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생일이라는 말이 주는 '신남'과 '설렘' 보다
당시 겪던 우울한 감정들이 컸는지
그냥 조용히 보내고 싶었던 생일날이었다.
카톡의 생일 알림도 괜히 부담스러웠던 날.
매번 생일을 챙겨주는 회사에도 최대한 알리지 않고 조용히 업무를 마쳤고
아내와 간단히 밥을 먹고
근처 호수 공원을 천천히 걷고
노을 지는 배경을 바탕으로 사진을 두어 장 남겼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장인어른께 전화가 왔다. “그래도 생일인데 케이크는 잘라야지.”
나보다 신난 아내는 가는 길에 폭죽도 준비하잔다.
“뭐 하러 폭죽까지 해.” 나의 본격적인 투덜거림이 시작된다.
그냥 조용~히 초만 불고 끝내자고.
굳이 유난 떨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신신당부하고 투덜대며 도착한 집.
하지만 현관문을 열자마자 내가 그토록 밀어내려던 '다정한 유난'이 나를 반긴다.
식탁엔 이미 케이크가 놓여 있고, 조카가 터뜨린 '펑' 소리에 맞춰
다들 '어색반 신남반'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유난 떨 필요 없다고 투덜거리던 내 마음이 죄송해질 만큼
집 안은 이미 완벽하게 '나의 생일'을 준비해 주었다.
집에 돌아와 장모님이 보내주신 생일 파티 영상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화면 속에는 웃는 모습이 웃길정도로
케이크 앞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아이처럼 웃고있는 '어른이'가 있었다.
'오늘의 내가 이렇게 크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영상을 몇 번이나 되감는다.
그날의 나는
조용~히 지나가도 상관없다던 무심한 나보다
훨씬 즐겁게 살고 있었다.
생일. 대단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이어졌을 뿐인데
‘오늘 생일이다’라는 의미가 하루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그렇게 조용히 보내려던 저녁은,
살아온 일만 일이 넘는 하루 중 기억에 선명한 하루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이런 '의미의 마법'속에 하루를 살고 있다.
불금이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에 금요일 밤은 괜히 들뜨고,
헬요일이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에 월요일은 시작부터 무거워진다.
같은 하루인데
어떤 날은 견뎌야 할 날이 되고
어떤 날은 즐겨도 되는 날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생일을 챙기고
억지로라도 기념일을 만들고
졸업식에 가족을 부른다.
어릴 적엔 졸업식이 왜 그렇게까지 축하할 일인지,
그 유난의 진짜 의미를 몰랐다.
다들 모여 사진을 찍고 축하를 받은 뒤
짜장면을 먹거나 돈까스를 먹어서 즐거웠을 뿐.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아빠 엄마가 왜 그 추운 겨울날 꽃다발을 안고 찾아와 나의 어깨를 감쌌는지.
부모에게 졸업식은
‘여기까지 건강하게 와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루에 담아 신과 세상과 나에게 건네는 방식이었을테다.
의미는 거창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이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데서 시작되나 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괜히 유난이라 부르지 않으려 한다.
불금이든, 생일이든, 아무 일 없는 평일 저녁이든
그 하루를 특별하게 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기억할 만한 날이 될 수 있다.
조용히 지나가도 될 하루에 굳이 의미를 한 스푼 얹는 일.
나에게는 이것이 삶을 사랑하는 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