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encia Cafe
버킹엄 궁전과 빅벤을 잇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스타벅스를 연결하면 양 끝에서 널뛰기를 해도 될 만큼 안정감 있는 역삼각형이 된다. 일어난 지 일곱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오전이다. 시차 적응에 완벽히 실패했는데도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시간 로또에 당첨되어 부자가 된 기분이다.
이 문장을 적자마자 하품이 나왔다. 입방정 떨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상시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빅토리아 스트리트에서 다시 한번 느낀다.
근위병 교대식을 진행하는 버킹엄 궁전은 런던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러야 하는 (Must Visit) 명소 중 하나이다.
'버킹엄' 세 글자만 검색해도 교대식이 잘 보이는 명당이나 근위병들의 행진 방향을 알려주는 콘텐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외국사정은 어떠한가 궁금해서 영문 포털사이트에 Buckingham으로 검색해 보니 역시나 best view, best guide부터 나온다. 버킹엄 궁전의 역사나 의미보다는 교대하는 근위병들의 세리머니를 위해 must visit 하는 셈이다.
자가냐 월세냐가 중요한 나라에서 온 관광객답게 내가 찾고자 한 검색 결과는 이 궁전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이다. 실질적인 최고 기관인 영국 내각일지, 상징적인 존재가 된 왕실일지, 왕실이라면 대대로 상속되어 찰스 3 세왕일지, 우리나라의 종중 같은 개념으로서 왕실 종중의 소유일지 말이다.
이 얘길 하자 J가 한 말이 지금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차갑게 꽂혔다.
"청와대가 대통령 것은 아니잖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한 자의 학술적인 설명보다 운동부의 얕은 발언이 더 큰 어퍼컷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명당을 사수하기 위하여 교대식 한 시간 전부터 몰려든 각국의 여행객들 사이로 일제히 "하아" 하는 탄식이 들려왔다. 궁전 안쪽이 보일 만큼 가까이 가보니 오늘은 근위병 교대식이 있는 요일인데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다는 팻말이 있었다. 궁전이 누구 것인지 몰라도 참 단호하다. '사정상'이라는 단어라도 넣어주지 말이다. 유튜브로 예습하고 온 여행자가 분명 있었을 텐데.
*버킹엄 궁전은 국가재산이지만 정부 내각 소유도 아니고 왕실이 사용하지만 왕실 사유재산도 아니다. The Crown이라 불리는 헌정적 주체의 소유로 중립적인 국가재산이라고 한다. (처음 들었다.)