장한 경유지였을 수도,

혹은 굽이 굽이 돌다 보니 만난 전혀 다른 장소일 수도 있다.
도착지가 달라졌다 해도
힘들었고, 어려웠고, 그래서 헤맸고,
왼쪽으로 갈걸 하는 후회도 묻은 '왔던 길'을 떠올리면
운전석엔 분명히 내가 앉아있었으니 ‘참 열심히 잘 왔다’ 싶어 대견하기도 하다.


삶의 도착지에서 “멋진 소풍이었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의 인생에도 후회는 남아 있을 것이다.
종종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 치기 어린 발언도 해보지만 이내 후회 없는 삶을 말하는 건 '네비 없이 달리며 길을 헷갈리지 않겠다'는 말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목적지가 어딘지, 언제 도착하는지 보단
운전하는 방식을 더 생각한다.


노래를 틀고 핸들을 두드려가며, 창문도 열고 꽃내음을 맡으려 크게 들이킨 들숨에 딸려온 소똥 냄새에 몸서리도 쳐보고, 분홍의 스침을 얼른 눈에 담고, 연두와 초록을 뜨겁게 마주하고, 빨강과 노랑의 화음을 지나 하양이 주는 텅 빔과 그리움을 새롭게 받아들이면서.
옆자리에 태운 사람과 농담도 주고받으며 수많은 당연한 순간들을 반갑게 맞이하려 애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만날 도착지에 내려 멋지게 차 문을 잠글 때
"좋았어! 기가 막히게 완벽한 주행이었어!" 하고 자뻑에 빠질 자신은 없지만
"길은 좀 헤맸는데 사람들이랑 웃느라 지루하진 않았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거면 충분히 멋진 운전이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엄마는 왜 맨날 괜찮다고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