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7

Valencia Cafe

by 진메리

지금까지 런던에서 가장 흔하게 본 카페는 프레타망제(Pret A Manger)다. 조금 과장하자면, 서울에서 편의점을 찾기처럼 두 블록을 지나거나 코너를 돌면 나타난다. 관광지 위주로 다녀서 그럴 수도 있다. 지금은 쇼디치 지역의 한 버스 정류장 근처 프레타망제에 앉아, 동전을 털어 산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직 오전이다.



런던에 간다고 말했을 때 가장 많이 추천받은 곳이 쇼디치였다. 누군가는 ‘런던의 성수동’이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런던의 홍대’라고도 했다. 날것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자유로운 곳들은 보통 무질서하기 마련이다. 정돈된 풍경에서는 느낄 수 없는 미묘한 긴장을 품은 채, 지도에 없는 가게 하나쯤을 만나길 바라며 쇼디치로 갔다.


하지만 말과 행동은 어긋나야 인간미가 느껴지는 법이다. 신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 때 '인간미'가루를 넣는 순간, 꿀벌이 날아와 손등에 앉았고 벌공포증이 있는 신은 화들짝 놀라 정량 이상으로 넣어버린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도에서 가장 유명한 가게부터 찾아가는 언행불일치를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니 베이글 베이크(Bagel Bake)가 첫 번째 목적지인 것은 신의 실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저항 없이 따르는 한 인간의 성숙한 성찰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이발관을 떠올리게 하는 투박한 간판은 디자인이라기보다 ‘여기예요’ 하고 존재를 알리는 표시에 가까웠고 가게 안과 밖 어디를 보아도 우리나라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런던의 베이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베이글 베이크가 자리한 길은 큰 빈티지 마켓이 열리는 브릭레인이다. 상인으로 보이는 현지인들은 베이글을 받자마자 서서 아침 식사를 끝내고, 곧장 일터로 돌아갔다.


물을 제외하고 오늘 내 입으로 들어가는 첫 음식이라 비교적 간단하게 기본 베이글에 크림치즈만 추가해 주문했다. 눈으로만 봐도 밀도가 높은 빵에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 주었다. 예쁘고 꼼꼼하게 바르는 게 아니라, 커다란 스패출라로 김치통처럼 생긴 흰색 플라스틱 용기에서 크림치즈를 한 번 크게 뜬 다음 반으로 가른 베이글의 가운데에 척- 하고 올리는 식이었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런던에서 이 가격에 만족스러운 한 끼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쫄깃하지만 질기지 않았고, 마실거리가 생각나긴 했지만 냉장고에 하루 둔 식빵 끝부분처럼 입안이 퍽퍽해지지는 않았다. 크림치즈는 적당한 산미로 수분감을 채워주었다. 우리도 매장 계산대 뒤에 마련된 바에 서서 베이글 두 개를 먹었다.


런던 동부에 위치한 쇼디치는 트렌디하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다른 관광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그 시대다. 밀레니엄.) 런던에서 비교적 임대료가 저렴해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거주했다고 한다. 공장과 창고가 많아 작업실로 쓰기 좋은 공간이 충분했고 스트리트 아트와 인디 문화가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예술가 동네로 굳어졌다.


2층 버스를 타고 좁은 골목길을 여러 곳 지났는데, 빈 벽을 찾기 힘들 만큼 그래피티와 벽화가 가득했다. 그러다 양옆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밀고(12월, 겨울이다) 가운데만 바짝 세워 초록색 네온 컬러로 염색한 ‘쇼디치 사람’을 보았다. 스터드 장식의 액세서리와 강렬한 피어싱이 눈에 띄는 또 다른 ‘쇼디치 사람’도 있었다. 말로만 듣던 런던의 환불원정대, 펑크족인 것 같다.

이들이 쇼디치 사람이라는 건 베이글베이크에서 베이글을 먹다가 알았다. 여덟 명쯤 줄을 서서 주문하고 있었는데, 쇼디치 사람 1은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줄 서는 건 지루해'라는 표정으로 오른팔을 문틀에 기댄 채 카운터 직원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인지 직원들은 특별히 반기지도, 어색해하지도 않았다. ‘아, 너 왔냐’하는 말투가 자연스러웠다.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더니(베이글집은 24시간 영업한다), 카운터에 있던 아주머니가 렌트에 관해 물었다. 쇼디치 사람1은 가게나 집을 옮길 예정인 듯했다. 상황이 쉽지 않은지 고개를 저으며, 더 먼 구역까지 범위를 넓혀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줄을 서지 않았는데도 정확히 아홉 번째 순서로 포장된 베이글 봉투를 받아 들고는 얼굴 근육 전체를 써가며 “바이”라고 말한 뒤 가게를 나갔다. 대부분의 ‘센 캐’들이 그렇듯, 보기보다 규칙을 잘 지키고 정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쇼디치 사람1은 문 밖에서 담배를 연거푸 피우고 있던 쇼디치 사람2와 봉투를 열어보며 베이글을 꺼냈다.

우리나라의 경리단길이 떠올랐다. 접근성이 좋지 않고 주차 공간도 턱없이 부족한 악조건 속에서도 수많은 ‘-리단길’을 만들어낸 경리단길은 한때 서울을 대표하는 핫플레이스였다. 이국적인 작은 상점과 개성 있는 카페, 낯선 나라의 음식들은 힙스터들뿐 아니라 이태원을 찾은 외국인들까지 끌어들였다. 하지만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닿지 않는 곳들부터 임대료는 급격히 상승했고 작은 점포들이 떠난 빈자리를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 같은 익숙한 브랜드들이 채우면서 거리는 단조로워졌다. 경리단길의 인기가 식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임대료 문제를 빼고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했지만 최근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했다.)

런던의 높은 물가는 쇼디치도 비켜가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쇼디치 사람 1과 2가 마음 놓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그들의 선배들이 이곳에 새겨 둔 비주류의 감각을 배경 삼아 같은 길 위에 머물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한가지 더하자면 프레타망제가 브릭레인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지 않길...

어라?
일기를 쓰다 보니, 이 동네에 비교적 저렴한 베이글집이 남아 있는 이유도 어쩐지 이해가 간다. 대구에 국숫집이 유난히 많은 까닭을 대구 토박이에게 들은 적이 있다. 한때 공장 노동자들이 많이 살았고, 그들의 허기를 달래 주던 값싼 한 끼가 국수였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나라에 국수가 있었다면, 런던에는 베이글이 있어 굶주렸던 시간을 조금은 달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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